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무대 위에서는 사랑을 연기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연극 '캐스팅'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두 배우를 통해 무대와 현실이 뒤섞이는 순간을 포착한다.
창작그룹 가족이 제24회 정기공연으로 박춘근 작가의 연극 '캐스팅'을 선보인다. 공연은 오는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스카이씨어터 2관에서 열린다. 제2회 스카이씨어터 연극제 '연극에 대한 연극' 참가작이자 연극제의 첫 작품으로 관객을 만난다.
작품은 이혼을 앞둔 배우 부부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관계를 정리하려는 시점에 한 작품에서 각각 로미오와 줄리엣을 맡게 된다. 현실의 부부에게는 끝을 향한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무대에서는 사랑에 빠진 연인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내는 오랜 단역 생활을 견딘 끝에 주연 배우의 자리에 올랐다. 반면 남편은 화려하게 배우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후 긴 슬럼프를 겪는다. 서로 다른 배우 인생은 부부 사이의 감정과 자존심에도 깊숙이 얽혀 있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본 속 이야기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작품 속 연인의 대사는 두 배우가 감춰왔던 감정을 건드리고, 무대에서 나누는 사랑의 언어는 현실에서 쌓여온 상처와 맞부딪힌다.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은 '캐스팅'을 이끄는 핵심이다. 작품은 남우와 여우 단 두 배우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2인극으로, 배우의 표정과 말투, 호흡 하나까지 관객에게 직접 전달한다.
공연에서는 같은 작품을 두 페어가 각각 다른 감각으로 풀어낸다. 남우 역에는 윤돈선과 손우정, 여우 역에는 장설하와 장정은이 더블캐스팅됐다. 윤돈선·장설하, 손우정·장정은이 각각 한 팀을 이뤄 무대에 오른다.
특히 두 페어의 나이 차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재미를 만든다. 30대 배우인 손우정과 장정은은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부부의 감각으로 작품에 접근한다. 50대 배우인 윤돈선과 장설하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물의 감정을 풀어낸다.
같은 대사와 같은 상황도 배우가 살아온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대사 뒤에 어떤 기억과 감정이 배어드는지에 따라 공연의 호흡 역시 달라질 전망이다. 한 작품을 두 페어의 연기로 비교해 보는 것이 이번 공연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연출은 창작그룹 가족에서 극작과 연출을 이어온 허병필이 맡는다. 그는 '네 차례야', '흐노니', '살치살, 8인분', '실버 라이닝' 등을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인 이야기를 무대에 풀어왔다.
허병필 연출은 이번 '캐스팅'에서도 두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관계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구조를 섬세하게 다룬다. 배우가 인물을 연기하는 순간과 배우 자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교차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연극제의 문을 여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캐스팅'은 의미가 있다. '연극을 통해 연극을 묻고, 무대 위에서 다시 연극을 발견하다'라는 연극제의 취지처럼 작품 속 배우들은 연극이라는 허구를 통해 오히려 현실의 감정을 드러낸다.
무대 위에서 사랑을 연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결국 배우라는 직업과 부부라는 관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으로 확장된다. '캐스팅'은 그 간극을 두 배우의 대화와 연기로 밀어붙이며,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를 무대 안으로 끌어들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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