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自由)란 무엇인가? 당연히 이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할 권리’로 정의된다.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놀고 싶을 때도 맘대로, 가고 싶은 곳도 맘대로. 이것이 곧 ‘자유’라는 단어의 평이한 풀이다. 물론 이도 필요하다.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양심·종교·언론·출판·집회·결사·학문·예술의 자유 등은 다 인간의 기본권들이므로 우리 사회도 이를 보장해준다.
하지만 질문. 그래서 이 자유로 우린 진정 자유로워졌는가? 그 권리의 확대가 과연 내 행복의 확대도 가져왔는가? 혹이라도 그 자유가 방종이 됐거나, 내 자유만 주장하느라 남의 자유까지 침해한 일은 없는지는 묻고 싶다. 설마, 왜 없겠나? 늘 맘대로만 살려는 인생에 어떻게 부작용이 없겠나?
그렇다면 또 질문. 왜 이렇게 지고의 가치처럼 여겨온 이 자유에도 이런 역설은 존재하는가? 자유가 마냥 좋기만 한 절대가치라면 어떤 그늘도 없어야 할 텐데.
그래서 생각해봤다. 그랬더니 이는 우리가 이 자유를 너무 한쪽으로만 배운 탓임을 깨닫는다. 또 다른 차원의 자유도 있음을 몰랐던 게다. 그게 바로 성서(聖書) 요한복음 8장 32절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신 말씀의 자유다.
놀랍게도 이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이기보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
예컨대 탁구 선수에게 있어서의 자유가 어떤 선수와 시합을 붙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공을 구사하는 능력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으로서의 자유’ 역시 너무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어떤 고난이라도 넘어서고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고 어떤 상황도 넘겨내는 능력. 그래서 어떤 이는 옥중에서라도 찬양하고, 위험 중에서라도 기도하고,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는 자유. 추월하려고만 하기보다 초월할 수도 있는 자유.
이 자유는 어디서 올까? 물론 이는 놀랍게도 ‘진정한 구속’에서 온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에게만큼은 확실히 구속될 때 온다.
마치 물고기의 자유가 물에서부터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속으로 들어감에 있듯,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자유 역시 담장이 잘 둘러쳐 있을 때 가능하듯 신앙인의 자유 또한 그러하다. 하늘을 나는 연도 얼레로부터 연결된 연줄에 묶여 있어야 창공을 날지, 그 연줄을 구속처럼 여기고 끊어 버리면 그 순간 연은 곧 땅바닥에 처박히고 마는 이치다.
그러므로 정말 인간이 진정 자유를 원한다면 전능자 하나님에게만큼은 꼭 구속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가난하든 부(富)하든 일체의 비결도 배운다. 그런데 그 전능자에게서조차 자유로워지려 한다면 그때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을 다 구속해버릴 것이다. 물질에, 명예에, 권세에, 관계에, 기분에 매일같이 묶여버릴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것. 그 능력이 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자유는 ‘아름다운 구속’에 있다는 것. 그 구속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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