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줄 평
“슬픔은 성장했어도, 숨길 수 없는 표정이 있다.”
▲시 한 편
<슬픔의 방향> - 장인수
샛길은 지도 안에 있다가
지도 밖으로 슬그머니 흐른다
삶이 잠깐 숨을 고르다 흘려보낸 방향
그 샛길은
좁고, 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걷다보면 안다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샛길에 숨어 살고 있음을
언덕길 고라니 발자국소리
푸릇푸릇한 보리밭 흔들림
백곡천 돌밭에서 홀로 커피 한 잔 끓여먹는 외로움
배티성지 무명 순교자의 초라한 무덤 앞에서 만난
14개 작은 나무 십자가
내 발소리에 놀라 도망가지 않는 고요
나를 오래 지켜본 어떤 슬픔의 방향이
조용히 내 발길을 끌어당기며
샛길로 데려가는 것이다
▲시평
이 시를 읽다가 문득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해묵은 논제를 떠올렸다.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냐에 따라 답은 달라지겠지만, 바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한가한 질문이 아닐까. 이 같은 생각을 한 이유는 샛길이 먼저인지, 큰길이 먼저인지에 생각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답은 명확하다. 당연히 샛길이 먼저 생겨났다. 샛길은 ‘새(사이)+길’이 결합한 말로, 큰길에서 갈라져 나간 작은 길이나 지름길을 뜻한다. 물체와 물체 사이, 혹은 두 공간의 틈새에 난 소로다. 이 길이 점점 넓어져 큰길이 되지 않았을까. 이 시는 샛길을 위주로 하고 있어 큰길은 샛길 뒤에 숨겨져 있다. 하나의 상황 같지만, 세 개의 샛길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도시에서 벗어나는 샛길이다. 두 번째는 고향집에서 백곡천에 이르는 샛길이다. 세 번째는 돌아오는 길에 들른 배티성지에 이르는 샛길이다. 우선 시인은 샛길을 정의한다. 샛길은 “좁고, 휘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와 대비되는 큰길은 넓고, 곧고, 끝이 보이는 공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멀기 때문이 아니라 휘어져 있기 때문이다. 곡선과 미지의 공간인 샛길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샛길은 “지도 안에 있”지만, 큰길에 비해 미미한 존재다. 그렇다면 “지도 밖으로 슬그머니” 흐르는 주체는 시인이다. 여유가 없는 도시인의 삶을 큰길로 본다면, 샛길은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외로움과 슬픔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은 지금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로 향하고 있다. 백곡천은 충북 진천을 흐르는 하천이다. 즉 시인은 고향인 진천으로 가서 두 번째 샛길을 따라 백곡천으로 가고 있다. 그 언덕길에는 고라니가 지나간 발자국과 “푸릇푸릇한 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린다. 샛길이 숨긴 풍경이다. 시인은 “백곡천 돌밭에서 홀로 커피 한 잔 끓여” 마신다. 언덕길이나 보리밭, 커피가 상징하듯 잠시 도시를 떠난 것이지, 완전한 자연에 귀의한 건 아니다. 따라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외로움은 일시적인 해방감이면서 순간의 그리움이다. 세 번째 샛길에서 마주한 고요는 세속의 공간에서 숭고한 영역으로의 승화로 볼 수 있다. 도시의 슬픔이나 시골의 외로움은 종교적 공간 앞에서 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배티성지 무명 순교자의 초라한 무덤 앞에서 만난/ 14개 작은 나무 십자가”를 통해 ‘마음의 샛길’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한다. 샛길에는 여유와 외로움과 고요가 산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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