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신간] BTS에서 아리랑까지, K-컬처의 뿌리를 국악에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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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신간] BTS에서 아리랑까지, K-컬처의 뿌리를 국악에서 찾다

뉴스컬처 2026-08-24 15:46:28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가 차지하는 자리는 이제 낯설지 않다. K-팝은 세계 음악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국경을 넘어 시청자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축제와 공연,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한국 문화를 경험하는 해외 관객도 늘고 있다. 이 같은 성과가 이어지면서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 배경을 둘러싼 분석도 다양해졌다.

산업 구조와 제작 역량, 플랫폼과 글로벌 유통망 등 여러 요인이 거론되는 가운데, 그 시선을 한국의 전통문화로 돌린 책이 나왔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대표이자 국악학자인 서광일 박사의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는 오늘의 K-컬처를 국악의 역사와 문화적 경험을 통해 바라본다.

사진='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 표지.
사진='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 표지.

책에서 국악은 특정 시대의 음악을 정리한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추며 공동체를 만들어 온 오랜 경험이 국악에 축적돼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K-컬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이다.

서광일 박사가 국악의 특징으로 제시하는 것은 장단과 소리만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풍물, 이야기를 소리로 풀어내는 판소리, 관객과 연희자가 어우러지는 탈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아리랑 등을 통해 한국 전통예술이 사람들의 참여를 전제로 발전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설명은 국악을 음악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독자에게 다른 접근을 제공한다. 국악이 어떤 악기로 연주됐는지, 어떤 형식으로 전승됐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음악이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상황에서 연주됐는지를 함께 살핀다. 소리의 역사를 사람의 역사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저자가 직접 겪은 해외 공연 경험을 자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서광일 박사는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을 이끌며 세계 30개국 50여 도시에서 공연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관객들의 반응과 현지 문화기관과의 협업 과정은 국악이 해외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아리랑을 둘러싼 경험은 그 가운데서도 책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한국어를 모르는 관객들이 노래의 후렴을 함께 부르는 경험을 통해 저자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음악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음악이 가진 반복성과 공동 참여의 방식이 국적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 관객을 공연에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드럼페스티벌의 일화도 흥미롭다. 잔치마당의 사물놀이 공연에서 상모를 돌리는 모습을 본 나이지리아 연주자들이 상모 안에 모터가 있는지 물었다는 이야기다. 공연을 본 이들이 실제로 기계장치의 유무를 두고 내기를 했고, 상모를 직접 확인한 뒤 놀라움을 나타냈다는 기록은 한국 전통연희의 움직임이 해외 관객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베트남 공연에서 장구가 파손된 사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공연을 하루 앞두고 악기가 두 동강 났지만 주베트남한국문화원과 호치민한국교육원이 악기를 구하는 데 힘을 보태면서 공연이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사례는 해외 문화교류가 무대 위 공연자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 기관과 교육기관의 협력 속에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책에는 인천국제공항 개항을 앞두고 진행된 풍물굿 기록도 등장한다. 2000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과 지역 풍물인 80여 명이 공항 활주로와 여객터미널, 관제탑을 돌며 지신밟기와 대동고사를 진행한 사례다. 전통적인 의례가 새로운 국가 기반시설의 개항을 축원하는 행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전통문화의 활용 범위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국악의 역사를 살피는 부분에서는 독자가 익숙하게 접했던 전통예술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악기와 민요, 노동요, 판소리, 농악, 아리랑 등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각각의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졌는지 살핀다. 학교 교육에서 단편적으로 접했던 국악을 보다 넓은 문화사 속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목에 대한 설명도 이어진다. 판소리와 아리랑, 농악, 남사당놀이, 탈춤, 종묘제례악, 처용무 등을 통해 한국 전통예술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살핀다. 문화유산 등재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예술이 형성된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지역축제를 다룬 대목에서는 전통예술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부평풍물대축제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안성바우덕이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강릉단오제 등이 소개되며 지역의 전통문화가 축제라는 형식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과정이 정리된다. 전통예술과 지역문화 정책, 관광이 만나는 사례를 살필 수 있는 부분이다.

스크린 속 국악을 현대 콘텐츠로도 확장한다. 영화 '서편제', '왕의 남자', '도리화가', '황진이'와 드라마 '정년이'를 통해 국악이 영상 콘텐츠에서 어떤 모습으로 재현됐는지를 살핀다. 전통예술이 공연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대중문화와 만나는 사례를 통해 국악의 현대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통과 현대를 서로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국악을 보존해야 할 과거의 문화로만 다루지 않고 새로운 공연과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재로 바라본다. 전통예술이 현대적인 표현과 결합할 때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실제 사례를 통해 살핀다.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그렇다고 책이 K-컬처의 성공을 국악 하나로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과 기술, 자본, 기획력 같은 산업적 조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그와 함께 한국 문화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예술적 경험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적 성취와 문화적 배경을 함께 바라보려는 접근이다.

이런 관점에서 책은 K-컬처를 바라보는 문화 교양서로 읽힌다. 국악 자체를 깊이 연구한 독자에게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기보다, 국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전통예술과 현재의 콘텐츠를 연결해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데 강점이 있다.

특히 저자의 현장 경험은 책의 성격을 분명하게 만든다. 학술적 연구만으로 구성된 책이었다면 만나기 어려웠을 해외 공연의 일화와 축제 현장의 기록,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변수들이 함께 담겼다. 이를 통해 국악이 실제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책이 던지는 의미는 결국 전통문화의 활용에 있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만큼 이미 존재하는 문화 자원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악에 축적된 음악과 이야기, 놀이와 공연의 경험을 현재의 문화와 연결하려는 시도가 책 전체에서 이어진다.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는 국악의 역사부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역축제, 영화와 드라마, 해외 공연까지 폭넓게 다룬다. 범위가 넓은 만큼 각각의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전문 연구서라기보다 여러 문화 현상을 하나의 책 안에서 연결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교양서에 가깝다.

K-컬처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국악만을 살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보다, 한국 문화의 현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살피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는 데 이책의 가치가 있다. 세계 무대에서 소비되는 한국 콘텐츠를 바라보며 그 이전의 문화적 경험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독자에게 의미 있는 읽을거리가 될 수 있다.

결국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는 K-컬처의 화려한 현재에서 출발해 한국 전통문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책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악이 지나간 시대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새로운 문화와 만날 수 있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K-컬처를 둘러싼 다양한 성공 분석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보다 오래된 한국 문화의 자취를 따라가며 오늘의 콘텐츠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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