Jaguar E Type
우리나라에서 이 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박물관이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말이다. 재규어 E-타입은 페라리 창립자였던 ‘엔초 페라리’조차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라고 꼽은 모델이다. E-타입은 1961년 스위스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직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곡선으로 빚은 우아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E-타입은 1975년까지 생산됐는데, 사진 속 모델은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1세대 모델이다. “1세대 모델을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헤드램프를 보는 겁니다. 헤드램프에 둥근 커버가 씌워 있으면 1세대죠.” 오너이자 자동차 카페 ‘더원클래식’ 대표인 김성환 씨의 말이다. 그는 911의 전신이 된 포르쉐 356, 1960년대 만들어진 롤스로이스 실버 쉐도우 등 40여 대의 클래식카를 보유하고 있다.
놀라운 건, 앞서 소개한 대부분의 차를 실제로 주행한다는 점이다. 그는 E-타입의 얇은 운전대를 어루만지며 “전시해놓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저는 자동차 본연의 목적인 주행이 가능한 차 위주로 컬렉팅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서 “차도 운동을 시켜줘야 해요. 그래서 매일 다른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죠. E-타입은 거의 한 달 만에 시동을 거는 것 같네요”라며 시동 레버를 잡아 돌렸다. E-타입은 요즘 차와 달리 기어레버 윗부분, 센터페시아 중앙에 열쇠를 꽂고 돌려 시동을 건다.
출시 초기 3.8L 직렬 6기통을 품었던 E-타입은 1964년형 모델부터 4.2L 엔진으로 배기량이 늘었다. 4.2L 엔진은 생각보다 덜 요란하다. 공회전 상태로 차를 세워놓으면 엔진 회전에 따라 차가 몸을 부르르 들썩이는데,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모양새다. “솔직히 승차감은 별로죠. 그 대신 57년 전 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좋아요.” E-타입은 요즘 차로 치면 소형차 크기여서 성인 남성 둘이 앉으면 실내가 꽉 찬다. 한적한 도로에서 속도를 높이자 E-타입은 그제야 스포츠카다운 카랑카랑한 엔진 소리를 뿜어냈다. 자동 3단 변속기는 1966년형 모델부터 탑재됐는데, 변속할 때마다 덜컹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Porsche 911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포르쉐를 많이 구매하는 나라가 될 줄은 포르쉐 창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1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포르쉐 코리아는 2022년과 2023년에도 성장세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런 포르쉐의 핵심 모델이 바로 911이다. 1963년 등장한 이후 줄곧 스포츠카의 정석처럼 여겨진 911은 둥근 헤드램프, 리어 엔진 방식을 고수하면서 8세대 모델까지 출시됐다. 다른 차와 달리 911은 코드네임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1세대는 901, 2세대는 930, 3세대는 964로 부르는 식이다.
페블컴퍼니 이기훈 대표의 911은 2세대 모델인 930에 속한다. 1974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된 930은 같은 세대 내에서도 몇 차례 변화를 겪었는데, 처음에는 2.7L 엔진이었던 것이 1978년에는 3L, 1984년에는 3.2L로 배기량이 늘어나며 점점 강력한 출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930은 16년간 총 19만8496대가 생산됐는데, 포르쉐 오너스 클럽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굴러다니는 930은 고작 10대 미만이다.
“고무 범퍼 모양이 보면 볼수록 예뻐요. 다른 세대와 구분되는 점이기도 하고요.” 이기훈 대표의 말이다. 포르쉐는 911을 북미 시장에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이 제시하는 안전기준을 통과해야만 했다. 일명 ‘임팩트 범퍼’라고 부르는 고무 범퍼가 911에 장착된 계기다. 임팩트 범퍼는 스프링 같은 고무 장치를 이용해 최대 50mm까지 수축하며 충격을 흡수한다. 도입 초창기엔 911의 디자인을 저해한다는 반발이 있었지만 현재는 이기훈 대표의 말처럼 930 모델을 드러내는 디자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크림색 컬러가 매력적인 그의 930은 주행거리가 3만km도 되지 않을뿐더러 시트나 공조장치의 상태가 신차처럼 말끔하다. “운이 좋았죠. 가끔 포르쉐 오너들끼리 만나는 모임에 나가면 다들 놀라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차를 구했냐고요.” 그가 꼽는 930의 특장점은 차와 운전자가 하나가 되는 듯한 ‘일체감’이다. “차의 하중 이동에 따라 핸들링 감각이 달라져요. 전자 제어장치가 들어가지 않은 덕에 기계 덩어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요. 그만큼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지만요.”
Audi 80
“디자인만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클래식한 멋이 물씬 풍기는 전면부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컬러도 취향 저격이고요.” 카페 겸 빈티지 갤러리 ‘걸리버여행기’를 운영하고 있는 최성우 대표의 말이다. 포르쉐나 벤츠에 비해 아우디 올드카는 국내에 몇 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다른 클래식카와 비교했을 때 아우디 80은 승차감이 꽤 부드러워요. 공랭식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참고로 공랭식은 엔진의 열을 냉각수가 아닌 공기로만 식히는 방식으로 요즘 나온 차에는 쓰이지 않는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보이는 건 계기반과 라디오가 전부다. 에어컨도 없다. 재미있는 건 칼럼식 기어레버다. 운전대 오른쪽에 부착된 칼럼식 기어레버는 운전자 쪽으로 잡아당겨 올리면 1단, 그 상태에서 아래로 내리면 2단, 차의 진행 방향으로 민 다음 위로 올리면 3단, 다시 아래로 내리면 4단이 들어간다. 후진은 기어레버를 수직 방향으로 눌러 집어넣은 후 1단 방향으로 당기면 된다. 복잡해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운전대에서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변속이 가능해 오히려 편하다.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에 기어 레버가 위치하는 다른 차에 비해 넉넉한 공간을 구현하는 건 덤이다. 아우디 80의 1.7L 가솔린 엔진 최고 출력은 80마력이다. “강원도로 여행을 갔는데 가벼운 무게와 수동변속기 덕에 긴 오르막에서도 경쾌하게 달리더라고요.”
사실 아우디 80은 사연이 복잡한 자동차다. 차가 만들어진 1966년은 아우디의 경영권이 메르세데스-벤츠에서 폭스바겐으로 넘어가던 시기다. 1932년 호르히, 아우디, 반더러, 데카베라는 4개 회사가 하나로 합병되며 탄생한 아우디의 전신 ‘아우토 유니온’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경영 상황이 악화되어 1959년 벤츠에 인수당한다. 벤츠는 아우토 유니온의 디자인을 살리면서도 자사의 신형 엔진을 넣은 ‘F103’을 1965년 출시했다. 이후 폭스바겐은 F103의 모델명을 아우디 80으로 고쳤으며 엔진 출력에 따라 아우디 72, 80, 90으로 구분했다. 그러니까 F103과 아우디 80은 같은 차를 가리키는 셈이다.
Chevrolet Impala
미국의 자동차 문화를 가리키는 단어가 몇 개 있다. V8 엔진을 품은 우락부락한 디자인의 머슬카, 400m를 달리는 드래그 레이싱 같은 것들 말이다. ‘로라이더’도 미국에서 꽃핀 자동차 문화 중 하나다.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자동차 문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는데 엔진 성능을 극대화해 더 빠른 속도에 집중하는 ‘핫 로드’와 차체를 극단적으로 낮춘 로라이더가 그것이다. 핫 로드는 주류 백인 사회를, 로라이더는 히스패닉과 흑인 사회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대립 구도를 세워나갔다.
1962년식 임팔라는 이러한 로라이더 문화를 대표하는 자동차로 꼽힌다. 납작하고 기다란 디자인이 로라이더가 추구하는 느긋한 바이브와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차체 하부 구조가 로라이더로 튜닝하기 수월한 X자 형태였기 때문이다. 닥터 드레, 아이스 큐브, 스눕독 등 여러 래퍼들이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1962년식 임팔라를 등장시킨 것도 임팔라의 인기를 높인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차체를 지나치게 낮춘 탓에 작은 방지턱만 만나도 차가 긁히는 게 단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라이더 오너들은 유압식 서스펜션을 장착해 버튼만 누르면 차체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개조했다. 미국 갱스터 랩 뮤직비디오를 보면 차가 트월킹을 추듯 위아래로 들썩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역시 로라이더 문화의 일종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발생하기 전 만들어진 차답게 여유가 넘쳐흘러요. 기름을 아끼지 않고 달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 차를 타면 알 수 있죠. 크고 무거운 차체를 5.7L짜리 대배기량 엔진이 묵직하게 밀어내는 맛이 일품입니다” 유튜브에서 ‘압구정시골쥐’라는 이름으로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문예철 씨의 말이다. 환갑이 넘은 임팔라는 시종일관 쿵쾅거리며 내달린다. “여러 대의 클래식카를 가지고 있지만, 임팔라가 내는 소리를 특히 좋아해요.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죠.” 개인적으로 임팔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엉덩이를 폭 감싸는 시트다. 가정용 소파를 뚝 떼다가 장착했다고 믿을 만큼 푹신하다.
EDITOR 박호준 PHOTOGRAPHER 조혜진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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