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MIA 작가] 안 에르보의 그림책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에서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라는 문장은 총 35번 등장한다.(‘너무나’를 제외한 ‘나는 너를 사랑해’까지 합치면 46번이다.) 그림책 분량도 56페이지 정도로, 많은 편이다. 보통 그림책이 28페이지에서 32페이지가 일반적인 분량인 걸 고려하면 거의 2배에 달하는 셈이니 말이다.
‘너는 떠나야 했다’로 시작하며 후반부에 ‘네가 돌아왔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내용이 암시하듯, 누군가 떠난 상대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암시하듯’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이야기가 친절하게 전개되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과 그림이 묘사하는 건 구체적인 인물의 행동도, 극적인 사건 흐름도 아니다. 대신 며칠 여행을 떠난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말, 시에 가까운 발화로 가득하다.
그림책마다 고유한 문법을 갖고 있는 만큼 독자의 태도도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명쾌한 메시지나 짜릿한 재미 혹은 뚜렷한 기승전결의 무엇을 바라는 독자라면 길을 헤맬 가능성이 높다. 독자는 주요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몇십 번이나 반복되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고백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래서 화자의 고백이 변주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부분들이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한낮은 껍질콩 빛으로 스며 내리지.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횡격막 위로 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구두는 저절로 걸어가지.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머리카락이 태양 아래 풍경처럼 물결치지.
내가 어디에 있든, 너는 거듭 말하기를,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속이 울렁거려.
너 때문에 미쳐 버릴 것 같아. 너는 단호하게 말하고 또 말한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 물은 더 빠르게 끓지
마치 세상에 주어진 모든 것들로 사랑을 말해보기로 작정한 듯하다. 따뜻하거나 사소하게, 솔직하거나 풍부하게, 서늘하면서도 꿈꾸듯이 그려 내는 사랑의 이미지는 아주 다채롭다. 한국어판 책에 동봉된 윤경희 역자의 비평 글은, 이 그림책에 담긴 언어의 묘미와 비밀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으론 질문이 생긴다. ‘말을 발명’해야 하는 의무 앞에 시가 수행하는 역할이 언어의 이미지화이고 그림이 없다는 제약이 시가 가진 아름다움의 조건이라면, 이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에 삽화처럼 덧대어진 그림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글만으로도 사랑의 텍스트를 충분히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림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그림책을 본 처음의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작가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쓰고 싶은 글을 쓴 뒤, 그것들을 콜라주하듯 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페이지는 마치 질감 테스트를 한 듯 가볍게 스탬핑 되어 있고, 대부분의 페이지에서는 글과 그림이 긴밀하게 호응하기보다 맥락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어도 되는 이야기와 장면들이 연속되었다. 어떤 면에서 상당히 임의로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는 작업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어떤 맥락을 기준 삼아 장면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방식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게 하는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작업의 내부 논리가 궁금해졌다.
그러다 읽는 경험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이 수많은 사랑의 표현은 그림책이라는 형식 안에 놓이면서 고유한 리듬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문장이 반복되더라도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머무르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고, 그림 앞에서 잠시 시선을 멈춘 뒤 다시 다음 문장으로 이동한다. 마치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가 시의 행갈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같은 내용을 글로만 읽을 때와 비교하면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어떤 사랑의 말은 이렇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들려져야 한다는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에서 그림은 의미를 보충하거나 설명하기보다 독서 시간과 방법을 설계하는 장치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림이 ‘무엇을 보여 주느냐'를 넘어 ‘어떻게 읽게 하느냐'의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기쁨이든, 세상이 무너지는 폭력적 고통이든, 기존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표상할 수 없는 사건과 맞닥뜨리는 순간, 그리고 그것에 온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순간, 일상의 언어는 무력해진다. 무력감, 궁핍감, 좌절, 얼떨떨함 같은 부정적 정동에 대응하려고, 우리는 담대함을 가장한 허세, 어릿광대의 익살, 천적이나 짝짓기 상대 앞에서 목덜미 깃털을 부풀리는 작은 새의 용기를 뒤섞어, 말을 발명한다, 사건의 진실한 서술에 합당한 말은 아닐지라도 정동의 표현에 진실하고 정직한 말을. (윤경희, ‘사랑의 동어반복과 변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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