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87%·대전 50% 삭감 등 곳곳서 예산 편성 놓고 갈등
지방권력 재편후 사업 성패 중대기로…"주민 관심·참여 늘어야 의미"
(전국종합=연합뉴스) 청소년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 지하차도 벽화 그리기, 테마 둘레길 조성, 전신주 전단 부착 방지 시트지 설치, 버스정류장 벽체 환경 개선….
올해 경기 수원시의 주민참여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이다.
모두 39건이 선정됐고 6억3천400여만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하지만 이는 작년(46억9천400만원)의 13.5%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수원시는 114건에 48억원의 주민참여예산을 편성했지만 지난해 12월 2023년도 본예산 심사, 의결 과정에서 시의회가 87%를 삭감했다.
20년 전인 2003년 참여정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 시행을 권고해 탄생한 주민참여예산제가 중대 기로를 맞고 있다.
민선 8기 전국 지자체와 지방의회 권력 재편과 맞물려 곳곳에서 이 제도의 확대나 축소를 두고 갈등이 벌어져 올해 어떠한 성과를 내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 "예산 집행 비효율·불투명" 지적하며 '싹둑'
대전시는 지난해 200억원 규모이던 주민참여예산을 올해 100억원으로 절반 삭감했다.
시는 올해 재정능력 악화로 인한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를 두고 공방이 오갔다.
민주당 소속 시·구의원들은 "주민이 주인 되는 주민참여예산을 반 토막 내는 것이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시정 방향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하자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이 제도는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단 수십 명이 사업을 선정하는 등 주민 없는 주민참여예산으로 전락했다"고 맞받았다.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대전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주민참여예산의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며 이 제도를 "특정 성향의 소수 시민단체를 위한 꿀단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인천시는 민선 8기 출범 이후 첫 본예산 편성 연도인 올해 주민참여예산을 지난해 485억원(397건)의 40% 수준인 196억원(411건)으로 대폭 삭감했다.
이는 민선 7기 당시 2019년 199억원(42건), 2020년 297억원(247건), 2021년 401억원(286건), 2022년 485억원(397건) 등으로 주민참여예산을 꾸준히 늘린 것과 상반된 조치다.
지난해 취임한 유정복 인천시장은 과거 민선 7기 주민참여예산이 급증한 것에 대해 제도 운영상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주민참여예산이 인기영합적 예산 수립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과 함께 실질적인 '주민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구의 한 구청 관계자는 "외형적으로는 주민 참여지만 실제로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지자체가 주민 참여라는 구실을 내세워 특정 주민이나 모임의 민원을 들어주거나 지자체가 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부산시도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적어 해마다 편성되는 예산 규모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다. 2021년 75억원, 지난해 70억원, 올해는 68억원이 편성됐다.
◇ 분야별 확장·주민참여 유도 사례도 많아
이와 달리 제도의 취지대로 운영되며 사업이 확장하는 사례도 많다.
제주도는 올해 주민참여예산으로 지역사회, 참여사업, 광역사업, 청년사업 등 4개 분야에 사업비 200억원을 책정했다.
2013년 제도 도입 첫해에 132억원으로 시작한 이후 2016년 150억원으로 처음 증가했고, 2017년 170억원으로 늘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200억원이 유지되고 있다.
사업 건수도 2018년 283건, 2019년 289건, 2020년 302건, 2021년 334건, 지난해 357건 등으로 늘었다.
강호진 제주대안연구공동채 공공정책센터장은 "제주 구도심 지역에서 마을별로 이뤄진 벽화 그리기 사업 등이 주민참여예산으로 진행됐다"며 "그 외 CCTV 설치 등 시설비 중심으로 예산이 쓰이고 있는데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 등으로 사업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경우 민선 7기 민주당 최문순 도정에서 지난해 국민의힘 김진태 도정으로 바뀌었지만, 주민참여예산은 지난해 1억8천300만원에서 올해 17억원으로 오히려 대폭 증가했다.
올해 이 예산이 사용될 사업은 강원도립대 사무실 석면 자재 교체(9억3천만원), 자전거 도로 조성(2억1천만원), 지방도 유지보수(2억원) 등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예산이 증가한 것은 지방권력 교체와는 별개로 사업 채택률에 따라 달라진다"며 "이미 하는 사업이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아이디어는 사업화하기 어려운 만큼 주민 참여 위원들이 해당 부서, 전문가와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어 채택률을 높였다"고 말했다.
주민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경남 김해시는 주민참여예산 공모에 주민 참여를 늘리고자 올해 '주민참여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시정을 제안하거나 주민참여예산, 토론회 등에 참석한 시민에게 1천∼3천 포인트를 준다. 상·하반기로 나눠 포인트가 1만점을 넘긴 시민에게 1만원 단위로 김해사랑상품권을 지급한다.
충북도는 이달 중 올해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계획을 수립할 예정인데 주민참여 범위 확대, 홍보 강화 등을 통해 제도의 내실화를 꾀할 계획이다.
◇ "주민 실질 참여하도록 제도 취지 살리는 노력 중요"
전문가들은 주민 참여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상한 한국행정연구원 최상한 원장은 "주민 다수가 참여한 사업이 이뤄져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식으로 주민참여예산제가 제대로 진행되는 곳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며 "기초단체들은 재정 자립도가 낮아서 전체 예산의 1% 정도만 주민참여예산으로 반영되는데 이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보통 공모를 통해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선정하는데 공모 사업에 두는 제한을 최소화하고 일부나마 직접 예산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식으로 주민의 실질적인 참여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을 줄이는 지자체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것에 맞게 작은 규모의 사업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그런 사업이 계속되면 주민들의 관심도 떨어지게 된다"며 "충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희권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 교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시행되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사업 선정과 진행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 아닌 다수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는 점과 사업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 등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용민 손상원 김준범 고성식 김근주 이정훈 이해용 전창해 민영규 신민재 최종호 기자)
zorb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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