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책날개를 얼마나 유심히 읽을까? 아니, 읽기는 할까? 전에 친구와 함께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책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책날개에 써 있다고 답하자 거기까진 안 봐서 몰랐다고 하길래 어쩌면 책날개가 많은 사람들이 구태여 집중하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작은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앞표지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힘을 주는 곳이고 책의 제작 구조상 누구라도 책을 볼 때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곳이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뒤표지나 날개를 대표 이미지로 걸어두는 곳은 당연히 없다. (물론 대다수의 책이 책등을 보인 채 꽂혀 있긴 하지만 책등이 본격적인 감상이 시작되는 구간은 아니라 생각한다.) 앞표지 다음부터는 상이할 것 같은데 책을 돌려 뒤표지를 훑거나, 혹은 아예 바로 본문으로 돌격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책날개는, 특히 앞날개는 어떤 책을 맨 처음 볼 때 ‘두 번째’로 눈이 가는 곳이다. 사실상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앞표지를 제외하면 그다음으로 먼저 보는 곳이다. 보통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앞표지를 표1, 앞날개를 표2, 뒷날개를 표3, 뒤표지를 표4라고 부르는데, 가깝게 지내는 디자이너님들과 제작부에 물어보았다.
디자이너와의 대화
“저는 책을 처음 볼 때 표1을 보고 바로 표2를 보는 편이거든요. 그만큼 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인데 디자이너에게 표2는 어떤 곳인가요?”
“정보란… 저자 이력 쓰는 곳.”
“(아? 내가 바라는 대답이 아닌데? 좀?) 어떤 미적인 역할을 한다거나, 실용적인 기능은 없는 건가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날개가 없으면 표지가 방방 뜨려나. 아, 날개의 폭이 너무 짧으면 좀 없어 보이는 것 같아요.”
“님아 저기요.”
제작부와의 대화
“표2랑 3의 기능이 뭔가요?”
“딱히 없습니다. 내용을 더 넣을 수 있는 거 말곤.”
“그래요? 없으면 표지가 들리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 만드는 것도 아닌가요?”
“소책자 같은 거 보면 아시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잡지나 전문서적은 거의 안 만드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 거야? 표2가? 고작 그런 곳인 거야?
굳이 말하자면 책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고작 그런 곳이냐고?!
무엇을 위해 여태까지 만든 날개였는데?!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하고 제작 시에 없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해달란 말이야!
(쓸데없는 울분을 삭이고 돌아온) 편집자에게도 앞날개는 디자이너의 말처럼 저자의 정보와 이력을 정리해 두는 곳이다. 그 정보는 물론 편집자 혹은 작가마다 다를 텐데, 나는 데뷔 시점과 데뷔 작품, 수상 이력, 대표작을 비롯한 다른 작품은 반드시 싣는다. 그리고 작가의 SNS 계정명과 작품이 연재 및 공개되고 있는 링크를 QR코드로 넣는다. 아무래도 만화가들은 작품 활동과 소식 알림을 SNS에서 하는 경우가 많고, 일정한 곳에 연재를 하거나 포트폴리오처럼 아카이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더 많이 노출시키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특유의 수려한 작화와 섬세한 내면 묘사로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와 같은 미사어구는 쓰지 않는다. 수려할지 섬세할지 어떨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고 그건 사실에 가까운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그런 주접은 아껴두었다가 신간 안내문에 마구 적는다.)
최근에 한 가지 느낀 건데, 다른 회사에서 출간되는 일본 만화책에 비해 우리 편집부의 만화책은 저자 소개가 유독 길더라. 여기저기서 수집한 작가의 정보, 이를테면 출신지(와야마 야마 작가는 오키나와 출신이다)이나 연령(우오토 작가는 1997년생이다)부터 해서 데뷔 작품과 수상 이력(키요나가 타마고 작가는 고단샤 월례상 장려상을 받으며 데뷔, 이어 치바 테츠야상 가작을 받았다)은 물론이고 작품의 애니메이션화 정보까지, 원서에 없어도 저자의 이력을 조사해 나름대로 소상히 적는 편이다. 왜냐면 적어도 내겐 어떤 작가가 오키나와 출신인 점, 1997년생의 철학 전공자인 점, 슈에이샤가 아니라 고단샤에서 데뷔했다는 점1이 작품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열쇠가 될 때가 많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이런 사람이 그린 만화는 어떨까?’ 책을 읽은 후라면 ‘이런 사람이라서 이런 작품을 그렸구나’. 본문의 시작하는 곳도 아니고 끝나는 곳도 아닌, 책표지와 연결된 앞날개에 적을 저자 이력이란 무릇 그렇게 호기심과 해상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설가 황정은 선생님의 저자 소개글을 보면 사뭇 놀랄 수 있지만 그건 또 그 나름의 정보값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소개글은 점점 짧아져 『일기日記』에 이르러서는 단 세 글자가 되었다. “소설가.”)
내게 유독 앞날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공간에서 만화책만 가능한 “특유의 수려한 작화와 섬세한 내면 묘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화책의 앞날개에는 종종 ‘작가의 말’이 실리곤 한다. 대다수의 만화들이 2권 이상 이어지는 시리즈물이고 비교적 장기간 연재되는 특성을 갖다 보니 단행본이 나올 때쯤 작가들은 앞날개에 연재하는 동안의 근황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싣는다. 이를테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단행본 10권으로 완간된 『정년이』의 앞날개에는 서이레, 나몬 작가님이 『정년이』와 함께한 기록이 적혀 있다. 첫 단행본 출간과 웹툰 연재 종료, 굿즈로 나온 정년이, 창극으로 공연된 정년이, 드라마로 방영된 정년이 등, 4년 반 동안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걸어온 『정년이』가 짧은 일기처럼 적혀 있어 뭉클하다. 『죠죠』 시리즈로 유명한 아라키 히로히코는 『죠죠리온』 21권 앞날개에 이러한 말을 실었다.
“유럽에서는, 이를테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H자를 잘 발음하지 않는 것 같다. ‘HIROHIKO’를 ‘히로히코’라고 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로이코’나 ‘에로이코’. ‘에로이코=エロい子=에로한 아이’? ‘에로한 아이, 아라키’. 썩 나쁘진 않은데. 만족합니다. 아니… 슬슬 꽤 멋지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니…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냐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아라키 작가는 1986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죠죠』 시리즈의 단행본만 130권을 넘게 냈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어 아무 말을 하는 게 이해가 된다.
난 앞날개에 실린 이 신변잡기적(요즘은 TMI라고 더 많이 부르려나)인 작가의 말이 만화책을 만화책답게 만들어주는 코어 중 하나인 것 같다. 심지어 두근두근하며 날개를 펼쳤는데 아무 말이 없으면 살짝 서운(?)하기까지 하다. 같이 작업하는 작가님들께 앞날개에 실을 저자 이력을 작성했다고 보여드리며 혹시 함께 실을 작가의 말이 있을지 여쭙곤 하는데, 할 말이 딱히 없다고 수줍어하실 때마다 살짝 아쉬운 마음에 “정말 일언반구라도 없으십니까…! (아라키 에로이코 같은 거라도 좋아요…!)”라고 (속으로) 말할 정도다. 물론 만화가가 되면 언젠가 한 번쯤 앞날개에 작가의 말을 쓰고 싶었다며 신나게 쓰는 작가님도 계시기도 하다. 그렇게 작성해 보내주신 두세 줄의 짧은 작가의 말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함부로 작가님을 귀여워하게 된다…
유달리 인상 깊었던 앞날개 작가의 말을 이야기해 볼까? 첫 번째는 아소 슈이치 작가의 개그만화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3권에 적힌 작가의 말이다.
“내 만화를 보고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게임기도 아무것도 없이, 달랑 백열전구 불빛밖에 없는 감옥에 가두고 싶다. 그대로 1년쯤 방치한 후, 감옥에 슬며시 이 단행본을 밀어 넣어 오락에 굶주린 그 사람이 백열전구 불빛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그걸 읽는 꼴을 다른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고 싶다. 그런 내가 그리는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3권 시작합니다.”
그는 일본에 사는 평범한 시민일 거고 단지 개그만화를 그리는 것이 직업일 뿐인데 어째서 이런 폭력적이고 비틀린 생각에 이르러야 했을까… 심지어 아직 단행본 3권인데… 하지만 이 넘치는 각오를 읽고 나면 본편에 대한 기대를 안 하기는 힘들다. 개그만화가의 제1덕목 ‘음침’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탁월한 작가의 말이 기억난다.
같은 일본 만화로, 두 여성의 연애와 이별을 그린 GL만화 『우리가 사귀어도 괜찮을까?』의 타미풀 작가는 완결권 작가의 말에 이런 이야기를 실었다.
“연재 시작 전 ‘만약 연재 종료 전에 동성혼이 가능해지면 마지막 화에서 둘을 결혼시켜 버릴까~(^^)’ 라고 남몰래 생각했는데 실현하지 못한 게 이 연재의 유일한 미련입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들을 얼마나 애정 어리게 그려왔는지, 그리고 창작자로서 시대와 호흡하며 작품을 그려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두 여인에게 최고로 행복한 결말을 안겨주지 못한 세상이 야속할 따름이다.
마지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말로, 천계영 작가님의 『DVD』 완결권에 적힌 말이다.
“2002년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3년 이상 〈DVD〉를 그렸다. 구상하고 쓰는 것이나 읽는 것은 순식간인데, 그리는 것만은 정말로 정말로 오래 걸렸다. 만화는 재능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노력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자기 운명일 때만, 자기 업보일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와 함께 이 운명의 돌을 끊임없이 굴리고 있는 화실식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 싶다.”

일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업보’라는 무거운 두 글자에서 어째서인지 숭고함과 약간의 슬픔이 느껴졌다. 만화를 자신의 운명이자 업보라고 말하기까지 어떤 행복과 힘듦이 있었을까. 그것은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결국엔 지긋지긋함마저도 사랑하기까지의 여정이라는 사실만을 어림짐작해 볼 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을 최대한 멀리, 즐겁게 가기 위해선 운명의 돌을 함께 굴릴 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까지도.
어떤 정보를 조금 더 실을 수 있는 것 말고는 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그렇게까지 필수적이지 않은 날개들. 그러니 나는 이 앞날개를 본문에 진입하기 전 아직 책 표지를 잡고 있을 독자와, 표제지를 넘기길 기다리는 작가가 잠시 만나는 공간으로 삼고 싶다. 그들은 본격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떠나기 전 거기서 잠시 만난다. 그러면 편집자인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사실 여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곳입니다. 그래도 기왕 이렇게 만들었으니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어떤 분인지 소개를 해볼까 해요. 작가님, 가능하다면 직접 나와 간단히 한말씀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무엇이든 좋아요.
1 『원피스』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등 슈에이샤는 보통 젊은 연령대를 겨냥하는 대중적인 작품에 집중하는 인상이 있는 반면, 『기생수』 『진격의 거인』 『베르세르크』가 대표작인 고단샤는 보다 높은 연령대의 독자를 중심으로, 작가주의적 작품을 만든다는 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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