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잃지 않고 격랑의 시대 지낸 삶의 이야기 가득
[※ 편집자 주 = 저출산·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지역 소멸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각 지역의 숨은 자랑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재발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문화·경제·사회 전반에서 인물, 음식, 문화재, 특산물, 관광지 등은 물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매주 토요일 송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부심 제고, 관광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인천시 동구 송현동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독특한 이름의 박물관을 만난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공원으로 바뀌어 달동네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이곳에는 한때 전쟁과 가난을 견디며 살아온 서민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 얕은 언덕 수도국산…피란민·노동자 삶의 터전이 되다
수도국산은 해발 56m 높이의 작은 언덕이었다. 원래는 소나무가 많아 송림산으로 불렸다. 1908년 인천 최초의 상수도 시설인 송현배수지가 준공되고 수도국이 신설되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이 점차 사람들 사이에 익숙해졌다.
노량진 수원지에서 끌어온 물이 이곳을 거쳐 훗날 인천 전역으로 공급되면서 수도국산은 근대 인천의 성장과 함께한 공간이 됐다.
원래 이 일대는 바닷가에 인접한 습지여서 주거지역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개항장에서 청나라 사람과 일본인 등에게 밀려난 조선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란민들이 하나둘 정착했고,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는 공장과 항만의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언덕 비탈에는 판잣집과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형편은 비록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골목길마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밥 짓는 냄새는 언제나 사람 사는 따뜻한 온기를 전했다.
2000년대 재개발사업으로 수도국산 달동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2005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전쟁과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 서민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1970년대 달동네 재현…골목길 따라 삶의 굴곡도 구비구비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빈곤과 결핍을 극복한 승리의 서사를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되새기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발관, 연탄가게, 솜틀집 등 박물관의 주요 전시 공간들도 1970년대 실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재현됐다.
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지하 1층 상설전시실이다. 1971년 11월 수도국산 달동네의 풍경을 실물 크기로 재현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정집 안으로 들어가면 연탄아궁이와 재봉틀, 교과서와 장난감 등 당시 서민 가정의 일상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지하 2층 상설전시실은 수도국산의 형성과 인천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인천항 개항 전후 조선인 마을의 모습부터 광복과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변화한 인천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1층 기증전시실도 흥미롭다.
주민들이 기증한 생활용품과 가전제품이 전시돼 있어 시대별 생활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가전제품 타임라인은 한국인의 생활 변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다.
◇ 재개관 후 인기몰이…세대를 잇는 생활사박물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최근 2년여간 증축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3월 재개관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 기능도 강화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근현대사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중장년층 관람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학생들과 젊은 층에는 부모 세대의 삶을 이해하는 교육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재개관 전에는 연간 1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지만 최근 3개월 동안 이미 5만여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박물관의 인기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박물관을 운영하는 인천 동구는 행정체제 개편으로 중구 육지 지역과 통합돼 다음 달 1일 제물포구로 새롭게 출범하지만, 박물관은 별다른 변동 없이 운영된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의 정은지 학예사는 "우리 박물관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천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게 하는 살아있는 생활사박물관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는 무료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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