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처럼 평등한 세상을 꿈꾼 김해원 작가 인터뷰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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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처럼 평등한 세상을 꿈꾼 김해원 작가 인터뷰 | 예스24

채널예스 2026-06-11 00:00:00 신고


『오월의 달리기』로 12만 독자의 마음을 울린 김해원 작가가 이번에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경남 진주로 우리를 데려가, 형평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십 대 소녀 박세죽의 뜨거운 성장 서사로 압축했다. 

집필에 10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형평운동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나요?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야기와 어떻게 함께 살아오셨는지 궁금합니다. 

형평운동을 처음 접한 것은 10여 년 전,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를 통해서였습니다. 1922년 진주의 백정들이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 준다는 말을 믿고 진주고등보통학교 부지 공사에 참여했으나, 공사가 끝나자마자 학교 측이 약속을 뒤집고 일당으로 대신하려 했던 사건이 형평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지요.

 

몇 줄 되지 않는 글이었지만, 자식들을 위해 한겨울 꽁꽁 언 땅을 파고 일구었을 이들의 아픔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백정들의 삶에 호기심이 생기면서, 형평운동을 배경으로 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형평운동 당시 진주를 떠난 한 백정 청년이 원산을 오가며 부를 축적해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그의 아들이 만주에서 무장 항일 투쟁에 가담하는 이야기를 써 보기도 했지요.

 

형평운동 ‘그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보니, 도리어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형평운동의 ‘시작’에 더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수백 년간 사람 대접 못 받은 이들이 마침내 인간 존엄을 외치게 된 그 근원적인 ‘힘’은 무엇인지, 기록되지 않은 그 뜨거운 시작을 찾고 싶었습니다.

 

세죽은 자신의 이름이 싫어 눈밭에 쓴 이름을 발로 지워버리는 아이로 등장합니다. 이 첫 장면은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이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920년대 신문을 검색하다가 1928년 형평전국대회 기사에서 ‘여성 대의원 박세죽’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형평사 정기총회에 공식적으로 처음 참석한 여성 대의원이 박세죽이었다는 기록도 확인했지요. 40만 회원을 거느린 형평사의 공식 석상에서 처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여성이라니, 단숨에 그 강렬한 존재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이름 또한 범상치 않았습니다. 세죽, ‘가느다란 대나무(細竹)’라는 뜻이겠거니 짐작했습니다. 꼿꼿하게 소신을 굽히지 않았을 그의 기개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진주 사투리를 공부하던 중 진주에서는 ‘소’를 ‘세’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죽’은 ‘소죽(소 여물)’을 뜻하는 이름이었던 겁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소죽’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아이가 당당하게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못내 원망스러웠을 아이는 어떻게 세상에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을까? 여성 대의원 박세죽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제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세죽 말고도 강인한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여성 인물들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특히 세죽의 어머니 가실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실이라는 인물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엮으면서 제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형평운동의 ‘시작’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핍박받던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일어나 인간 존엄을 외칠 수 있었을까. 그들을 변화시키고 용기를 불어넣은 보편타당한 근거를 찾던 중, 저는 3.1운동에 주목했습니다.

 

우리 땅 곳곳에서 수개월 동안 이어진 만세운동은 자유와 존엄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함성이 메아리치던 광장에서는 양반부터 백정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벽을 넘어선 민중이 하나가 되었지요. 그 순간만큼은 태어난 신분도, 살아온 처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나라의 독립과 인간의 존엄을 외쳤습니다.

 

그 뜨거운 경험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품게 했습니다. 나라의 독립만으로 충분한가, 우리 안의 차별과 억압은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그렇게 만세운동의 함성은 더 넓은 평등의 요구로 이어졌고, 마침내 형평운동이라는 또 다른 외침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특히 진주에서 백정의 부인들이 만세운동 당시 칼을 들고 나섰다는 기록을 접했을 때, 진주가 왜 형평운동의 발상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칼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던 여성들의 서슬 퍼런 용기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겠다는 강렬한 의지로 이어졌고, 결국 “백정도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거침없는 외침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1919년 3월, 진주 한복판에서 칼을 쥐고 맨 앞에 섰던 이를 저는 ‘가실’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가실이 세죽의 어머니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그녀의 서사가 책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세죽의 삶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수 있도록 가실의 이야기를 공들여 만들었습니다. 또한 미영과 선옥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싸워낸 인물로 그려내기 위해, 그 시대를 앞서 살아간 여러 여성의 구술 전기와 자서전을 참고했습니다.

 

이 도서는 “형평운동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의 부재라는 오래된 과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라는 평을 받으셨어요. 형평운동을 여성의 시선으로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었나요?

3·1운동 때는 칼을 들었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는 곡괭이를 들었을 어머니들. 저는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운동의 그림자 뒤에서 펄럭이던 여성들의 치맛자락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실제로 형평사는 처음부터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형평여성회는 전국대회에서 여러 차례 여성 문제를 주요 의제로 올리며, 여성 차별 철폐와 조혼 폐지, 여성 사원 교육 등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활동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형평운동이라 하면 대개 일부 사회 운동가들의 활동에만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 기록에서 여성이 늘 주변부에 머물렀듯, 형평운동사에서도 여성들은 좀처럼 전면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평여성회의 활동과 형평사가 발간한 기관지 《정진》에 실린 글이나 기록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어떻게 서로 연대하게 되었는지, 그 흔적을 좇기 위해 당대 여성들의 기록 또한 세심히 들춰 보았습니다.

 

세죽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대신 씨앗골에 남아 싸우는 길을 선택합니다. 기존 역사 동화의 주인공들과는 다른 결단인데요. 세죽의 결단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주 촉석루에서 사계절을 바라보았습니다. 강가의 오래된 큰 나무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다시 노랗게 익어가며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세죽이 그 큰 나무처럼 단단히 삶을 붙들고, 마음껏 피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제 빛으로 물들이길 바랐습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들도 마땅히 박수를 받아야지요. 그러나 저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상을 굳건히 지키며 버텨낸 이들의 ‘안간힘’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 안간힘이 뭉치고 쌓여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살아내느라 온 힘을 다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저는 세죽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구태여 멀리 뻗어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있고 싶은 자리에서,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가지를 뻗어도 충분하다고.

 

이 소설 속 여성들은 백정으로서, 여성으로서 이중의 차별을 견디면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이 여성들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봄이 오면 겨우내 입었던 솜옷의 솔기를 터서 솜을 빼내고, 묵은 겨울 빨래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마을 여성들이 저마다 빨래 광주리를 이고 나와 강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방망이질하던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그 풍경은 고된 노동의 현장이기보다, 봄날의 작은 축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깨달았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쉼 없이 밥을 짓고, 아이를 품어 기르며, 가족과 공동체를 지탱해 온 여성들의 반복되는 노동이야말로 역사를 묵묵히 앞으로 밀어온 숭고한 힘이었다는 것을요. 역사에 뚜렷하게 새겨진 영웅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텨 내기 위해 감당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수고가 결국 세상을 떠받쳐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 속에 삶을 지속시키는 이 평범한 노동과, 마을 아이들을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보듬으며 살아낸 애잔한 공동체의 힘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씨앗골 이야기를 쓰고 있을 때, 12.3 내란이 벌어졌습니다. 겨우내 광장을 가득 메운 청년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부당한 세력과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던 모습은 뭉클했습니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이 강가에서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며 멈추지 않았던 싸움이, 시대를 건너 오늘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10년의 시간을 들인 책이 드디어 독자 앞에 놓였습니다.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이 읽고 난 뒤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아주 작은 것들이 오래 마음에 남으면 좋겠습니다. 씨앗골 세 동무가 처음으로 함께 진주 극장에 가던 설레는 발걸음, 미영이가 시집가던 날 세죽이 흘린 눈물, 수리가 세죽을 태우고 달리던 자전거, 세죽이 선옥에게 건넨 고무신 같은 것들. 마음과 마음이 닿아 기쁘고도 아팠던 그 순간들이 독자의 마음 언저리에 아슴프레하게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위안이 되고 때로는 다시 걸어갈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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