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강다연 작가] 오늘은 17세기 스페인 황금시대, 예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인 수르바란, 벨라스케스와 함께 손꼽히는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화가들은 이전 칼럼에서도 다룬 바 있으니, 강다연 칼럼을 통해 다시 복습하며 찾아보는 재미도 함께 느껴보았으면 한다.
무리요는 대체로 사실주의적 성향을 지닌 화가로 이해할 수 있다. 세비야 출신 화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지역적 특징, 즉 시대적 일상과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장르화적 성향이 그의 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무리요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부모님을 여의며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고아나 가난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안타깝게도 이후 무리요의 자녀들 역시 절반 이상이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유난히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무리요가 고통과 시련을 겪었기에 더욱 사랑이 필요한 존재들을 외면하지 않고 따스하게 바라보려 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그림에서는 실제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무리요는 잠시 세비야를 떠나 마드리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당시 티치아노의 작품을 접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보며 작가는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작가의 삶을 살아가는 중 중심을 잡아야 하는 지금,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활에 집중하며 잘 버티다가도 가끔은 힘들 때가 있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려 해도, 주변에서 건네는 안부가 나에게는 관심이자 애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시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을 전환해 나를 향한 관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떠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에 집중하며 한 걸음씩 다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감사했던 일은 어느 날 엄마와 통화하며 들은 이야기였다. 이모께서 “언니, 다연이 분명 잘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주변 걱정과 시선에 움츠러들고, 나 자신을 믿어야 함에도 흔들리려 할 때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다. 그 말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 스스로를 믿어야 주변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고, 동시에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감사함을 느꼈다.
작가가 자신만의 기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배우고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작가의 곁에서 지켜주고 믿어주는 존재들 역시 다음 활동을 기약하게 하고,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거울을 보며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매일 스스로에게 “감성은 말랑하게, 마음은 단단하게”라고 되뇐다.
작가로서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소녀 같은 감성을 잃지 않고, 메마르지 않는 감성을 간직하고 싶다. 동시에 마음은 쉽게 약해지지 않는 단단한 어른으로, 어른답게 행동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감성이 담긴 그림이 언젠가 여러분에게 힐링이 되고, 다시 멀리 퍼져나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다시 무리요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무리요는 왕실에서 승승장구하던 세비야 출신 화가 벨라스케스와 교류했다. 수르바란 역시 벨라스케스의 추천으로 마드리드 왕궁 작업에 초청받았다는 점에서, 예술가에게는 서로를 이끌어주는 존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수르바란의 인기는 점차 하락한 반면, 무리요는 상승세를 타며 해외에서도 명성을 떨치게 된다. 또한 무리요는 영국의 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세비야에 아카데미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예술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무리요였지만, 남은 자녀들이 출가하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작업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이후 대형 작품을 제작하던 중 사고를 당했고, 결국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만약 무리요의 곁에 아내가 함께 있었다면 그의 삶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결혼 후에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통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마저 잃은 뒤, 곁에 아무도 없이 고독하게 지내던 그가 슬픈 현실을 잊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지역 예술 발전과 후배 양성에 힘썼고, 뛰어난 작업 능력까지 갖추었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 것이고, 그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도 더 많았을 것이다. 말년마저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무리요의 작품 ‘성가족과 작은 새’를 살펴보자. 이 작품 역시 세비야 화가답게 어두운 배경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는 포근함이 담겨 있다. 만약 제목을 먼저 보지 않고 작품만 감상했다면, 얼핏 종교화라고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무리요 작품의 묘미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무리요는 ‘원죄 없는 잉태’ 시리즈처럼 전형적인 종교화도 제작했다. 그러나 ‘성가족과 작은 새’처럼 종교적 일화와 세비야 사람들의 일상을 조합한 작품도 남겼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푸른 옷과 신성한 분위기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또한 요셉을 화면 구석에 배치하던 기존 구도의 틀에서 벗어나, 주연의 자리에 앉혀 과감하게 묘사했다. 이는 기존의 성모자 중심의 성스러운 표현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성 요셉에 대한 공경 사상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구도는 역사성과 지역성이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 속 아기 예수는 강아지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요셉은 아이와 놀아주는 다정한 인물로 그려진다. 기존 회화 속 요셉과 달리 젊게 묘사된 점도 인상적이다.
또 무리요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컸던 화가답게 아기 천사들 역시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다만 주목할 점은, 그리스도의 선한 표정과 대조적으로 손에 쥔 새가 다소 힘겨워 보인다는 점이다. 새를 꽉 쥐고 있는 모습은 단순한 장난처럼 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기 그리스도 옆에는 세례 요한이 등장해 예언서를 들고 있거나,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의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리요는 이 작품에서 보다 일상적인 장면 속에 그러한 상징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앞서 무리요를 사실주의 성향이 강한 화가라고 설명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종교화에서 전형적인 후광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성인의 신성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 주변에 둥근 후광이나 링 모양의 빛을 묘사하지만, 무리요는 이를 의도적으로 과감히 배제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얼핏 종교화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언가 기존의 틀을 깨는 일과 시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모두 적절한 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것 같다. 그래야 다음 시도가 이어질 수 있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무리요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과감함과 따스함을 잘 감상하였기를 바라며, 다음 칼럼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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