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조경태·진종오·권영진·서범수 의원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했다. 기반이 약한 리더에게 숙청은 매우 유혹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적에 대한 미움만으로 통치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친구를 늘리는 것이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가 지난 20일 조경태·진종오·권영진·서범수 의원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징계가 확정되면, 조 의원은 2년6개월, 진 의원은 2년, 권 의원은 1년6개월, 서 의원은 10개월 동안 당원권이 정지된다.
멱살잡이
조 의원은 국회부의장 후보 당내 경선에서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에게 패한 후 다른 당 의원들에게 “본회의에서 박 의원 선출을 반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로 제소됐다. 서 의원은 보완수사권 폐지 토론회에서 진 의원에게 “돌려차기 한번 하시죠”라고 말했고, 진 의원은 “저는 발보다 손을 더 잘 쓴다”고 답변했다.
윤리위는 “진 의원이 지난 6월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을 지지하고 보좌진을 파견해 지원했다”고 판단했던 반면, 진 의원은 “보좌진 파견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권 의원은 제22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 배분 결과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정점식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았다.
징계가 확정되면, 조·진 의원은 사실상 국민의힘에서 제23대 총선 공천을 받을 수 없다. 권 의원도 징계 효력이 공천 작업 시기까지 이어져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권 의원은 “지난 27년 동안 영욕을 함께하며 지켜온 이 당에서 사실상 정치를 접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정치적 테러”라며 “장동혁 당권파로부터 받은 징계를 훈장으로 삼아 이제부터 더 당당하게 싸우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징계를 ‘비장횡사’라고 표현한다. 공교롭게도 4명 모두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거나 소장파 그룹 ‘대안과미래’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비당권파이기 때문이다.
징계 형평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지난 13일 새역사국민운동과 함께 5·18 폄훼 논란을 빚은 ‘자유민주 관점 5·18 학술 포럼’을 공동주최한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도 책임당원 3700여명에 의해 윤리위에 제소됐다.
조 의원은 지난 19일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이 의원은 왜 징계하지 않느냐? 이 의원은 5·18 정신을 훼손시킨, 그야말로 헌법 정신을 훼손시킨 자이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반대로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날 채널A <정치시그널>에서 “과거 미래통합당 김순례 전 의원이 직접 문제 발언한 것과 달리 이 의원은 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라며, “5·18에 대한 역사적 존중과 표현의 자유 문제를 나눠 봐야 한다”는 취지로 두둔했다.
비당권파 중징계·당권파엔 침묵
엇갈리는 윤리위 잣대…기강 잡기?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도 지난 17일 “그 토론회는 학술 행사였고, (이 의원이) 행사에서 나온 발언들이 본인 입장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 ‘감동란’에서 시각장애인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박민영 미디어대변인은 윤리위 심의를 받았지만 4인과 같은 중징계가 확정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박 대변인의 사표를 반려한 후 다시 그를 미디어대변인으로 임명했다.
5선 중진인 국민의힘 윤상현·김기현 의원도 우려를 나타냈다. 윤 의원은 지난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중징계에 대해 당 안팎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징계 정치의 시작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저 역시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지난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당의 기강을 존중받는 리더십에 기반해 세우지 않고 칼로 세우려 한다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재명 정권의 ‘닥치고 수사’ ‘닥치고 기소’ 같은 공포 정치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같은 이견만으로 장 대표의 기반이 약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 결선에서 50.27%를 얻어 김문수 후보를 2367표 차로 꺾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참패 뒤에는 지도부 책임론에도 직면했다. 당내 기반이 압도적으로 두텁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 기반이 불안한 리더는 경쟁자를 제거해 권력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경쟁자만 제거해서는 통치할 수 없다. 자신을 떠받칠 새로운 연합도 필요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전 대표였던 무소속 한동훈 의원을 윤리위를 통해 제명하면서 ‘칼 맛’을 봤다. 하지만 정적을 숙청한다고 친구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 제3대 무인집권자 경대승이다.
적 미워하면 안 되는 이유
영화 속 마피아 두목 일침
경대승은 결사대 30여명과 국왕 호위부대인 견룡군 소속 허승 등의 협력으로 정중부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정중부를 죽인 후 그를 따르던 무인들의 표적이 되는 등 권력 불안에 시달렸다. 결국 거병 동지였던 허승·김광립까지 제거했고, 100여명 규모의 사병기구 도방을 설치했다.
경대승은 도방 장사들의 범죄를 무마해 주면서까지 이들에게 의존했다. 이어 도방을 고위 무신 감시와 반대 세력 숙청에도 활용했다. 하지만 정국은 안정되지 않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는 죽은 정중부가 칼을 들고 자신을 꾸짖는 꿈을 꾼 후 병을 얻어 1183년 30세에 요절했다고 한다.
한 의원을 제명했다고 국민의힘이 안정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설령 이번에 징계된 4명은 물론 비당권파 전원을 중징계한다고 해서 장 대표가 꿈꾸는 ‘단일대오 정당’이 완성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리더가 집단에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은 통치의 명분이다. 함께할 ‘친구’도 많아야 한다. 경대승은 ‘복고’를 표방했다. 그 때문에 기존 무신들이 그를 경계하게 했고, 국왕 명종도 그를 꺼렸다. 경쟁자를 제거한 후 이를 안정적인 권력연합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 사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르면서 집권을 시작했다. 그는 태자당 출신이었지만, 후진타오의 공산주의청년단과 같은 전국 단위 자기 조직은 없었고, 독자 계파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시 주석은 집권 직후 ‘반부패’를 내세워 기존 당내 권력망을 약화시켰다. 아울러 푸젠·저장·상하이 시절 함께 일했던 인사들을 중앙과 지방 요직으로 끌어올렸다. 군에서도 쉬차이허우·궈보슝 등을 부패 혐의로 제거한 후 대규모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자신의 통제를 강화했다.
경대승과 시진핑의 차이는 ‘경쟁자를 제거했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경쟁자를 제거한 후 자신을 떠받칠 사람과 조직을 만들었느냐’는 차이가 있었다. 장 대표의 ‘단일대오’가 지지연합의 확대일지, 반대 목소리의 감소에 그칠지는 별개의 문제다.
통치의 명분
영화 <대부 3>의 마피아 두목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는 훗날 후계자가 되는 조카 빈센트 만치니(앤디 가르시아 분)에게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네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가르쳤다. 마피아 두목의 가르침은 국민의힘의 오늘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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