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시즌2] 1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거의 3년 만에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시즌2’는 예전처럼 온라인 익명 고민 사연들에 대한 나름의 해설을 제공해보겠습니다. 60회로 시즌1을 마무리할 때만 해도 “이제 다들 정신 차리고 잘 살겠지” 싶었는데 여전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스로를 위험한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안타깝고 매서운 사연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사가 그런 거겠죠. 시즌2의 첫 번째 문을 열어줄 사연은, 여친이 있는 남자와 ‘섹스 파트너’ 관계를 이어오다 결국 “콘돔에 구멍을 뚫어 임신을 유도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매운맛이죠? 일단 시작하기 전에 결론부터 명확히 짚어두고 이야기를 풀어갈게요.
지금 당장 그 남자의 연락을 차단하고 이 파괴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탈출하세요.
이것만이 당신의 삶과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하고 명확한 솔루션입니다. 우선 사연 게시물 전문부터 읽어봅시다.
몇달 째 만나는 남자가 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자친구 있는 거 알았고 그 사람도 나한테 숨긴 적 없음. 서로 가볍게 만나자는 식으로 시작했어. 여자가 바빠서 자주 못 만난다고 해가지고. 그때는 나도 괜찮을줄 알았거든. 나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음. 근데 지금은 전혀 안 그래. 이렇게까지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을 내 생각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외모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랑 있을 때 웃는 표정이나 말투 같은 게 계속 생각나. 같이 있는 몇 시간 동안은 진짜 연인처럼 구니까 자꾸 혼자 착각하게 돼. 집에 돌아와서 걔 여자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면 그제야 현실로 돌아오고 현타 와. 연락도 먼저 안 하고. 부담 주는 말도 안 하고. 걔가 원하는 시간에만 만났음. 그러다 보니까 나는 걔한테 맞춰서 사는데 걔는 여자친구랑 데이트한 사진을 올리더라. 그걸 보고도 관계를 끊지 못했음. 며칠 전에는 걔가 약속 끝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임신하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나를 그냥 지금처럼 대할 순 없지 않을까?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결국 나랑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콘돔에 구멍을 내는 생각까지 했어. 실제로 뭘 한 건 없어. 그런데 걔가 여자친구한테 돌아갈 때마다 머릿 속에서 자꾸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찾게 돼. 오늘도 연락이 왔는데 답장을 못 하고 있어. 만나면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할 거고, 지금 내 상태로는 나 혼자 마음 정리한다고 되는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아서 글 올려.
처음부터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만났다는 여성 익명 사연자. 이제는 그 남자를 자기 남자로 만들고 싶어서 스텔싱까지 감행하겠다고 하는데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픽=챗GPT>
①당신이 빠진 달콤한 늪 ‘간헐적 보상’과 ‘확증 편향’
사연을 읽다 보면 참 안타까운 대목이 많아요.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나랑 있을 때 웃는 표정이나 말투가 생각난다”, “같이 있는 몇 시간 동안은 진짜 연인처럼 구니까 혼자 착각하게 된다”고 했죠? 심리학에는 ‘간헐적 보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행동심리학자 스키너의 실험에서 파생된 이론인데요. 항상 일정한 보상을 줄 때보다 ‘언제 보상이 나올지 모를 때’ 생명체는 그 행동에 가장 강력하게 중독됩니다. 상대 남자는 당신에게 매일 주어지는 안정을 주지 않아요. 자기가 내킬 때, 여자친구가 바쁠 때만 잠깐 와서 연인처럼 굴며 ‘달콤한 보상’을 던져주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현타가 오지만 그 간헐적인 달콤함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끊어내지 못하는 겁니다.
여기에 ‘확증 편향’까지 더해집니다. 그 남자가 여자친구와 데이트 사진을 올리고 당신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오직 ‘섹파로만 여기는 수많은 신호’는 외면하면서, 나와 함께 있을 때 웃어준 ‘긍정의 신호’만 집요하게 수집하며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라는 착각을 강화하는 것이죠. 하지만 차갑게 현실을 보세요. 그 남자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여자친구가 있다고 밝혔고, 가볍게 만나자고 했으며,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만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남자는 당신을 통제하고 이용하고 있을 뿐,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②콘돔에 구멍을 뚫어서 ‘낙장불입’을 만든다고?
가장 뼈를 때려야 할 부분은 바로 “내가 임신하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랑 결혼하지 않을까? 콘돔에 구멍을 낼까 생각을 했다”는 대목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이건 단순한 ‘사랑의 집착’이 아니라 상대에게 가하는 명백한 폭력이자, 본인의 인생을 망치는 폭주입니다. 스텔싱(Stealthing)은 서구권에서 이미 성범죄로 처벌 받는 범죄행위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인정된 판례만 존재할 뿐 관련 법조항은 없긴 하지만, 언젠가는 형법에서 규정하는 범죄행위가 될 겁니다. 상대방은 ‘피임이 완료된 상태’에서의 성관계를 동의한 것입니다. 이를 속이고 임신을 유발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최근 판례와 법조계에서는 동의 없는 피임기구 훼손 및 제거 즉 스텔싱에 대해 무겁게 보고 있으며, 한 번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례가 생겨난 만큼 추가적으로 관련 판례들이 축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제 결혼은 없습니다. 임신을 한다고 해서 그 남자가 여자친구를 버리고 당신과 결혼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남자는 당신을 공갈 및 협박 혹은 ‘원치 않는 임신을 유도한 가해자’로 취급할 겁니다. 임신을 근거로 협박한다고 해서 그 남자가 결혼해줄리 만무합니다. 법적으로 강제 결혼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당신에게 남는 건 ‘홀로 아이를 상처 속에 키워야 하는 비극’ 또는 ‘중절 수술로 인한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 뿐일 겁니다. 혹여나 아이를 낳아서 양육권 청구 소송을 걸더라도, 스텔싱까지 해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짓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인정받기도 어렵습니다.
③자존감을 되찾고 늪에서 걸어나오세요!
당신이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이런 말도 안 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건, 그만큼 당신의 자존감이 바닥나 있고, 그 남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시간에만 불려 나가고, 연락도 먼저 못 하고, 눈치만 보는 관계가 어떻게 사랑입니까? 그건 관계가 아니라 ‘자발적 인질극’입니다. 스스로에게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죠? 네!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외모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이 원하는 시간에 함께해주며, 여자친구 몰래 당신을 만나며, 자존감을 갉아먹지 않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소중합니다.
④다시 한번 솔루션을 드립니다!
글을 시작하며 말씀드렸던 결론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환기해드립니다.
지금 당장 그 남자의 연락을 차단하고 이 파괴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탈출하세요.
오늘 온 연락에도 답장을 못 하고 계시죠? 차라리 잘됐습니다. 차분하게 답장하지 마시고 그대로 연락처를 삭제하고 차단하세요. 콘돔에 구멍을 뚫어 임신으로 상대를 묶어두겠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범죄와 비극의 구렁텅이로 던지는 자충수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바쁠 때 욕정이나 채워주는 파트너’나 ‘익명 사연글에 숨어 욕이나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다시 배우세요. 늪에서 걸어나오는 첫걸음은,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차단 버튼으로 누르는 손가락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의 삶을 스스로 지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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