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사람의 얼굴에는 두 개의 표정이 있다. 환하게 웃으며 예배를 드리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봉사하는 얼굴.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문 안쪽에서 오래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울음을 쏟는 얼굴. 교회 마당에서 웃던 한 집사님이 상담실 문이 닫히자마자 오열하는 순간,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다. 이승철 목사의 '마음 현상소'는 바로 그 보이지 않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한다.
창원성산교회 담임목사이자 대신대학교 교수인 이승철 목사가 2일 희스토리에서 펴낸 '마음 현상소'는 목양실과 상담실에서 마주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사진관의 암실이라는 은유로 풀어낸 책이다.
책 제목은 저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비롯됐다. 사진관 한구석에 있던 암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 사진사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여기 빛 들어가면 다 망가진다." 어린 시절에는 사진을 현상하기 위한 평범한 말이었지만, 훗날 저자에게 이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은유가 된다.
상처 역시 그렇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갑작스럽게 강한 빛을 비추면 회복보다 또 다른 손상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어둠 속에 덮어둔다고 상처가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미현상 필름처럼 마음속 상처 역시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이 바라보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신앙의 모습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면서도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혼자 있는 순간 깊은 절망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이런 고통을 '신앙적 억압'이라는 언어로 설명한다. 속으로는 피가 흐르는데 그 위에 '할렐루야'라는 반창고를 덧붙이는 모습이다. 믿음이 있다면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고통을 숨기게 만들고, 숨겨진 고통은 다시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인다.
책에 등장하는 한 찬양팀 청년의 이야기는 그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청년부 리더와 찬양팀으로 활동하며 주변으로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던 그는 상담실에서 혼자 방에 들어가면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그 고백 앞에서 신앙을 더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먼저 그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인정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킨다. 상처를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한다. '마음 현상소'가 보여주는 치유의 시작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데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상처를 품은 사람이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폭언과 어머니의 방관 속에서 성장한 서른두 살 청년은 자신을 쓰레기처럼 여기고 있었다. 오랜 시간 굳어진 자기혐오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상담을 거치며 그의 삶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수개월 뒤 그는 교회 학생회 교사로 섬기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여기서 책은 치유를 새로운 언어로 바라본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이해한 사람이 또 다른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픔은 반드시 지워야 할 흔적만은 아니다. 때로는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는 감각이 되기도 한다.
저자가 끌어오는 킨츠기의 이미지도 그래서 인상적이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이는 킨츠기는 금이 간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깨진 자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남긴다. 사람의 마음 역시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보다 그 흔적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비유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을 상담자와 치유자의 완성된 모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박사 학위를 가진 담임목사이자 교수이면서도 자신 역시 부족함과 자기혐오에 흔들렸던 시간을 고백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아이에게 화를 낸 뒤 방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던 이야기는 책의 진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저자는 아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아빠가 백 번 틀렸고, 아빠가 잘못했어." 권위보다 사과를 선택한 순간, 치유는 타인을 향한 조언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먼저 시작된다.
또 다른 의미는 신앙과 심리, 영성과 정서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데 있다. 대신대학교 최대해 총장은 신앙과 심리, 영성과 정서가 서로를 배척하는 적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베들레헴교회 최광영 목사 역시 '마음 현상소'의 미덕으로 균형을 꼽았다.
그래서 '마음 현상소'는 상담 사례집이나 신앙 에세이라는 한 가지 이름만으로 묶기 어렵다. 책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정한 누군가의 고통에 머물지 않고, 괜찮은 척하며 하루를 견디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으로 확장된다.
저자가 말하는 암실은 어둠 자체를 찬양하는 공간도, 상처를 영원히 숨겨두는 장소도 아니다. 충분히 준비된 뒤 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그 기다림이 회복을 위한 첫 번째 돌봄이 될 수 있다.
결국 위로는 완벽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금이 가 있고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상처가 멈춘 뒤에야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은 사람이 또 다른 아픔 앞에 설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진이 완성되기 위해 어둠의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의 마음에도 서둘러 빛을 들이지 않아야 할 시간이 있다. '마음 현상소'는 그 시간을 존중한다. 웃음 뒤에 감춰진 울음을 발견하고, 말하지 못했던 상처에 조용히 이름을 붙이며, 언젠가 스스로 빛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
책장을 덮고 나면 암실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어둠은 반드시 끝내야 할 공간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빛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장소일 수도 있다. '마음 현상소'는 바로 그 사실을 조용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기록한 마음의 서사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