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시대 윤석산 시인의 생각

해체시대 윤석산 시인의 생각

데일리임팩트 2022-09-15 11:36:09 신고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쇠셨나요? 이번 주에는 수필이나 자서전 쓰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게 있네요. 며칠 전부터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주목하기 시작하는 두 저작물을 소개한 다음 약속한 주제를 함께 생각해보자는.

하나는 이 데일리임팩트에서도 달포쯤 전에 보도한 작가 윤석철의 ’소설 예수‘라는 대하(大河)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모 웹진 인터뷰 방식으로 소개한 장혜숙이라는 여성 작가의 ‘삶의 미술관’입니다. 창작 방식을 논의하겠다면 당연한 일인데 뭘 양해를 구하느냐고요?

흐흐흐…. 소설 작가는 제 바로 밑 동생이고, 미술관 이야기를 쓴 작가는 그 동생의 부인인 제수씨라서 망설인 겁니다. 하지만 동생 내외를 염두에 두고 주제를 정한 건 아닙니다. 저어 지난주 적합한 예화를 찾지 못해 애달다가 추석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동생 소설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1년 반 만에 원고지 매수로 계산해 1만 3000여 장의 작품을 써 7권으로 펴냈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드는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는 작품집이었으니.

동생은 닷새 뒤, 그러니까 15일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진보적인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의 모임인 ‘예수살기’가 주최해 세미나 식으로.

“그래? 그럼 나도 가지.”

입을 뻘씸거리며 말했지요. 그러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아주 의외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집사람도 책을 냈는데요. 9월 15일부터 서점에 나올 겁니다.” 

그러면서 바로 전날 제수씨가 인터뷰한 모 문화웹진의 사이트 주소를 휴대폰으로 넘겨주는 겁니다. 

열어봤지요. 그런데 마주 앉은 제수씨가 다시 의외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많지는 않지만 선인세(先印稅)도 받았어요. 어떤 브런치 매거진에 연재하는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에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어요.”

“네에?”

   윤석철의 '소설 예수'(왼쪽, 교보문고에서 촬영)와 장햬숙 지음 '삶의 미술관'.
   윤석철의 '소설 예수'(왼쪽, 교보문고에서 촬영)와 장햬숙 지음 '삶의 미술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72년부터 50년 동안 쓰고, 좀 더 잘 쓰기 위해 서른 살 애기 아버지가 사표를 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교수가 되고 박사가 되고, 열댓 권의 작품집과 이론서들을 펴냈지만 대부분 자비로 출판했는데, 첫 작품집부터 선인세를 받고 펴내시다니.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술잔을 들고 닐리리야 닐리리 하고 춤을 추고 싶데요.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고생만 하신, 그림이 좋아서라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생활비에 보태려고 미술관 해설사로 활동한 분의 책인데 나도 못 받아본 선인세를 받으시다니….

그러면서 이번 연재의 예화로 삼기로 했지요. 출판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동생이나 제수씨 모두 일흔세 살의 시니어,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직업적으로 글을 써온 사람들도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과정을 알면 독자 여러분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지만 하나는 장편소설이고, 하나는 미술작품 해설집이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동생 소설은 자서전의 변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제수씨 작품집은 안 읽어봐서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인터뷰 기사로 미루어 미술 비평과 수필의 중간형인 듯하고.

견강부회(牽强附會)지만 동생 소설이 예수님의 생애를 빌려 쓴 자서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가난한 농사꾼 8남매 중 셋째, 부조리한 나라를 바로잡는 사람이 되겠다고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고, 대학 2학년 때 계엄군이 고려대학에 진입하던 해 성북경찰서로 끌려간 뒤 계속 학생운동을 하고, 장년기로 접어들어 서울 시내 꽤 큰 교회의 수석 장로였다는 사실이 그런 착각을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자신을 동정화(同定化)하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데요.

제수씨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분이 미술작품 해설사로 근무하기 위해 창작 이론과 비평론을 공부하실 수밖에 없었을 테고, 내가 저런 제재(題材)를 발견했다면 어떤 각도에서 어떤 색상과 구도와 채도로 그렸을까 생각하셨을 테고, 그걸 바탕으로 작품을 설명하셨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컨대 펴내신 책의 구성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웹진 기자가 작품을 테마 별로 배열하면서 왜 첫 그림을 ‘출산’이나 ‘탄생’이 아닌 ‘요람’으로 내세웠느냐고 묻자, 그 중간 지점에 ‘또 다른 태어남’이 있다는 제수씨 생각을 구성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러셨다는 겁니다.

자아, 그럼 본래 제재로 돌아와 제가 왜 수필이나 자서전을 권유했는가 말씀드리고, 어떻게 써야 할까 함께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제가 이들 장르를 권유한 것은 죽더라도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권유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쓰는 사람도 보람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모자라는 것은 덧붙이고 지나친 것은 가다듬어 자기 인격과 이념을 완성하고, 또 그걸 읽을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르에는 이들 이외도 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순간순간 바뀌는 정서를 제재로 삼는 장르이고, 애들 문자로 말하면 ‘뻥’이 기본 어법입니다. ‘꽃 같은 당신’이라니, 어떻게 사람이 꽃 같습니까?

이렇게 자기주장을 하는 글들은 반론에 부딪히기 마련이지요. 더욱이 종교적이거나 사회 체제가 명제인 경우는 폭력이나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2017년, 동생이 이 소설을 쓴다고 할 때 제가 걱정한 것은 가장 민감한 종교 문제였고, 동생이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으로 유대 시절의 이스라엘 뒷골목까지 조사해 과거와 현대를 대조하는 걸 보면서, 미국의 예수연구회 학자들의 자료를 읽고 토론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일수록 정직하게 써야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고, 그 속엔 ‘자찬’이나 ‘자기선전’ 욕망이 담겨 있지만, 남도 그럴 수 있는 잘못까지 가리면 독자들은 잘난 체한다며 읽기를 중단합니다. 과장과 위선에 가득 찬 글을 읽을 사람은 없습니다.

단, 관계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이야기는 가려야 합니다. 꼭 거론할 수밖에 없으면 이니셜로 쓰고, 그렇게 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을 엉뚱한 이니셜로 바꾸거나 무의식적 환상의 장면으로 바꿔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잔잔한 이야기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가장 끌리는 것을 고르세요.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자기 생각과 반대 견해까지 드래그해서 정리하면 아주 폭넓은 이야기가 될 겁니다.

그다음엔 전체 줄거리를 만들고, 소주제 별로 개요를 쓰세요. 문장으로 풀어쓰지 말고, 핵심어(核心語)로 쓰면 됩니다. 그리고 전개할 때 유의할 사항이나 기발한 생각들은 ‘메모하기(Alt-D-U)’나 ‘사각형 그리기(Ctrl-N-B)’를 하고 적어두세요. 쓸 때 관심을 가져야 할 어휘는 버퍼(F3)로 싸고 글자색(Ctrl-M-원하는 색깔의 머리 글자)을 누르거나 형광펜을 골라 색칠해두면 편리합니다. 빨간색은 ‘R’, 푸른색은 ‘B’, 초록색은 ‘G’입니다.

그다음에는 구성(構成)을 해야겠지요. 이때 염두에 둘 것은 ‘강조하고 싶은 것’과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예측’이지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면화(scenery)’하고, 줄거리를 연결하는 곳은 ‘요약화(summary)’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장면에서 장면으로 건너뛰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은 논리적인 수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이야기의 순서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장면부터 시작해 어떤 장면으로 이어갈까를 따져보는 게 좋습니다. 같은 이야기도 앞뒤 이야기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그다음은 문장화를 해야 하겠지요? 좋은 문장은 지난 연재에서도 말했지만 미사여구(美辭麗句)의 나열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성과 연령과 사회적 계층과 상황에 알맞게 말하느냐 여부가 첫 번째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강요하는 어법인가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어법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완성한 다음에는 인터넷 카페나 유트브에 올리세요. 제수씨의 ‘삶의 미술관’은 제가 구축하는 한국문학도서관(www.kll.co. kr)과 또 다른 카페에 올린 걸 출판사가 발견하고 매달려 나온 거고, 다른 분들의 뜨는 책들도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겁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세요. 자서전도 그렇게 오래 고칠 게 있느냐고요? 네에. 저는 1997년부터 계속 고쳐 세 수필 전문지에 3년씩 연재하고, 2018년부터는 시전집을 펴내면서 다시 고쳐 그 작품을 쓰던 시절의 시집에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5년 동안 고쳐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쳐 쓸 때마다 감추고, 과장하고, 잘못 해석한 것들이 드러나데요. 첫 번째 연재 제목인 ‘말 또는 말의 푸르른 갈기를 잡고서’(1997~1999)는 언어 중심인 영미 주지주의 내지 신비평 이론에 빠졌기 때문에 붙인 거고, 두 번째 제목인 ‘미신의 숲에서’(2009~2011)는 더 공부하다 보니까 너무 이론들이 많고, 일종의 ‘미신(迷信)이라는 생각에 붙인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제목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2014~2017)는 우리의 시학을 잃고 서구 시학에만 매달린다는 걸 깨닫고, 그 방법은 동·서양 시학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붙인 겁니다.

자기 이야기를 써보세요. 그리고 다듬으세요. 그 과정이 자아를 완성하고, 이 세상에 보답하고, 영원히 사는 방법이니까요. 다음 만날 때는 개천절을 앞둔 시점이니 우리의 처지를 함께 되돌아보기로 합시다.

안녕, 안녕, 사랑해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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