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서로를 향한 몸은 끝내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손은 닿을 듯 멈추고, 인물의 윤곽은 희미한 선만 남긴 채 광원 속에 떠 있다. 김가진의 작업에서 관계는 단단한 결속보다 불안한 감지에 가깝다. 완전한 이해 대신 남는 것은 상대를 향한 아주 작은 반응이다. FIM에서 열리는 김가진 개인전 ‘스위트 스팟(Sweet Spot)’은 기술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달라진 접촉의 감각을 다룬다. 레진, 열성형 아크릴, 실리콘, 투명 필름, LED 조명을 활용해 디지털 이미지와 물질의 경계를 흔든다. 국내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우리는 늘 연결된 상태에 있다. 메시지는 빠르게 오간다. 이미지는 즉시 공유되고, 타인의 몸과 감정은 화면 너머에서 쉽게 호출된다. 그러나 빠른 연결이 관계의 확실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접속 빈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접촉은 더 불안해진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믿음도 쉽게 흐려진다. 김가진은 불안정함을 결핍으로만 보지 않는다. 작가의 최근 작업은 매듭지어지지 않는 관계 자체를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완전한 접촉의 성공이 아니다. 어긋난 채 이어지는 사이, 닿지 못해도 상대를 감지하려는 몸의 태도, 분리된 상태에서도 남는 잔영이 핵심이다.
투명한 물질은 해당 감각을 세우는 주요 매체다. 레진과 아크릴은 이미지를 받치는 판이 아니다. 광선을 통과시키고 꺾는 렌즈다. 실리콘은 살갗을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물성을 갖는다. LED 조명은 표면의 이미지를 공간 바깥으로 밀어낸다. 김가진의 작품에서 이미지는 고정된 화면에 붙어 있지 않다. 물질 위에 자리한 뒤 다시 벽과 공기 사이로 퍼진다. 작가는 디지털 환경에서 만든 이미지를 레진이나 투명 필름 위로 옮긴다. 이후 광원이 표면을 지나며 형상은 굴절된다. 윤곽은 흐려지고, 주변에는 흔적이 남는다. 비물질적 이미지는 물리적 장소로 이동한다. 그렇게 탄생한 형상은 사진, 조각, 영상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얇은 표면과 투명한 덩어리, 광채의 흔적이 하나의 조형체처럼 작동한다.
작업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기대거나 손을 맞잡고, 얽힌 몸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은 완결된 형태를 이루지 못한다. 파편처럼 흩어지고, 희미한 막 안에 갇힌 듯 떠오른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요소들은 시각적으로만 접촉한다. 관계는 한 몸이 되지 않는다. 불완전한 간격 속에서 지속된다. 대표 이미지로 제시된 ‘Embedded Embrace VII’는 실리콘, 열성형 아크릴, LED 조명으로 구성된 작업이다. 둥근 표면 안쪽에는 포옹하는 듯한 인물의 형상이 희미하게 박혀 있다. 부드러운 광채는 몸을 감싸며 경계를 흐린다. 완전한 안착보다 어딘가에 새겨진 신체의 잔상을 전한다.
‘Habitable Dialogue XVI’는 에폭시 레진 위 이미지 전사와 빛으로 이루어졌다. 검은 배경 위에서 레진 표면은 얇은 막처럼 떠 있다. 내부의 신체 형상은 확정되지 않은 색채 덩어리로 머문다. 작품명에 들어간 ‘거주 가능한 대화’는 관계가 정착된 결과라기보다 불안 속에서 잠시 머물 수 있는 대화의 조건이다. 빛은 그 임시적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다.
‘Placeholder IV’는 투명 필름 프린트, 열성형 아크릴, 빛으로 제작됐다. Placeholder는 임시로 자리를 채워 넣는 표식을 뜻한다. 김가진은 이 개념을 부재와 존재가 동시에 감각되는 이미지로 옮긴다. 형상은 그곳에 있다. 하지만 선명하게 붙잡히지 않는다. 누군가의 몸은 자리하고, 이내 사라진다. 2025년 이전 작업에서 관계의 불안정성은 결핍에 가까웠다. 접촉하려는 욕구, 결속에 대한 기대, 완전한 겹침의 가능성이 작업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불안정함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몰아가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조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감각을 붙드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전시 제목 ‘Sweet Spot’은 그 지점이다. 일반적으로 최적의 균형을 뜻하는 말이지만, 김가진에게 Sweet Spot은 안정된 해답이 아니다. 단절과 연결, 실재와 비물질, 몸의 감각과 탈체화된 인식이 완전히 합쳐지지 못한 채 포개지는 자리다. 흔들리지만 감각을 잃지 않는 교차점이다. 김가진은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뉴욕 헌터칼리지에서 복합미디어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22년 미국 뉴욕 스위블 갤러리, 2024년 홍콩 더 스트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FIM은 ‘Free Immersion’, 즉 작품으로의 완전한 몰입 상태를 뜻한다. 국내외 젊은 미술 작가가 작업에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객에게 밀도 있는 예술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공간이다. 작가와 긴밀히 소통하며 실험적 시도와 성장을 지원하고, 해외 갤러리와 큐레이터 협력도 추진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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