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여름 제주에 들어서면 바다보다 먼저 초록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 멀리서 둥글게 솟아오른 오름, 그리고 그 너머로 번지는 푸른 바다. 한라산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오름이 수백 개 자리한 제주는 걷는 만큼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섬이다.
이번에는 그 길을 건축가 김호민과 사진작가 최경진이 함께 걷는다. 오는 9일 방송되는 KBS2 ‘영상앨범 산’ 1050회는 ‘오름의 왕국에 가다–제주 두산봉, 다랑쉬오름’을 통해 여름 제주 곳곳에 깃든 풍경을 담아낸다.
첫 발걸음은 비자림으로 향한다. 수천 그루의 비자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숲에 들어서면 뜨거운 한낮의 공기마저 한결 부드러워진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서늘한 바람이 이어지면서 걷는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비자림은 제주 화산활동이 남긴 현무암 위에 형성된 숲이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비자나무는 과거 귀한 목재와 열매를 내어주며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도 쓰였다. 지금은 제주를 찾은 이들에게 깊은 녹음과 편안한 휴식을 건네는 숲으로 사랑받고 있다.
숲을 벗어나면 제주 곳곳에 솟은 오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주에서 오름은 풍경 속에 놓인 작은 산에 그치지 않는다. 마을 가까이에서 바람을 막아주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오래 지켜본 자연의 일부다.
제주에 집을 짓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김호민에게도 오름은 새롭게 다가온다. 건축을 위해 제주를 들여다보던 그는 거센 바닷바람을 품어내는 지형과 그 안에서 이어져 온 제주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마주한다.
그가 직접 올라보는 곳은 두산봉이다. 해발 126.5m로 높이는 크지 않지만, 이곳에는 독특한 화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 차례 만들어진 분화구 안에서 다시 화산 활동이 일어나 형성된 이중 화산체다.
두산봉이라는 이름에도 오래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과거 외부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설치됐던 곳이어서 일반적인 오름과 달리 ‘봉’으로 불린다. 숲길을 지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가려져 있던 제주 풍경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능선에 올라서면 주변 오름들이 겹겹이 이어진다. 가까운 언덕부터 멀리 솟은 봉우리까지 서로 다른 높이와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호민은 평소 바라보던 제주를 직접 걸으며 그 풍경을 새로운 눈으로 마주한다.
사진작가 최경진의 카메라에도 제주 오름의 모습이 차곡차곡 담긴다.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풀밭의 표정부터 능선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까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제주가 사진 속에 기록된다.
여정의 마지막은 다랑쉬오름이다. 해발 382m에 이르는 이곳은 제주 동부를 대표하는 오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완만하게 시작한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호흡도 거칠어진다.
오르는 수고를 달래주는 것은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다. 높이를 조금씩 올릴 때마다 주변 오름과 바다가 넓게 모습을 드러내고, 정상에 다다르면 거대한 분화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다랑쉬오름의 분화구는 깊이가 약 115m에 달한다. 정상 둘레를 따라 걸으면 화산섬 특유의 지형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서쪽에는 한라산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와 검은 화산석, 초록 능선이 어우러진 제주의 여름 풍경은 정상에 오른 뒤 더욱 선명해진다. 사진 한 장에 담기 어려울 만큼 넓게 펼쳐진 풍광을 두 사람은 천천히 눈에 담는다.
비자림의 그늘에서 시작한 길은 두산봉의 능선을 지나 다랑쉬오름 정상까지 이어진다. 숲에서는 오래된 나무를 만나고, 오름에서는 제주를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마주한다. 걷는 시간이 쌓일수록 제주가 지닌 자연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영상앨범 산’은 유명한 풍경을 빠르게 훑기보다 직접 걷고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제주를 담아낸다. 건축가 김호민의 시선과 사진작가 최경진의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했던 제주가 조금 더 깊고 넓게 다가온다.
여름날의 비자림, 숲길 끝에서 만난 두산봉, 그리고 정상에서 제주 전역을 내려다보는 다랑쉬오름까지. 푸른 섬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두 사람의 여정은 9일 오전 6시 55분 KBS2 ‘영상앨범 산’에서 펼쳐진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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