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시계, 언제 트일지 모른다” 비상 선언한 대기업

“경영 시계, 언제 트일지 모른다” 비상 선언한 대기업

데일리임팩트 2022-05-10 22:28:24

3줄요약
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선제적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내외 변수에 경영 불확실성의 폭이 예전보다 커졌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선제적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내외 변수에 경영 불확실성의 폭이 예전보다 커졌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기업들이 다시 ‘위기’를 선언하고 비상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총수가 주재하는 전략회의를 부활시키는가 하면,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핵심 경영진이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급기야 총수보다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임원들 임금까지 삭감했다. 기업들의 체감하는 위기 수준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3년 만에 상반기 전략보고회를 재개한다. LG그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핵심 사업영역에서 중장기 전략 방향을 점검하고 미래 준비를 심도 있게 살펴보기 위해 전략보고회를 재개하기로 했다”며 “다만 일부 계열사에 한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은 매년 상반기에 전략보고회를, 하반기에는 사업보고회를 진행했다. 상반기는 사업별로 중장기 방향성을 점검하는 중간점검의 성격이 짙다면, 하반기는 계열사별로 경영 성과를 점검하고 내년도 계획을 구상하는 전략회의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20년과 2021년에는 하반기에만 실시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내 방역지침이 강화된 데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회의와 같은 형식을 갖추기보다 신속한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게 우선됐기 때문이다. 구광모 회장은 ‘디지털 전환과 같은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고객 가치를 선명히 하기 위해’ 민첩한 실행력을 주문했다. 

형식보다 실용을 요구했던 구광모 회장이 전략보고회를 재개한 것은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 회장은 상반기 전략보고회를 재개하는 대신, 몇몇 계열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중장기 전략의 방향을 조정하고 신사업의 속도를 가늠하려면 3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점검해야 한다고 봤다. 올해는 차기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전자·배터리·통신·화학·디스플레이 등 핵심 계열사 6곳을 면밀히 살필 예정이다. 

다른 그룹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한화그룹은 지난달 말부터 지난 4일까지 연속으로 사업 부문별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기계·항공·방산 부문, 금융 부문, 건설·서비스 부문, 유화·에너지 부문까지 4개 사업 부문이 차례로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평소보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회의에서는 사업 부문을 막론하고 위기를 거론했다. 1분기 주요 계열사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을 하락한 탓이다. 한화그룹은 기존 경영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그룹도 위기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지난달 권오갑 회장 주재로 사장단 회의를 열고 새 경영 전략을 수립하라는 주문을 했다. 조선해양·에너지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을 향해 권 회장은 “앞으로 위기는 그동안 우리가 겪었던 위기와 차원이 다를 수 있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검토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임원 임금을 깎겠다고 선언한 경우도 나왔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의 지주회사 한국앤컴퍼니는 지난달부터 조현범 회장을 비롯한 전 계열사 임원 임금을 20% 삭감했다. 공급망 불안으로 타이어 원재료인 고무 가격이 지난해 9월 이후 50% 가까이 올라 수익성이 떨어진 까닭이다. 

착실히 경영 성과를 내는 임원은 총수보다 높은 몸값을 자랑한다. 실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퇴직금을 포함해 총 118억3800만원을 받아 4대 그룹 임원 중 최고액을 기록했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 사장 등 SK그룹 주요 경영진 중에는 최태원 회장보다 고액을 받는 임원들이 있다. ‘연봉=능력’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영계에서 임원의 임금을 깎는다는 건 회사의 경영 시계가 불투명하다는 의미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난 가중, 운영비용 부담 증가 등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지. 이미지투데이.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난 가중, 운영비용 부담 증가 등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지. 이미지투데이. 

산업계는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촉발된 공급망 문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 안보’를 내세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수위를 높이면서 공급망 교란이 심화됐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세를 막으려 중국 주요도시가 봉쇄되면서 공급망 문제가 가중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국내 수출기업들이 받는 영향을 조사했더니, 무려 85.5%가 공급망 문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물류 지연·운송비 폭등 등 물류난(35.6%)은 물론,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채산성 악화(27.8%), 특정지역 봉쇄에 따른 피해(16.9%)를 호소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국내 기업들을 고심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해 써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와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모두 100달러를 훌쩍 넘겼다. 연초보다 40% 이상 가격이 뛴 니켈을 비롯해 알루미늄, 리튬, 코발트, 망간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치솟고 있다. 

원가 압박이 커졌다고 판매가격을 올리기 쉽지 않아 ‘더 팔고도 덜 남기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통관 기준으로 원자재 수입액은 1년 전보다 52.3% 급증했는데, 원유의 증가율은 83.9%에 달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어 기업들의 원가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거시경제 상황도 불안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역시 이달 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고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국내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진다. 경영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상장이나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100대 기업 차입금 추이.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근 5년간 100대 기업 차입금 추이. 자료. 전국경제인연합회.

그렇다고 재무 부담을 줄일 묘수가 딱히 없다. 기업들의 운영 경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는 증가하고 있다. 한정된 첨단 기술 인력을 경쟁력으로 끌어들이려 성과급을 늘린 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최근 1년 대기업 120곳의 임직원 인건비는 13% 가까이 상승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42개 기업에서는 고용이 줄었는데도 인건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데일리임팩트에 “제조업 중심의 국내 대기업은 자동화, 기계화 등으로 고용 인력이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제한 뒤 “노조와의 임금 협상, 회사 수익 창출에 따른 성과급 지급 등으로 인해 내부 직원의 임금 수준은 높아지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최대한 ‘비용 군살’을 빼기 위해 기업들은 공급망 전담 조직까지 꾸리며 효율화를 꾀했다. 삼성전자는 네트워크사업부 산하에 전담팀을 꾸렸다. LG전자는 HE사업본부에 TV사업운영센터를, VS 사업본부에 SCM실을 승격한 SCM 담당을 세웠다. 최근에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을 위해 개발·구매팀과 공급 대응 조직까지 만들었다. 

다만 경영 효율화로 버티기엔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수출 비중이 높다보니 기업들마나 조직을 꾸려 공급망 문제를 각별히 신경 쓰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 회사도 수시로 회의를 하며 탄력적으로 상황에 대응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한숨 쉬었다. 원자재 비중이 높은 산업군에서는 공급망을 다변화하거나 원자재 거래를 장기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의 폭과 여파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기업들의 투자 활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매출 100대 기업이 코로나19 이후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은 244조 6000억원으로 투자·배당·이자로 지출한 현금(248조 6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기간 매출액은 1666조 5000억원, 영업이익은 130조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8~2019년과 비교해 각각 5.8%, 5.9%씩 늘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빚을 내서라도 현금을 쟁여두고 있다. 100대 기업의 순차입금(총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뺀 값)은 지난해 말 164조8000억원으로 최근 5년 내 최대치였다. 대외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고용을 늘리기보다 현금을 쌓으며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 셈이다. 

대내외 경영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기업들이 잔뜩 몸을 웅크릴 것으로 관측된다. 비상경영 체제를 통해 선제적 위기관리에 나서는 한편, 현상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아 보수적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소비 추이를 낙관할 수 없고, 생산·유통 등에서의 공급망은 더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파격적 투자 인센티브와 같은 유인책이 없다면, 기업들이 현 수준을 유지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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