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국립극장서 개막…동반 출연 박근형 "67년 만에 샤일록 연기"
오경택 연출 "인간은 복잡한 존재, 선악 이분법적 관점 벗어나 질문"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구순의 노장은 젊은 배우들에게도 벅찬 일정을 쉼없이 소화하고 있었다. 배우 신구(90)는 다음 달까지 상연되는 연극 '불란서 금고'에 이어 7월 개막하는 '베니스의 상인'에 연달아 출연한다. 무대에 오르면서 차기작 연습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신구는 12일 서울 대학로 놀(NOL)서경스퀘어에서 열린 '베니스의 상인' 제작발표회에서 "귀가 잘 안 들리고 몸이 뜻대로 안 된다"며 "세월은 이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다. 연습하고 공연하는 게 제가 할 일, 좋아하는 일"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지난해 11월 배우 이순재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현역 최고령 배우로 꼽히고 있다.
그는 연기의 원동력을 묻자 "연극을 하는 시간이 즐겁고 보람이 있으니 하는 것"이라며 "극장이 1천여석 정도 되는데, 30일간 만석을 채워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엷은 미소를 띠었다.
신구가 공작 역으로 출연하는 '베니스의 상인'은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극을 바탕으로 했다. 상인 안토니오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과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내준다'는 계약을 맺었다가 살점을 도려낼 위기에 처하고, 베니스의 질서를 수호하는 공작이 주재하는 재판에 선다. 공작과 현명한 여인 포셔의 도움으로 안토니오는 위기를 모면한다.
신구는 다른 배우 없이 공작 역을 '원 캐스트'로 소화한다. 그는 "재판관 역할인 공작은 동선이 아주 크지는 않다"며 "걷는 운동도 하고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작품의 핵심인 샤일록 역은 그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박근형(86)이 맡는다. 박근형은 1959년 모교인 중앙대학교에서 진행된 공연에서 이 배역을 맡은 적이 있다.
67년 만에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그는 "20대에는 단순하게 샤일록이 권선징악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라고 봤다"며 "이 나이에 이르니 그가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사람'으로서의 샤일록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작품은 악인 샤일록을 비극적 인간으로 재해석하는 한편, 인종·종교· 계층 간 갈등과 법·자비의 충돌을 통해 '누가 옳은가'를 넘어서는 질문을 던진다.
오경택 연출은 "샤일록은 악인으로 그려지지만, 현대적 관점에선 유대인으로 태어나 차별과 박해를 받은 그를 선악의 이분법적 관점에서만 보기에 무리가 있다"며 "사람은 다양한 욕망을 가진 복잡한 존재이며, 작품에는 다양한 계층의 여러 갈등을 겪는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작의 흐름은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문제를 공정성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질문을 넣어 각색했다"고 말했다.
안토니오 역의 이승주도 배역에 대해 "친구에게는 자비를 베풀면서도 샤일록에겐 큰 증오를 가진,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인물"이라며 "무대 위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무대 밖에서도 질문과 생각을 계속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작품의 앙상블에는 연극내일기금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된 신진 배우들이 참여한다. 신구와 박근형이 조성한 이 기금은 지난해 두 사람이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특별 공연의 수익과 기부금으로 마련됐다.
박근형은 "신구 형님과 공연하며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가 받은 것을 되돌려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열여덟 살에 선생님도, 책도 없이 연극을 시작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빠른 길'이 됐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 등 우리나라의 위상은 높아졌는데 연극을 일으켜 세우려는 움직임이 그간 너무 적었다"며 "신구 형님과 어떻게 참된 연극을 보여줄 수 있을까 논의해 왔는데, 앞으로 좋은 창작 희곡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베니스의 상인'은 오는 7월 8일부터 8월 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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