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가 세단의 영역에서 그랬듯 투싼은 SUV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처음'의 차였다. 사회에 나와 처음 산 SUV, 처음으로 주말에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차. 2004년 1세대가 나온 뒤 22년 동안 1000만대가 넘게 팔리며 쌓아온 이미지가 그랬다.
5세대 디 올 뉴 투싼을 타 보면 그 이미지가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차가 커져서만은 아니다. 차를 만든 사람들이 바라보는 고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시승차는 1.6 터보 가솔린 풀옵션 모델이었다. 하이브리드가 아닌 쪽이다. 타이어는 17인치, 구동 방식은 2WD로 공인연비 측정 기준과 같은 사양이었다.
강철을 여기까지 당길 수 있나, 아트 오브 스틸의 정점
현대차가 '아트 오브 스틸(Art of Steel)'이라는 디자인 언어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강철 고유의 긴장감을 조형으로 끌어낸다는 개념인데, 말로 설명하면 추상적이지만 투싼 앞에 서면 금방 이해된다.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은 리어 펜더다. 뒤에서 차를 보면 펜더가 바깥으로 불룩하게 밀려 나와 있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전 모델보다 볼륨이 20% 커졌고, 뒤에서 봤을 때 돌출된 면적비도 같은 폭으로 넓어졌다. 숫자보다 눈이 먼저 알아챈 것이다.
이게 왜 어려운 일인지는 시승에 앞서 진행된 투싼 테크데이에서 들었다. 성형 각도가 39.5도에서 26.5도로 13도 가팔라졌고, 성형 깊이는 40mm에서 71mm로 31mm 깊어졌다. 철판을 그만큼 더 깊게, 더 가파르게 당긴다는 뜻이다. 초기 해석에서는 같은 부위에 크랙과 주름이 동시에 발생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해결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사이드 아우터 패널에만 다른 차종의 3배, 후드에는 5배 이상의 성형 해석을 돌렸다. 통상 3개월인 사전 검증 기간도 5개월로 늘렸다. 그 결과 디자인 데이터를 거의 손대지 않고 양산까지 끌고 왔다.
측면도 마찬가지다. 후드가 프런트 펜더 옆면까지 길게 덮는 익스텐디드 클램쉘 타입으로 바뀌면서, 보통은 쉬운 부품으로 분류되는 후드가 사이드 아우터와 동급 난이도가 됐다. A필러 주변까지 후드에 포함됐으니 그럴 만하다.
전면은 수직형 H-엣지 라이팅과 수평 슬림 센터 램프의 조합이다. 차폭이 실제보다 넓어 보인다. 투싼의 라이팅 시그니처라고 하면 단연코 독특한 테일램프다. 프리즘 리어 램프는 투명 렌즈 안쪽에 패턴을 넣어 각도에 따라 빛이 다르게 맺히는데 낮에는 시인성을, 야간에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직접 보면 특이한 구조에서 시선이 머무르게 될 것이다.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넥쏘, 아반떼에 이어 아트 오브 스틸이 적용된 차 중에서 지금까지는 투싼이 가장 완성도 높게 구현된 것 같아서다. 콘셉트카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면 처리를 양산차 패널 하나로 뽑아냈다. 어찌보면 고집스러운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간의 충돌이 만든 아름다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3마력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그 반대였다
투싼 1.6 터보 가솔린 모델은 193마력, 27.0kgf·m를 낸다. 터보차저 용량을 키워 4세대 투싼보다 출력을 13마력 올렸고 8단 자동변속기가 물린다.
숫자만 보면 평범할 수 있다. 최근 출시되는 일부 준중형 SUV에도 250마력을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쓰는 영역만 놓고 보면 이 조합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면 가볍고 부드럽게 출발한다. 저속에서 터보 특유의 성격을 찾기 힘들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차가 알아서 편하게 움직인다. 시승 코스의 도심 구간에서 신호 대기와 출발을 반복할 때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올라가도 모자람이 없다. 고성능 SUV가 아니기 때문에 무섭게 달려나가는 느낌은 없다. 하지만 90~110km/h 구간에서의 추월 가속에서는 힘이 부족하거나 변속기가 느리게 반응한다는 느낌도 없었고 그 과정에서 차체가 흔들리는 느낌이 거의 없다. 193마력은 이 차를 빠르게 만들지는 않지만, 운전자를 피곤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달리는 재미를 찾는 사람이라면 아쉬울 수 있어 스포츠 모드가 있지만 극적인 변화는 없다. 다만 투싼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걸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진동 쪽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정차 후 재시동이 걸릴 때 몸에 전해지는 울컥거림이 거의 없다. 트랜스미션 마운트에 현대차 최초로 듀얼 스토퍼 구조를 넣었는데, 원래는 하이브리드의 엔진·모터 전환 진동을 잡으려고 개발한 것이지만 가솔린 모델이 덤으로 혜택을 봤고 고스란히 상당히 놀라운 승차감으로 돌아왔다.
뒷좌석에 앉아 보니 투싼이 어디로 갔는지 알겠다
이 차의 성격 변화는 운전석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2열에서 새롭게 드러난다.
전장 4,700mm, 전폭 1,905mm, 전고 1,685mm, 축거 2,785mm. 이전 모델보다 각각 60mm, 40mm, 20mm, 30mm 늘었다. 네 치수가 고르게 커졌다는 게 중요하다. 한쪽만 늘리면 비례가 망가지는데 그러지 않았다.
늘어난 치수는 그대로 2열로 갔다. 헤드룸이 29mm 늘어 1,031mm가 됐고 레그룸은 14mm 넓어졌다. 숄더룸은 1열과 2열 모두 6mm씩 커졌다.
숫자를 보고 뒷자리에 앉으면 체감이 더 크게 온다. 성인 남성이 운전석을 자기 포지션으로 맞춘 뒤 그 뒤에 앉아도 무릎이 남는다. 머리 위 여유는 파노라마 루프가 있는 상태에서도 답답하지 않다.
파노라마 루프의 개방감이 특히 좋다. 2열에 아이를 태우는 집이라면 이게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창밖이 아니라 머리 위가 열려 있는 느낌은 성격이 다르다.
2열 도어 개방 각도도 73도에서 83도로 커졌다.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거나 내릴 때 허리를 덜 숙여도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해 보면 10도의 차이가 꽤 크게 느껴진다.
트렁크는 가솔린 기준 622ℓ에서 645ℓ로 늘었다. 유모차 하나 싣고도 장 본 짐이 들어간다.
2열 도어트림에 컵홀더가 생겼고, 앞좌석 콘솔에는 위아래로 무선충전 패드가 두 개 들어간다. 운전석과 동승석이 각자 스마트폰을 올려놓을 수 있다. 팜레스트 아래 히든 트레이, 운전석 멀티 에어벤트의 카드 홀더처럼 작은 수납도 늘었다.
이런 사양들의 공통점이 있다. 전부 혼자 탈 때는 크게 효용성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둘 이상 타게되면 이런 소소한 배려들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차 연구원이 투싼 테크데이에서 "준중형 SUV 역할을 넘어 패밀리 SUV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했다"고 설명했는데, 단순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실내 곳곳에 그 의도가 강하게 새겨져 있다.
실내가 조용하다, 그리고 부드럽다
정숙성은 이번 투싼에서 가장 확실하게 체감되는 부분이다. 시승 중 고속도로 주행 시 앞좌석 또는 뒷좌석 탑승자와 대화할 때 목소리를 키우지 않아도 된다. 풍절음도, 노면 소음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음 글라스를 1열 측면에만 쓰던 걸 2열까지 넓혔고, 1열은 두께를 1mm 늘려 5T로 바꿨다. 도어 글라스런은 이음매 없는 일체형으로 교체했다. 엔진룸과 실내를 나누는 대시 아이소 패드의 차음층 면적은 51% 늘었고, 언더플로어 패드는 국소 부위에서 시트 아래 전체로 확장됐다. 플로어 카펫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 폼 밀도는 70K에서 85K로 올렸다.
하나하나는 작은 변경인데 합쳐 놓으니 차 안이 한 체급 위로 올라간 느낌을 준다.
승차감도 단시간 시승으로도 수준을 알 수 있을 정도니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오너들이라면 승차감의 개선은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 같다. 투싼은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신밸브 MFS-II 쇽업소버를 적용했고, 앞쪽 스트럿 입력점 강성을 키우고 뒤쪽에는 크로스멤버 후방 스테이를 새로 넣었다. 덕분에 고르지 못한 노면이나 과속방지턱을 통과할때도 뒷좌석 탑승자가 받을 수 있는 충격이나 불쾌감은 상당히 줄었다.
실내 마감은 기존 모델을 기준으로 한 3-4천만원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플로팅 구조로 상하가 분리된 크래시패드, 더블 D 컷 스티어링 휠, 소재가 닿는 면마다 들뜨거나 우는 곳이 없다. 도어를 열었을 때 드러나는 그레이존까지 다듬었다는 설명이 과장이 아니었다.
글레오 AI, 처음 만났던 그 AI가 아니다
투싼에는 현대차 SUV로는 처음으로 플레오스 커넥트가 들어간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 기반이고, 생성형 AI 에이전트 글레오 AI와 앱을 내려받는 플레오스 앱마켓이 함께 돌아간다.
글레오 AI를 처음 만난 건 그랜저에서였다. 그때는 신기하기는 한데 손이 자주 가지는 않았다. 명령을 알아듣는 범위가 좁았고, 조금만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들었다.
투싼의 글레오 AI는 다르다. 학습이 쌓인 티가 난다. "조금 춥다"고 말하면 온도를 올린다. 목적지를 말할 때 정확한 상호명이 아니어도 맥락으로 찾아낸다. 앞에서 한 말을 기억한 상태로 다음 대화가 이어진다. 연속 대화가 되는 음성 인식은 여럿 봤지만, 중간에 말을 끊고 다시 시작해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 쪽은 많지 않다.
응답 속도도 빨라졌다. 말을 마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지면 사용 빈도가 달라진다. 음성 명령이 버튼보다 느리면 아무도 안 쓴다.
시승차의 디스플레이는 16:9 비율의 17인치 다. 화면이 커지면서도 주요 기능의 물리 버튼을 남겨 둔 구성이 마음에 든다. 주행 중에 에어컨이나 난방을 위해 조작하려고 여러번 메뉴를 찾아 들어가는 불편함이 없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물리버튼은 필요하고 투싼은 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플레오스 앱마켓에서는 영상이나 음악 스트리밍, 게임 같은 서드파티 앱을 내려받을 수 있다. 차를 세워 두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은 사람에게는 점점 쓸모가 늘어가는 재미도 있을 수 있겠다.
안전 쪽에서도 새로 들어온 게 많다. 충돌로 메인 전원이 끊겨도 백업 전원으로 도어 잠금을 풀어 주는 도어 언락 전원 이중화가 현대차 최초로 적용됐다. 에어백은 1열 센터 사이드를 포함해 9개다.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와 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는 전 트림 기본이고, 차가 지나온 궤적을 기억해 후진할 때 조향을 대신해 주는 기억 후진 보조는 동급 최초다.
그래서 투싼은 누구의 차가 됐나
짧은 시간의 시승이지만 시승이 끝나고 투싼을 돌아보며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며 질문이 떠오른다.투싼은 여전히 첫 차일까.
첫 차로 사도 좋다. 다만 5세대 투싼이 가장 잘하는 일은 그게 아니다. 2열 공간, 개방 각도 83도의 뒷문, 뒷좌석까지 조용한 실내, 아이 둘 태우고도 많은 짐이 수납할 수 있는 여유로운 트렁크. 투싼의 여유로운 모습은 분명하다.
연비도 원하고 편안한 주행의 즐거움도 원하고 SUV의 견고함과 일상의 편리함까지 함께 원하는 고객에게 현대차는 디 올 뉴 투싼을 선보였고, 투싼이 보여줄 매력 중 '일상의 편리함' 쪽에 무게를 더 준 느낌이다.
이제 사회 초년생의 SUV에서 가족의 SUV로. 투싼의 무게중심은 확실히 옮겨도 좋다.
디자인 공개에에 이어 투싼에 담긴 새로운 기술까지 공개됐다. 남은 것은 가격이다. 가격은 10월 중 본격 출시와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이제 투싼의 영역 확대로 더이상 '준중형'이라는 말은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대신 '패밀리'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붙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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