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은 각종 심장질환이 진행된 끝에 나타나는 중증질환으로 높은 사망·재입원 위험을 동반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심부전을 독립적인 국가관리 대상으로 바라보는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심뇌혈관질환 관리의 법적 기반이 정비된 가운데 대한심부전학회가 후속 하위법령에 심부전을 국가관리 대상 질환으로 명확히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심부전학회는 11일 ‘Heart Failure Seoul 2026(HF Seoul 2026)’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 심부전 관리의 주요 현안과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HF Seoul 2026은 대한심부전학회가 주최하는 국제심포지엄으로 올해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12일까지 열리며 전 세계 22개국에서 약 1750명이 참석했다.
유병수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급속한 고령화로 심부전환자가 빠르게 늘면서 학회의 책임감도 더욱 커지고 있다”며 “이번 자리가 정부·국민과의 소통을 넓히고 심부전에 대한 학회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뇌법 개정 후속조치 중요…“심부전 국가관리 대상으로 명확히 해야”
학회가 가장 강조하는 현안 중 하나는 심부전의 국가관리체계 강화다.
학회에 따르면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8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심뇌혈관질환의 정의와 관리체계가 정비됐다. 특히 심뇌혈관질환의 종류에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을 추가해 하위법령을 통해 국가관리 대상 질환을 확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심부전 등 중증 심장질환은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심부전은 높은 사망률과 반복 입원, 장기적 의료비 부담을 동반하는 만큼 학회는 향후 시행령 등 하위법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심부전을 국가관리 대상 질환으로 명확히 포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회 이해영 정책이사(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부전으로 인한 심근경색증의 증가로 의료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심부전을 중점으로 한 제도적 뒷받침은 없다”며 “심뇌혈관질환 관리법에 심부전을 명시하는 것은 국내 심근경색증 사망률을 낮추고 중증심장질환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피력했다.
나아가 학회는 심부전의 질환 정의와 국가관리 범위가 명확해져야 관련 코드와 국가통계를 정비하고 진료체계 및 지원사업을 구축하는 작업도 뒤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학회는 심부전을 중증·전문질환군에 포함하는 방안 역시 구체적인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질병분류체계는 질병 자체의 중증도에 기반하지 않고 단순히 청구건수에 따라 분류되고 있으며 심부전은 중증도가 높은데도 일괄 일반질환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심부전 진료지침도 바꾼다…아시아 최초 ‘GRADE’ 전면 도입 추진
임상현장에서는 심부전 진료지침의 대대적인 개정이 추진된다.
대한심부전학회는 올해 발표를 목표로 개정 중인 ‘심부전 진료지침 2026’에 국제표준 근거평가체계인 GRADE(Grading of Recommendations, Assessment, Development and Evaluations) 방법론을 전면 도입했다.
GRADE는 단순히 연구근거의 수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근거의 질과 권고의 강도를 구분해 평가하고 치료의 이득과 위해, 환자의 가치관, 의료자원, 형평성, 수용성, 실행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고안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이번 지침은 8개 핵심질문을 중심으로 ▲회복된 심부전(HFimpEF)의 치료 감량 ▲박출률 보존·경도감소 심부전(HFpEF·HFmrEF)의 SGLT2억제제·ARNI·비스테로이드성 MRA·GLP-1작용제 ▲ATTR 심장아밀로이드증 신약 ▲급성심부전 입원 중 조기치료 등 최근 근거가 빠르게 축적되고 있는 주제를 다룬다.
학회는 HF Seoul 2026에서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국내외 전문가와 임상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뒤 유관학회 및 대한의학회 인증절차를 거쳐 연내 최종 진료지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22개국 1750명 한자리에…심부전 최신지견 공유
올해 HF Seoul 2026의 주제는 ‘Reimagine, Rethink, Revolutionize Heart Failure Care’로 심부전 치료의 관점과 혁신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춰졌다. 총 70개 세션을 통해 심부전의 기초부터 최신 연구와 임상현장의 주요 쟁점까지 폭넓게 다룬다.
HF Seoul 2026을 소개한 학회 심지영 학술이사(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부전은 영양사, 물리치료사 등 의사 외 다양한 직군이 힘을 모아 치료·관리해야 한다”며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다학제 면모를 갖춘 학회의 모습을 강조하고자 운동, 영양 등의 최신지견을 논의하는 프로그램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젊은 연구자와 의료진을 위한 참여형 프로그램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Agora’에서는 심실보조장치를 직접 다뤄보는 실습부터 AI를 활용한 연구 그래픽 제작 및 논문 작성, 심폐운동검사의 실제 적용과 해석 등 실전형 교육이 진행됐다.
■학술의 장 넘어 국민과 함께…장기기증 등 인식개선 주력
대한심부전학회는 학술·정책 활동뿐 아니라 사회공헌과 대국민 인식개선 활동도 확대한다.
HF Seoul 2026 현장에서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함께 뇌사 장기기증 안내·상담 부스가 운영됐다. 말기 심부전환자 치료과정에서 장기이식이 중요한 치료선택지가 될 수 있는 만큼 의료진부터 장기기증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발적인 참여와 사회적 인식개선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관련 발표에 나선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장은 다른 장기와 달리 생체기증이 불가능해 사후기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 뇌사 기증에 의존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뇌사추정자를 조기에 발견해 기증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DCD 도입을 위한 법·제도와 진료체계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국민 홍보활동도 소개됐다.
학회는 올해 3월 ‘심부전주간’을 통해 시민강좌와 온라인 콘텐츠 등을 진행했으며 감염으로 인한 심부전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진 대상 백신 교육도 강화했다.
박상미 홍보이사는 “호호호 캠페인과 유튜브 등을 통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심부전을 국민 눈높이에서 쉽게 알리고 평소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며 “앞으로도 국민들에게 와닿는 다양한 홍보 콘텐츠를 발굴해 심부전의 중요성과 심장건강 관리의 필요성을 적극 알리겠다”고 전했다.
학회는 ‘세계 심장의 날(9월 29일)’을 맞아 19일 개최되는 걷기대회에서 홍보부스를 운영, 국민에게 심부전의 주요 증상과 조기진단·지속관리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