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작품들의 기운과 사람에 눌려 말 그대로 ‘정신줄’을 붙잡고 다녀야 했던 프리즈, 키아프 여정에서 돌아오는 내내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다.
고산금 작가님의 진주알들이다. 진주알들이라 말하면 너무 단순한 표현을 사용하여 누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이번 칼럼을 위해서는 보다 구태여 표현하지 않는 절제가 필요했다. 이 분의 철학과 지향성을 투명한 눈으로 서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점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 마음이다.
말이란 게 무엇인가. 메시지라는 게 무엇인가. 얼마나 어떻게 구체적이어야,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가. 오히려 불명확한 형태로 (머리가 아닌) 마음에 전달하는 것이 가장 분명한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바로, “언어를 언어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필자도 근래 작업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었는데, 목적이 바로 위와 같다. 읽을 수 있도록 정자를 써서 작업하지만, 그 위에 얇은 순지 한 장을 덧대어 읽히는 글자를 읽지 못하도록 하는 시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로 쌓이고, 그에 대한 생각이 모일수록 문장 또한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쌓이고 방대한 양이 될 수밖에 없는 글과는 반대로 문장을 꼼꼼히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 같은 글쟁이들이) 문장을 표현하는 것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어떤 방식을 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재밌는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참이었다. 이때 고산금 작가님의 작품을 보았다.
한눈에 다가갔고, 한눈에 먹먹하며, 한눈에 선명했다. 마음이 선명했다.
제 작업은 읽을 수 있는
모든 문자를 진주 구슬로 대신 필사하여
사회적 기호를
읽을 수 없는 코드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화면에는 편집 형식만 남게 됩니다.
(네이버TV brilliant30, [고산금, 그리지 않은 텍스트 회회를 시각화화는 작가] 인용
캔버스 위의 언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그것과 자신의 정서를 엮어 각자가 가진 기억 속의 감정을 읽어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의미가 읽히지 않는 선명함’은 누군가의 지식이 아닌 마음-감정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인이 떠올린 본인의 이야기만큼 생생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필자는 셀 수 없이 나열된 진주알로 하여금 규칙적으로 반복되었을 동작의 여운을 짙게 얻었다. 인내하고 반복하였기에 제련되었을 동작, 그로부터 받은 ‘순수하고 선한 에너지’에 동하며 존경을 표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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