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의 이자카야 ‘유카네’는 일본인 사장 유카씨가 2019년 문을 연 작은 술집이다. 한국 손님들이 즐겨 찾는 소주는 메뉴에서 뺐고, 하이볼도 일본에서 익숙한 달지 않은 맛을 지킨다. 국물 안주를 선호하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와 일본의 차이를 몸으로 익혀온 유카씨는 메뉴를 맞추기보다 손님에게 직접 설명하고 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40대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홀로 가게를 연 그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경험도 결국 삶의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는 태도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핵심 요약
① 일본인 사장 유카씨는 2019년 서울 을지로에 이자카야 ‘유카네’를 열고 한국과 일본의 술·음식 문화 차이를 직접 경험해왔다.
② 소주를 두지 않고 달지 않은 하이볼 맛을 유지하는 대신, 손님에게 메뉴의 특징을 직접 설명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운영 방식을 고수한다.
③ 40대에 한국에서 다시 홀로서기에 나선 유카씨는 실패와 시행착오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소주 없어요.”
서울 을지로에 있는 이자카야 ‘을지로 유카네’에는 소주가 없다. 이자카야라도 한국이라면 소주가 당연히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이자카야인데 소주가 없느냐”고 되묻는 손님도 있고, 소주가 없다는 말을 듣고 “다음에 오겠다”며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있다.
일본인 사장 유카씨에게는 국물 있는 술안주를 찾는 한국인의 취향도 낯설었다. 한국에서 요리책을 만들 때는 출판사로부터 국물 요리를 별도 항목으로 넣어 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의 술자리 풍경이었다.
6일 여성경제신문 기획
대학 시절 영양학을 공부하고 영양사 자격을 갖춘 유카씨는 일본에서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을 전문적으로 배웠다. 곡물과 채소 등을 중심으로 식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식이 개념이다. 이 경험을 살려 한국에서 첫 일을 시작했다. 작은 요식업 컨설팅으로 시작한 한국에서의 첫 일을 약 10여년간 경험한 그는 취업비자 만료로 한 차례 일본에 돌아갔다.
일본 치바현 출신인 유카씨는 자신의 고향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국어가 능통했던 그는 한국에서의 새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2017년 재입국한 뒤 약 3년에 걸쳐 창업을 준비했다. 2019년 당시 인쇄소와 오래된 공장이 밀집해 있던 을지로에 자신의 첫 이자카야를 열었다. 당시 유카씨의 나이는 만 41세였다. 낯선 나라에서, 비교적 늦은 나이에 혼자 가게를 차렸다.
호주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친구를 통해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이 20년 만에 서울 을지로의 작은 이자카야로 이어진 셈이다. 그렇게 유카씨의 두 번째 한국 생활이자 자영업자로서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 손님들이 소주를 찾는데도 들여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이볼 맛에 대한 반응도 궁금하다.
“한국 소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한국 이자카야에는 소주가 있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소주 좀 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그래도 소주는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지켰다. 이곳은 이자카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유카네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소주가 없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소주가 없다고 하면 ‘다음에 올게요’라고 말하고 나가는 분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쑥스러워해서 잘 못한다. 한국에서는 가게에 들어와 ‘소주 없어요?’라고 물어본 뒤 없다고 하면 그냥 나가기도 한다.
하이볼도 처음부터 ‘일본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정하고 만든 것은 아니다. 나에게 하이볼은 원래 지금과 같은 맛이었다. 그런데 한국 하이볼처럼 단맛을 예상하고 주문한 분들은 ‘달지 않다’, ‘생각했던 하이볼과 너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주문을 받을 때 ‘저희 가게 하이볼은 단맛이 없는데 괜찮으세요?’라고 한 번 더 묻는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반드시 설명하라고 한다. 본연의 맛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
―국물 있는 술안주를 찾는 한국 손님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일본과 다른 술자리 문화는 또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국물 요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요리책을 만들 때도 출판사에서 ‘국물 요리’라는 항목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내가 한국에서 느낀 음식 문화의 큰 차이 가운데 하나다. 술을 마시는 방식도 다르다. 한국 손님들은 ‘마시자’고 했을 때 마시는 양이나 술을 즐기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 자리는 내가 낼게’라고 하는 문화도 있다. 그러면서 비싼 술을 주문해 주기도 한다.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맙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일본의 술자리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음식도 여러 종류를 많이 주문한다. 그렇다고 한국 손님과 일본 손님의 차이를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다. 소주가 없다고 해서 나가는 손님도 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손님을 만나면서 힘든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느낀다.”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처음부터 한국에서 살 생각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대학에 다닐 때 친구들이 서울에 다녀왔다거나, 한국은 물건이 저렴하다거나, 안경을 맞춰 왔다는 이야기를 해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한국은 나에게 거의 모르는 나라였다. 나는 영어권에서 살고 싶었다. 미국이나 호주를 생각했다. 대학생 때 로스앤젤레스로 여행을 가면서 대한항공을 탄 적이 있는데, 당시 내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대한항공 사고 소식 정도였다. (유카씨가 회상하는 당시 년도는 1999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는 1997년 8월 6일 새벽, 괌 아가냐 국제공항(현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던 여객기가 공항 남쪽 5km 지점의 니미츠 힐 밀림 지역에 추락한 대형 참사 사건이다.)
부모님은 대한항공을 타지 말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나는 항공료가 저렴해서 탔다. 기내식으로 비빔밥이 나왔는데 그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데 같이 여행을 간 친구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어 인사를 알고 있었다. 나와는 달랐다. 1999년 대학 졸업 여행으로 호주에 홈스테이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가까워진 사람들 가운데 한국인과 일본인이 많았고 중국인도 몇 명 있었다. 그때 만난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전까지 나는 영양사라는 직업에 큰 희망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취직해서 일을 하다가 부족한 부분이나 의문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유학을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한국 친구를 만났고 그와 친해져서 한국행을 선택했다. 부모님은 먼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실제로 내가 생활할 수 있는 곳인지 직접 배우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2001년 한국에 왔다. 직접 살아보니 ‘여기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돌아갔다가 2017년 다시 한국을 선택했다. 꽤 늦은 나이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가게를 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
“한국에서 마크로비오틱 관련 일을 하다가 비자가 만료돼 일본으로 돌아갔다. 도쿄에서 다시 일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없고,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하는 일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본에서 이렇게 계속 사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한국에서 아카데미를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외국인 투자 비자를 받아 2017년 다시 한국에 왔다. 그런데 함께하기로 한 사람과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아카데미 사업은 하지 못했다.
갑자기 일이 없어졌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다시 생각했다. 결국 음식밖에 없었다. 가게를 구하기 위해 부동산도 혼자 돌아다녔다. 을지로뿐 아니라 한남동, 논현동, 광화문까지 다녔다. 대출은 받지 않았다.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 준비했다. 통장에서 돈이 계속 빠져나가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그런데 공사비를 달라는 전화는 계속 왔다.
살 집으로 얻은 오피스텔 보증금은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부모님이 도와주시면 고맙게 받는다. 그래도 일만큼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 싶었다. 혼자 내 책임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나답게,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그곳이 한국이었다.”
―수많은 동네 가운데 을지로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공간과 메뉴는 어떻게 준비했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가게 사장님에게 상담했다. ‘아카데미 일이 무산돼서 내가 가게를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분이 내 콘셉트라면 마포나 을지로처럼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들를 수 있는 지역이 좋겠다고 조언해 줬다. 그렇게 여러 곳을 알아보다 지금의 자리를 발견했다. 내가 꼭 원했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매장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었다. 작은 가게에 내부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는데 이곳에는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당시 한국 지인들은 ‘일본 여자가 혼자 가게를 하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인테리어 공사를 한 업체에 모두 맡길 형편도 아니었다. 친구에게 설계를 부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은 직접 했다. 공사 현장에도 계속 나와 있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씩 준비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서민적인 분위기의 가게가 됐다. 2019년 4월 1일 문을 열었다.
메뉴도 직접 개발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음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생각했다. 손님이 메뉴 하나를 주문하면 어떤 곁들임 메뉴를 함께 고를지, 그렇게 주문하면 객단가가 어느 정도 나올지도 계산했다. 처음에는 일본 가정식 반찬을 여러 가지 내는 ‘오반자이’를 콘셉트로 생각했다.”
―포스기 없이 운영하고 메뉴 설명도 직접 한다. 유카네에서 지키고 싶은 장사 원칙은 무엇인가.
“솔직하게 장사하는 것이다. 거짓말로 핑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 손님이 어떤 음식을 다른 요리와 혼동할 수 있다면 주문할 때부터 어떤 음식인지 설명한다. 포스기 없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내 가게만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가게가 귀찮은 일이나 오해가 생길 만한 일을 줄이는 방향으로 운영한다. 나는 오히려 그런 과정 속에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편하고 편리한 것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손님들에게 ‘유카네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늘 여기에 있다는 점도 있을 것 같다. 유카네에 오면 언제든 나를 만날 수 있다. ‘유카네, 내 집’이라는 콘셉트와도 맞는다.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손님에게 질문도 하고 말을 건다. 그것을 좋아해서 다른 손님을 데려오는 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둘이서만 술을 마시기에는 조금 어색한 사이인데 유카네에 오면 내가 중간에서 화제를 던지고 질문을 해주니 편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찾아오는 손님도 있는 것 같다.”
―개업 8년째다. 을지로 상권과 한국을 찾는 일본 사람들을 보며 어떤 변화를 느끼나.
“코로나19도 겪었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주변 가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장사가 잘 안되면 갑자기 점심 영업을 시작한다. 그래도 안 되면 또 바로 그만둔다. 일식집이 어느 순간 고깃집으로 바뀌기도 한다. 행동도 빠르고 변화도 정말 빠르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바로 바꾸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한국에 일본식 가게가 많이 늘어난 데에는 코로나19 때 해외에 나가지 못하면서 일본 여행을 대신하려는 수요가 생긴 영향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생도 꼭 일본인 유학생을 고집한다. 한국과 일본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요즘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멋지다고 생각하고, 유행이나 스타일을 직접 보고 싶어 한국을 찾는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40대에 외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같은 선택을 다시 할 수 있겠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정말 그때가 돼봐야 알 것 같다. 다만 나는 40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내 경우에는 40대가 되니 혼자 살아온 시간도 있었고, 결혼을 해도 괜찮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사람은 나와 맞지 않고 어떤 사람은 잘 맞는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선택지가 오히려 정리되니 편해졌다.
사람은 언제든 빛날 수 있고 즐겁고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겪었던 경험과 실수, 고생도 나이가 들면 다시 꺼내 쓸 수 있다. 좋지 않았던 경험도 나중에는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자기 일을 시작하려는 일본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유카씨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무엇을 보고 한국에 오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우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한국을 많이 배우고, 사람들과 관계도 만들면서 즐겁게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나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목표로 정해놓고 한국에 온 것은 아니다. 목표 하나만 보고 일직선으로 가려고 하면 사람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더 즐겁고 도움이 된다.
유카네는 계속하고 싶다. 오래된 가게, 노포가 됐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일본에서도 무언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은 혼자 산다. 가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쉬는 날에는 조용히 지낸다. 일본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간다. 인천공항을 이용하면 다른 나라로 가기도 편하다. 그것 역시 내가 한국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돌아보면 한국에서의 삶도, 유카네를 연 일도 처음부터 계획한 길은 아니었다. 유카씨는 자신의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인생을 너무 멀리 정해놓고 살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만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좋지 않았던 경험도 언젠가는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이곳에서 가게를 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힘들었던 일도 있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도 많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일을 나중에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카네도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곳. 나도 그렇게 오래, 내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다.”
☞ 마크로비오틱: 제철 채소와 곡물을 주로 사용하고 식품을 있는 그대로 섭취하는 것을 지향하는 식생활법.
☞ 오반자이: 일본 교토의 전통적인 가정식 반찬을 뜻하며 제철 식재료로 간단하게 만든 요리.
☞ 코네스트: 한국을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여행 및 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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