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한 줄 평
“삶이 죽음을 지탱한다는 말을 의심하다.”
▲시 한 편
<의지의 의자> - 김박은경
의지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의자가 없는 것뿐인데 의지가 있으면 의자가 생길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의지일까 의자일까 소유격이 사라지면 무례해질 수 있으니 서로 조심해야지 하나의 의자에 여러 의지가 앉을 수 있나 없나 하나의 의지가 조금씩 양보해서 나누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은 의자에 앉아야 비로소 떠오르는 것, 그러나 의자에 앉은 의지는 하나씩의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흡족해 여타의 의지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다 최후의 의자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의자에 앉은 자들은 의자에 대해서만 궁금해하고 광장에 널브러진 의지는 매질도 없이 끝없이 불타오른다
▲시평
먼저 의자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의자는 사람이 걸터앉는 데 사용하는 기구다. 서 있거나 눕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 의자에 앉아 생활한다. 집에서는 소파나 식탁 의자, 이동할 때는 차량의 의자, 학교나 직장에서도 자기 의자에 앉는다. 당연히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영역에 한정된 말이다. 기본적으로 의자는 ‘자리’를 대신한다. ‘의자를 뺀다’는 건 자리, 즉 지위를 잃는다는 뜻이다. 내 의자가 사라지면 그동안 누린 안정과 여유는 없어지고 불안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인정받던 지위와 권력도 더 이상 누릴 수가 없다. 이 시는 ‘의지’와 ‘의자’, 모음 하나 차이로 완전히 달라지는 단어를 통해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자원의 관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계급과 소외, 기득권의 속성을 예리하게 비튼다. 취업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서류 통과나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게 현실인데, 취업 의지가 없다고 비난한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가난의 책임을 게으름 때문이라고 매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나의 의자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도 있지만, 결국 고통의 분담일 뿐이다. 작은 파이 하나를 여러 명이 나눠 먹는 것과 무에 다르겠는가. 의자를 차지한 자들은 큰 파이를 혼자 독차지하면서. 하나의 의자를 차지하기 전에는 “조금씩 양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의자를 독점하고 난 다음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가능하다. 시간이 흐르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배려심은 점차 희미해진다. 한정된 의자와 치열한 경쟁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 어쩌면 그게 사람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탐욕은 탐욕을 불러오고, 겸손을 망각하게 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하고 거들먹거린다. “최후의 의자”, 즉 최고의 지위에 가까워질수록 그 자리를 지키는 것에 몰두한다. “의자에 앉은 자들은” 다른 것엔 관심이 없고, 오직 출세에 목을 매달 뿐이다. 의자에서 소외된 의지들이 갈 곳은 결국 광장밖에 없다. 의자가 없는 광장에서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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