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경제용어] 반도체 공장 없이 반도체를 만든다?…'팹리스'는 어떻게 돈을 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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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경제용어] 반도체 공장 없이 반도체를 만든다?…'팹리스'는 어떻게 돈을 벌까

폴리뉴스 2026-08-25 07:19:18 신고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팹 (Fab)에서 연구원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팹 (Fab)에서 연구원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엔비디아는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정작 엔비디아에는 첨단 반도체를 직접 찍어내는 대규모 생산공장이 없다.

공장 없이 어떻게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될 수 있을까.

답은 '팹리스(Fabless)'라는 반도체 산업의 분업 구조에 있다. 팹리스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에 집중하는 기업을 뜻한다. 반도체 생산공장인 '(Fab·Fabrication facility)''없다'는 뜻의 'less'를 합친 말이다.

대표적인 팹리스 기업으로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퀄컴, 브로드컴, 미디어텍 등이 꼽힌다. 이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반도체의 생산을 TSMC나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 업체에 맡긴다.

공장이 없는데 무엇을 파는 걸까

팹리스를 이해하려면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먼저 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기업이 모두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반도체의 기능과 구조를 설계하는 기업과 실제 웨이퍼에 회로를 구현해 칩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삼성전자나 인텔 같은 기업은 종합반도체기업(IDM), 생산을 전문적으로 맡는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등은 파운드리(Foundry)로 분류된다.

팹리스는 여기서 '설계'를 맡는다.

예를 들어 AI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를 개발한다고 해보자. 어떤 연산장치를 넣을지,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할지, 전력 소비를 얼마나 줄일지 등을 결정해 복잡한 회로를 설계한다. 설계가 끝나면 이를 실제 칩으로 만드는 과정은 파운드리에 맡긴다.

생산된 칩의 주인은 파운드리가 아니다. 설계를 맡긴 팹리스가 자신의 제품으로 판매한다. 팹리스는 파운드리에 제조비를 지급하고 완성된 반도체를 고객에게 판매해 남는 차액을 수익으로 가져간다.

쉽게 말하면 팹리스가 반도체의 '설계도'를 만들고, 파운드리가 그 설계도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구조.

왜 굳이 공장을 갖지 않을까

반도체 공장이 없다는 것은 언뜻 약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팹리스에는 오히려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공장을 지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미세공정 경쟁이 이어질수록 새로운 장비와 공정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팹리스는 이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생산설비에 들어갈 자본과 인력을 반도체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시장 변화가 빠른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팹리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엔비디아의 사업구조가 대표적이다. AI 가속기와 GPU의 핵심 설계와 관련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집중하고, 첨단 칩 제조는 외부 생산망을 활용한다.

최근에는 팹리스의 경쟁 영역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칩 회로를 잘 설계하는 것을 넘어 어떤 기능의 반도체를 만들 것인지, 이를 어떤 소프트웨어와 결합할 것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묶어 고객을 확보하는 능력이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인포그래픽=생성형 AI(chat GPT)]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인포그래픽=생성형 AI(chat GPT)]

'공장이 없다'는 것이 항상 장점은 아니다

물론 팹리스라고 해서 손쉽게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다는 것은 다른 기업의 공장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3나노·2나노 등 최첨단 공정을 이용하려는 기업이 늘어나면 원하는 시점에 생산 물량을 확보하는 것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

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최근에는 이 문제가 더욱 뚜렷해졌다. 첨단공정과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이 빠듯해지면서 파운드리의 생산능력 자체가 팹리스의 제품 출시와 원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AI 반도체 수요 증가와 생산능력 제약 속에서 일부 첨단 파운드리 서비스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계를 잘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는 상당한 연구개발비가 들어가고, 제품이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렵다. 기술 변화가 빠른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한 세대의 제품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만으로도 시장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팹리스의 경쟁력은 '공장이 없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공장을 갖지 않는 대신 얼마나 뛰어난 설계와 제품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AI 시대, 팹리스가 더 자주 등장하는 이유

최근 경제뉴스에서 팹리스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등장하는 배경에는 AI가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확대되면서 GPU뿐 아니라 특정 AI 연산에 맞춘 ASIC과 각종 맞춤형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빅테크 기업들도 자신들의 서비스에 최적화된 칩을 직접 설계하거나 전문 반도체 기업과 공동 개발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축도 '누가 더 많은 공장을 가지고 있느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누가 더 좋은 칩을 설계하느냐와 누가 그 칩을 가장 앞선 공정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느냐가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산업이 됐다.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함께 뉴스에 등장하는 이유다.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가 성공하면 생산을 맡은 파운드리의 주문도 늘어난다. 반대로 파운드리가 첨단공정 경쟁에서 앞서면 팹리스는 더 높은 성능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AI 반도체 호황이 엔비디아 같은 설계기업뿐 아니라 TSMC를 비롯한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기업까지 동시에 움직이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공장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생산능력이 없다'는 의미와 같지 않다.

때로는 거대한 공장보다 작은 칩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지 결정하는 설계도가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든다. 팹리스는 바로 그 설계와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만드는 반도체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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