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책꽂이 52] 은이정 시집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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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책꽂이 52] 은이정 시집 ‘동물원에서 흔들의자를 만드는 법’

뉴스로드 2026-05-12 18:48:49 신고

 

시집 한 줄 평

 

햇빛과 그늘 사이를 오가며 선한 웃음을 짓고 있다.”

 

 

시 한 편

 

<Kiss and Ride> - 은이정

 

 

 

달리면 밤마다 다른 냄새가 나

 

오래전 길에 심은 사람은 기다림이 싹 터야 하는데

또 놓쳐

 

그늘을 잃고 그늘이 세워 둔 바이크를 탄다 언니는

 

믿어져?

코너를 돌면 시간 밖으로 들어간다니까

 

언니에겐 가죽점퍼가 어울리지 않는데

바퀴 아래로만 물이 흘렀다 순한 이름 대신 이니셜만 새겨 넣은 장갑이

출렁거린다

 

눈 마주치면 웃어 줘

처음 본 아침처럼

 

그렇다고 햇빛에 물을 주지는말고

 

 

시평

여기, 바이크를 타는 언니가 있다. 어울리지도 않는 가죽점퍼를 입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포즈로 바이크를 탄다. 언니는 왜 밤마다 바이크를 타고 길을 달릴까. “순한 이름, “그늘이 세워 둔바이크는 본래 언니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 길에 심은 사람”, 장갑에 새겨 넣은 이니셜이 타고 다니던 것이다. 즉 바이크는 살아생전 남편이 타던 것이고, “그늘에 세워 둔걸 이제 그의 아내인 언니가 타는 것이다. 언니의 남편은 바이크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시간 밖에 존재한다. 따라서 언니가 밤마다 바이크를 타는 것은 속도를 즐기거나 해방감을 느끼려는 게 아니라 남편에 대한 애도의 방식이면서 그리움의 표현이다. 밤마다 바이크를 타는 행위는 사고로 남편 곁으로 가고 싶다는 의도로 읽힌다. 제목 ‘Kiss and Ride’는 짧게 작별 키스할 수 있는 환승 정차 구역이다. 운전자는 타고 있고, 동승자는 내리는 짧은 시간이다. 함께 보낸 짧은 시간이나 특정 장소를 뜻한다. 시의 첫 행에서 언니는 남편이 달린 길을 밤마다 달리면서 다른 냄새를 맡는다. 밤을 배경으로, 길에 깔린 다른 냄새는 남편을 추억하는 단순 차원을 넘어 남편의 하나하나까지 감각하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남편이 달린 길을 달리면서 켜켜이 쌓인 기억의 층위를 언니는 온몸으로 체험한다. 아직 떠나보내지 않은 남편의 시간을 반복 주행하면서 잃어버린 삶의 방향을 찾으려 한다. 그 행위는 오래 이어진다. 사고 이후 이동성/운동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한자리에 고정된다. 수목장일 수도 있고, 사고 현장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곳을 오래 찾아가고 있는, 곁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그리움의 농도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부재의 안타까움과 상실이 뒤섞인 그리움의 감정이 깊어진다. 화자의 눈에는 그런 언니의 모습이 오래 방황하는 것으로 비친다. 출렁거리는 언니의 삶이 위태롭기만 하다. 그럼에도 간여하거나, 조언하거나, 섣불리 위로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다. 다시 바이크를 그늘에 세워 두고 돌아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웃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다. 언니도 그것을 원한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서 언니도 상실의 시대를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김정수 시인)

 

김정수 시인은

1990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과의 잠』 『홀연, 선잠』 『하늘로 가는 혀』 『서랍 속의 사막과 평론집 연민의 시학을 냈다. 경희문학상과 사이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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