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반경을 넓히기 위한 정부의 지역관광 전략이 본격화된다. 수도권에 집중된 방한 관광 수요를 지방으로 끌어내기 위해 지방국제공항을 관광의 출발점으로 삼고 인근 도시를 하나의 여행권으로 묶는 방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구상은 김해·대구·청주·양양·무안공항을 각각 지역 관광의 관문으로 삼는 것이다. 공항에서 내려 곧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망과 관광상품을 함께 설계해 외국인의 지방 체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선정된 관광권은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관광자원을 고려해 구성됐다. 김해공항권은 부산을 출발해 경주와 울산을 거쳐 거제·통영으로 이어진다. 대구공항권은 대구에서 경주와 안동을 잇는다. 청주공항권은 청주와 공주·부여, 익산·전주를 연결하고, 양양공항권은 양양·강릉·속초를 하나의 여행권으로 묶는다. 무안공항권은 무안·목포에서 옛 광주를 거쳐 여수까지 이어진다.
■공항에서 내려 '한 도시'가 아닌 '여행권'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관광지를 개별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지방공항에 도착한 뒤 여러 도시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관광권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접근이다.
그동안 지역 관광은 유명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어도 외국인이 찾아가기 어렵다는 문제가 반복됐다. 국제선 부족, 도시 간 이동의 불편, 결제 수단의 제약 등이 지방 관광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관광자원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이를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약했던 셈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공항에서부터 풀겠다는 구상이다. 지방공항 국제선을 확대하고 공항과 크루즈 항만을 연결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관광권 안에서 도시 간 이동이 편리하도록 대중교통 연결망도 손질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교통수단을 따로 알아보고 결제해야 하는 불편도 줄인다. 관광지 할인과 교통 결제를 결합한 '한국관광 통합패스'를 관광권을 기반으로 도입해 이동과 관광 소비를 하나로 묶는 방안이 추진된다.
■경주가 두 관광권을 잇는 이유
5개 권역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경주다. 김해공항권과 대구공항권에 모두 포함되면서 영남권 관광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게 됐다.
경주는 신라 역사문화유산을 앞세워 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시다. 부산의 해양·도심 관광, 울산의 산업·마이스 관광, 거제·통영의 자연과 문화예술 관광과 결합하면 여행 기간을 늘릴 여지가 있다.
대구에서는 의료관광과 근대문화, 안동에서는 유교문화, 경주에서는 신라문화유산을 경험하는 방식으로 여행상품을 구성할 수도 있다. 각각 다른 성격의 관광자원을 가까운 거리에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영남권 관광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청주공항권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활용한다. 청주의 문화·예술과 쇼핑을 비롯해 공주·부여·익산의 역사유산, 전주의 전통문화를 묶어 수도권에서 접근하기 쉬운 내륙 역사문화 여행권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양양공항권은 성격이 다르다. 설악산과 동해안의 자연환경에 서핑, 케이콘텐츠 촬영지, 평창동계올림픽 유산을 결합한다. 역사문화유산에 집중된 기존 지방관광과 달리 자연·스포츠·대중문화 콘텐츠를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안공항권은 남도의 음식과 문화예술을 앞세운다. 무안과 목포의 서해안 관광자원에서 광주를 거쳐 여수의 항만과 섬·레저 관광으로 이어지는 여행 동선을 구축해 체류 기간을 늘리는 전략이다.
■관광지는 많은데 외국인은 왜 지방을 지나칠까
한국의 지역관광이 안고 있는 문제는 관광자원의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경주에는 세계적인 역사유산이 있고 부산에는 해양관광과 도시 콘텐츠가 있다. 전주와 안동에는 전통문화가 있고 강원 동해안에는 산과 바다가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 입장에서 지방 여행은 여전히 선택 비용이 높다. 공항에서 관광지까지 어떻게 이동할지, 도시를 옮길 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지, 현지에서 어떤 관광상품을 예약할지 따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별 행정구역에 맞춰 관광상품이 만들어진 것도 문제였다. 여행객에게 부산과 경주, 울산은 하나의 일정으로 묶을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사업 대상이다. 각 지자체가 관광객을 자기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하면 여러 도시를 함께 소비하는 여행상품을 만들 유인이 약해진다.
관광객이 지방에 도착하도록 만드는 것과 지방에서 며칠 머물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제선 한 편을 늘리는 것만으로 지역관광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항공편 이후의 이동과 숙박, 관광, 쇼핑이 이어져야 지역에 돈이 남는다.
정책은 이 오래된 문제를 공항에서부터 다시 설계하겠다는 접근이다.
■935억원의 승부처는 '관광객 숫자' 이후다
정부가 내년도 이 사업에 책정한 규모는 국비 659억원과 지방비 276억원을 합쳐 935억원이다. 해외 홍보에 180억원, 지방공항과 크루즈 항만을 활용한 외국인 유치에 143억원, 교통과 결제 편의 개선에 149억원, 지역 특화 콘텐츠 개발에 187억원을 투입한다.
사업의 성패는 광고보다 실제 여행 편의성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 지방공항으로 외국인을 유치하더라도 공항에서 관광지까지 이동이 어렵거나 도시 간 교통이 불편하면 서울로 돌아가는 기존 여행 패턴을 바꾸기 어렵다.
따라서 지방공항의 국제선 확대와 관광상품 개발이 따로 움직여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항공편이 늘어나고,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고, 다음 도시로 넘어가고, 관광지를 방문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도 변수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행정구역의 경계가 여행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부산에서 경주로 이동하고 다시 울산이나 통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편리하다면 여러 지역을 하나의 일정으로 소비할 수 있다. 반대로 도시마다 관광상품과 교통체계가 따로 움직이면 관광권이라는 이름만 남을 가능성이 있다.
문체부는 관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2027~2030년 관광권별 중장기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5개 지방공항을 수도권과 제주 관광까지 연결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2029년 방한 관광객 3000만명, 이 가운데 지방 입국객 500만명이다. 전체 관광객 규모를 키우는 것만큼 외국인이 서울을 벗어나 지역에서 며칠을 머물고 얼마나 소비하느냐가 중요해진다.
한국 관광의 다음 경쟁력은 서울의 관광객을 더 많이 받는 데만 있지 않다. 부산에서 경주로, 청주에서 전주로, 양양에서 속초로, 무안에서 여수로 이어지는 이동 자체를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데 있다. 지방공항 5곳을 출발점으로 한 이번 전략이 지역 관광의 일회성 방문을 장기 체류로 바꾸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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