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달러 패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중국의 노력은 약 2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중국 정책당국이 달러 패권에 대한 견제에 나선 것이 2000년대 중반부터이니 말이다. 일례로 지난 2009년 3월,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어느 특정 국가의 통화가 아니라 국제통화기금에서 발급하는 유가증권인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을 초국가적 준비통화(super-sovereign reserve currency)로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간단히 말해 달러를 중심으로 이뤄진 현재의 체제를 폐기하고, 달러가 아닌 다른 기축통화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그는 달러가 기축통화로 군림하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로도 중국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달러 이외에 금이나 유로 등 다른 자산으로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위안화의 역외거래를 활성화했다.
위안화를 국제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2010년대 초반 시진핑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풀 꺾였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는 잠재적인 경제 불안을 조성하거나, 공산당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자본 유출’을 막고자 했다. 이를 위해 중국 내 자산의 해외 반출을 제한했다. 위안화에 대한 엄격한 통제 정책으로 중국인민은행이 야심 차게 준비해온 위안화의 국제화 일정이 중단된 것은 물론이다. 2015년 말부터 시작된 급격한 외환보유고 감소와 주식시장 폭락 사태는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더욱 조이는 트리거가 되었다. 2020년까지 중국의 전체 수출 중 위안화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이대로 묻힐 것처럼 보였던 중국의 ‘기축통화를 향한 꿈’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다시 부상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해제한 이후 시진핑은 이례적인 속도의 외교 활동을 진행 중이다. 주요 에너지 공급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방문했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베이징을 찾았다. 여기에는 다수의 새로운 상업 협정이 동반됐다. 특히 지난 3월 아랍에미리트(UAE)가 액화천연가스(LNG) 대금을 위안화로 받기로 결정함으로써, 중국은 달러 패권에 대한 위안화의 도전이 재개되었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중국이 기축통화를 노리는 이유
중국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축통화’를 보유한 나라가 막대한 이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기축통화(key currency)는 무역 시 상대국끼리 교역대금을 결제할 때 사용되는 통화를 의미한다. 현재는 달러가 기축통화로 여겨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영국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였다. 19세기 중반 이후 다수의 식민지를 거느린 영국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파운드는 매우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결제 통화로 등극했다. 누구나 파운드화를 가지려고 노력했고, 또 가격을 파운드로 환산해 계산하는 일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던 1913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파운드화의 비중은 48%에 달했다. 또 1860년부터 1914년까지 세계 교역의 60%가 파운드화로 결제됐다.
기축통화는 무역 거래대금의 결제통화로서 작용할 뿐 아니라, 만일을 위해 쌓아두는 자금의 ‘준비통화’ 기능도 한다. 준비통화 역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다. 당시 한국 정책당국은 2012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대부분을 달러로 보유했기에 외환시장 내 ‘달러 부족’ 사태를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는 위기 상황에 누구나 가지기를 원하는 통화, 즉 달러나 유로 위주로 외환보유고를 구성하고자 한다. 만약 당시 당국이 달러 외의 통화에 대량으로 투자했다면 위기 시 즉각적인 운용에 제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시 기축통화국이 누리는 이익으로 돌아와보자. 기축통화국의 첫 번째 이익은 단연 무역 및 자본거래에서의 편리함일 것이다. 지난해 4월 말 기준으로 미국 달러화가 전 세계 외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5%에 달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 외환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통화를 다른 나라와의 거래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갖는다. 특히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달러화로 대금을 받아 근로자들에게 원화로 대금을 지급하는 한국 기업들이 환율의 변동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과는 반대다.
기축통화국의 이점은 거래의 편리성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4%에 이르는 거대한 재정적자를 기록했지만 국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의 달러화 표시 자산 매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재정 및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외 중앙은행의 매수세에 힘입어 채권금리를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경상적자를 기록했으면 일찌감치 외환위기를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채권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으로 기축통화의 ‘효과’가 끝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듯 미국은 지난해 9437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경상적자를 기록했지만 경제에 큰 문제를 겪기는커녕 상당한 이익을 누렸다.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 나라가 해외에서 벌어오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특집 기사를 통해 “미국이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찬양했다. 이처럼 기축통화를 보유한 데 따르는 이점이 상당하기에, 중국이 지속적으로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축통화의 조건
기축통화의 첫 번째 조건은, 경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정 수준’은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기축통화 패권을 차지한 나라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면, 대부분 무역 결제 통화로서 위치를 굳혔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기축통화 패권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압도적 경제력을 갖고 폐허가 된 유럽 국가들에 대규모 원조를 해준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경제 규모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었다. 미국이 갖게 된 ‘보다 거대하고 자유로운’ 자본시장이 그것이다. 영국이 전쟁으로 진 빚을 제때 갚지 못하고 수차례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미국 그리고 뉴욕의 자본시장은 승승장구했다.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미국이 기축통화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 부분을 잠깐 설명하자면, 1971년 8월 15일 이전까지 전 세계에서는 ‘금 1온스=35달러’라는 고정비율로 금의 교환이 이뤄졌다. 달러를 보유한 나라나 기업이 금으로 교환, 즉 금태환을 요구하는 즉시 미국은 여기에 응할 의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언뜻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 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1944년에는 미국 경제가 세계 GDP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강력한 기세를 떨치고 있었기에 누구든 금 대신 달러를 보유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가 지나며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졌다. 미국이 보유한 금이 전 세계 달러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해외에 풀린 달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금태환 요구에 맞서 금본위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미군의 베트남 철수도 이뤄졌다.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었다. 달러의 가치가 일정량의 금으로 보장되는 시기가 끝나고, 각국의 경제 여건에 따라 환율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오죽하면 금본위제 폐지에 ‘닉슨 쇼크’라는 표현이 쓰였을까. 이에 따라 글로벌 투자 자금이 한 곳으로 쏠릴 경우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리고 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오일 쇼크’였다. 명분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구 각국으로 석유 수출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지만, 뒤로는 달러 가치의 하락에 따른 구매력 저하 위험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닉슨쇼크 한 달 뒤인 1971년 9월 15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내놓은 선언을 보자. “OPEC 회원국들은 지난달 있었던 국제통화체제의 변화로 인해 실질소득에 부정적 영향이 초래될 경우 배럴당 손실분을 상쇄시키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조치’가 바로 ‘가격 인상’이었다. 공격적인 석유가격 인상 단행을 이미 대내외적으로 시사했던 셈이다.
세기의 거래, 그리고 페트로달러
1971년 배럴당 3.3달러에 거래되던 유가는 1974년 10달러까지 상승했다. 세계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유가 상승으로 차량 운행이 멈췄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한 줄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강력한 불황이 선진국을 덮쳤다. 더 문제가 된 것은 경상수지 적자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나간 돈은 중동 국가로 빨려들어갔다. 만에 하나 이 돈이 그대로 중동에 머물 경우, 서구 선진국들은 심각한 현금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터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닉슨 쇼크 이후 달러의 가치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금과 교환할 수도 없고, 통화량도 증가하고 있었다. 동시에 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기축통화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붕괴된 금본위제도 대신 원유를 새로운 국제통화 기준으로 세워 달러의 가치를 다시 높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1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의가 필요했다. 그렇게 1973년, 미국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와 사우디 국왕 파이산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만나 ‘세기의 거래’를 성사했다.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지는 대신, 사우디는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와의 원유 거래 시에도 대금을 오직 달러로만 받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른바 ‘페트로달러(petrodollar)’ 합의였다.
사우디 입장에서도 좋은 거래였다. 중동 국가들은 오일쇼크 이후 쌓인 달러를 버릴 마음이 없었다. 중동 입장에서, 미국만큼 투자에 편리한 시장은 없었다. 막대한 외화를 이용해 소비재를 들여오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언젠가 유가가 다시 하락할 때를 대비해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데 달러표시 채권이나 주식, 그리고 부동산을 따라갈 자산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국채다. 미국 국채가 가장 중요한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핵심 요인은 ‘언제나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단 정부가 개인 및 금융기관의 국채 거래에 간섭하지 않으며, 세금도 투명하게 매겨진다. 더 나아가 국채 발행량 자체가 20조 달러를 넘어서기에, 아무리 큰 거래도 손쉽게 이뤄진다. 간단히 말해, 전쟁 등이 발발해 즉각적으로 자금이 필요할 때 미국 국채는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을 제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페트로달러 합의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리고 페트로달러는 5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굳건하게 유지되며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수 없는 이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갑자기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진 건, 미국이 러시아의 해외 자산을 동결시킨 탓이 컸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보유한 자산을 동결하고, 국제외환결제망(SWIFT)에서 퇴출시켜 전쟁 비용을 조달할 수 없게 만들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러시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러시아는 원유와 가스를 육로와 제3국 경로를 통해 인도에 판매하며 전쟁 물자를 가까스로 조달했다. 결제는 러시아 루블화로 이뤄졌다. 그러나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원하는 다른 국가들은 루블화 결제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택한 것은 위안화였다. 2020년까지 러시아 수출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1%도 안 될 정도로 미미했으나 2022년 12월에는 16%를 점유할 정도로 높아졌다.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도 위안화를 쓸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페트로달러 체제를 만들어낸 사우디와 중국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2018년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암살 배후로 사우디 왕세자 빈살만을 지목했다. 이후 미국은 사우디에서 지대공 미사일을 철수했다. 안보 보장이 약화된 가운데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이 파고들었다. 시진핑은 지난해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석유와 가스를 위안화로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중국 수출입은행은 사우디 국영은행에 위안화로 대출을 했고,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ARAMCO)는 중국 석유화학기업인 룽성석화(榮盛石化)의 지분을 10% 매입했다. 결제는 위안화로 이뤄졌다.
이렇게만 보면, 중국은 이제 곧 기축통화 패권을 차지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 문제가 한 가지 해결되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기축통화 조건을 기억하는가? 미국이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유동성이 풍부하고 자유로운 자본시장의 존재 덕분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어떤가. 시진핑 취임 이후 ‘위안화의 국제화’ 조치가 중단됐듯, 중국은 언제든 자본시장의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존재다. 자본시장의 문을 잠그는 데서 끝나면 좋겠지만, 더 나아가 중국 정책당국에 밉보인 사람은 재산을 헌납하고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한다.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최고 부자조차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투자하거나 처분하지 못하는데, 해외 투자자들이 팔고 떠날 때 중국 정부가 가만히 내버려둘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미국 정부가 오랜 기간 재정과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하며 세계 곳곳에 달러를 푼 결과 달러는 세계 어디서든 통용될 수 있는 풍부한 유동성을 갖게 됐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자본 통제가 이뤄져온 중국에서 이를 감수할 가능성은 낮다.
최근 미국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화가 달러에 위협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지금의 중국처럼, 국민이 해외로 자본을 빼돌리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진 나라를 본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결국 화폐시장의 패권은 사람들이 어떤 돈을 갖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 주석의 말 한 마디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돈을 안전 자산으로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지금도 그 이후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위안화가 일부 거래의 결제통화로 쓰일 수 있겠으나, 투자 대상 통화 혹은 준비자산 통화로는 아직 자격 미달이다. 당연하게도 달러 역시 완벽한 기축통화는 아니다. 그러니 래리 서머스가 지적했듯,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미국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경쟁자들이 너무 부실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WHO’S THE WRITER?
홍춘욱은 프리즘투자자문의 대표이사다. 경영학 박사로 이전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투자운용팀장을 지냈다.
EDITOR 김현유 WRITER 홍춘욱 PHOTO 게이티이미지스코리아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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