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출발해 키르기스스탄 오쉬까지 약 2,000km를 달린다. 해발 7,000m급 설산이 솟아 있고 깊은 협곡이 이어지는 파미르 고원이다. 자동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국경 마을과 고산 호수, 유목민의 초원, 4,655m 고개가 차례로 나타난다.
EBS1 ‘세계테마기행’이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오후 8시 40분 ‘파미르 하이웨이 2,000km’를 통해 이 길을 달린다. 큐레이터는 사진작가 최경진이다.
■두샨베에서 시작된 2,000km, 아프가니스탄을 마주한 길
여정의 출발은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다.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이 매주 월요일 모여 장을 열었던 데서 도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파미르로 떠나기 전에는 메흐르곤 시장에 들러 현지 식재료와 먹거리를 살펴본다. 흑종초 꿀을 맛보고 납작 복숭아를 구입한 뒤 본격적인 이동에 나선다.
파미르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 현지 운전기사와 함께 GBAO(Gorno-Badakhshan Autonomous Oblast) 허가증을 확인한 뒤 차량에 오른다. 목적지는 파미르 하이웨이의 관문도시로 불리는 칼라이쿰이다. 길은 판지강을 따라 이어지고 강 건너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이 보인다. 국경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산악 지형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고원으로 들어간다.
해발 1,400m가 넘는 칼라이쿰에서는 길에서 만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축구공을 건네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고 함께 공을 차며 시간을 보낸다. 거대한 산맥을 통과하는 여행에서 만난 현지인과의 짧은 만남이 여정의 또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파미르의 깊은 산속에서는 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시간도 이어진다. 바르탕 계곡의 지제브 마을로 가기 위해 높은 산길을 따라 트레킹에 나선다. 아찔한 다리를 건너고 계곡과 숲을 지나면 에메랄드빛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에서는 150년 된 가옥에서 주민들과 식사를 나누고, 닭요리를 맛보며 여행자를 맞이하는 현지의 환대를 경험한다.
다음 날에는 마을 보건소에 들러 감기약을 처방받고 다시 길을 나선다. 두 번째 마을에서는 사과를 줍고 말리는 일을 돕고 염소를 몰아보기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낸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인화해 건네며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여행의 기록을 남긴다.
■해발 3,700m 마을부터 4,655m 고개까지
파미르 하이웨이는 호로그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파미르 고원의 최대 도시로 소개되는 호로그에서는 80여 년간 운영된 파미르 식물원을 찾는다. 높은 고도에서도 자라는 꽃과 나무가 자리한 곳으로, 한국에서 건너온 사시나무도 만날 수 있다.
고대 유적도 이 길에 있다. 기원전 300년경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얌춘 요새는 침략자를 막고 주변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였다. 지금은 와칸 회랑의 산악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다. 인근의 비비 파티마 온천에서는 아이를 낳기를 원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과 함께 천연온천을 경험한다.
차량이 다시 고도를 높이면 해발 3,700m 이상에 자리한 블룬쿨 마을에 닿는다. 혹독한 겨울로 알려진 고산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풀을 벤다. 방목 중인 야크도 만난다. 높은 고도에 적응한 야크는 이곳 주민들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
블룬쿨 호수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가능한 그물 낚시가 이어진다. 직접 잡은 생선은 곧바로 튀겨 식탁에 오른다. 특별한 양념 없이도 바삭하게 익힌 생선을 맛보며 고산마을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경험한다.
그리고 파미르 하이웨이의 최고점인 악바이탈 고개를 향한다. 해발 4,655m에 이르는 고산 고개다. 급격한 고도 변화로 현지 운전기사가 코피를 흘리면서 차량을 멈추는 상황도 벌어진다. 현지인에게도 쉽지 않은 고도에서 다시 길을 이어가면 눈앞에 파미르의 거대한 산악 풍경이 펼쳐진다.
■야크를 돌보는 초원, 눈앞에 다가온 레닌봉
악바이탈을 지나 여정은 국경 인근의 카라쿨 호수로 이어진다. 운석 충돌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호수를 바라본 뒤 국경을 넘어 파미르 하이웨이는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어진다. 밤새 달려 도착한 곳은 사리모골이다.
사리모골은 주변에 여러 트레킹 코스가 있어 고산지대 여행의 거점으로 알려진 유목마을이다. 이른 아침에는 가축시장이 열린다. 트럭에 실려 온 가축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사람들이 직접 등을 만지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악수를 나누며 거래를 진행한다.
숙소에서는 창밖으로 레닌봉이 보인다. 이후 주인장의 친척이 운영하는 자일로로 이동해 고산 초원에서 이어지는 유목민의 생활을 만난다. 이곳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말을 배우고 초원에서 가축을 돌본다. 직접 말을 타고 야크를 살피고 유르트에서 전통 음식 플롭을 함께 먹으며 현지의 생활을 경험한다.
여행의 또 다른 목적지는 툴파르콜 호수다. 이어 왕복 8시간이 걸리는 트래블러 패스 트레킹에 나선다. 높은 산길을 오르다 산악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에서 잠시 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길에서는 다른 여행객들과 만나고 바위틈에서는 야생 마멋도 발견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경도 달라진다. 빙하지대가 펼쳐지는 산길을 지나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가팔라지는 길에서는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며 이동한다. 마침내 해발 4,150m 표지석이 있는 곳에 올라 7,000m급 고산인 레닌봉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초원과 설산이 맞닿은 파미르의 풍경이 여행자의 시야에 들어온다.
■붉은 절벽을 지나 오쉬까지, 길 끝에서 만난 사람들
마지막 여정은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산악 마을 코조겔렌으로 이어진다. 붉은 사암 절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는 감자를 캐던 주민을 만나 마을의 유래를 듣는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 코조가 찾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신성한 샘도 찾아간다.
파미르 고원을 바라볼 수 있는 트레킹에서는 날씨가 급변해 걷기를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일이 반복된다. 붉은 사암 절벽과 설산, 산 아래 자리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포인트에 도착하면서 또 다른 파미르의 풍경을 만난다.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개울에서 송어를 낚는 청년을 만난다. 그의 집으로 초대받아 직접 잡은 송어를 요리하고 가족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 긴 여정의 마지막 구간에서 만난 현지인의 초대가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이어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최종 목적지는 키르기스스탄의 오쉬다. 3,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로, 새롭게 단장한 시장에서는 전통 모자와 캄치라는 채찍을 구입하며 현지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한다.
두샨베에서 출발한 길은 오쉬에서 끝난다. 약 2,000km를 달리는 동안 판지강 너머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고, 고산마을의 주민들과 식사를 나누고, 야크가 살아가는 초원을 지나 4,655m 악바이탈 고개를 넘었다. 마지막에는 오쉬의 성스러운 산으로 알려진 술라이만투에 올라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1년에 약 100일만 허락된다는 파미르 하이웨이는 그렇게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잇는 긴 여정의 끝에 닿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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