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은 오랜 세월 유럽 음악사의 중심 도시로 자리해왔다. 그 중심에서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이끌어온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1870년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창단된 이후,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를 가장 충실하게 계승해온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쿠르트 마주어, 마렉 야노프스키, 미하엘 잔데를링 등 거장 음악감독들을 거치며 독자적인 음향 세계를 구축해온 이들은 특유의 따뜻하고 밀도 높은 현악 사운드, 치밀한 구조감, 그리고 깊이 있는 음악 해석으로 세계 무대에서 확고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7년부터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 중인 드레스덴 쿨투르팔라스트 콘서트홀은 악단의 사운드를 한층 정교하게 완성시킨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기반으로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독일 낭만주의뿐 아니라 바로크, 빈 고전주의,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새로운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은 도널드 러니클스 경이 추구하는 독일·영국 낭만주의 해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러니클스 경은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에서 45년 이상 활동해온 거장 지휘자로, 특히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 독일 후기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독보적인 해석력을 인정받아왔다. 현재 도이치 오퍼 베를린 음악감독으로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동시에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새 시대를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연의 시작은 영국 작곡가 랠프 본 윌리엄스의 ‘토마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다.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 토머스 탈리스의 선율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여러 그룹의 현악 앙상블과 독립된 현악 4중주가 만들어내는 입체적 음향이 특징이다. 고요한 명상과 장엄한 클라이맥스를 오가는 음악은 영국 특유의 신비로운 서정성과 깊은 정신성을 담아내며 공연의 문을 연다.
이어지는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낭만주의 협주곡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화려한 기교보다 인간적인 감정과 서정미를 중심에 둔 작품으로, 특히 2악장의 짙은 서정성과 마지막 악장의 역동적 에너지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협연자로 나서는 제임스 에네스는 오늘날 가장 신뢰받는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악단과 꾸준히 협연해왔으며, 탁월한 테크닉과 절제된 음악성, 그리고 투명한 음색으로 세계 음악계의 찬사를 받아왔다. 그는 두 차례 그래미상과 세 차례 그라모폰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팬데믹 기간 선보인 온라인 프로젝트 ‘Recitals from Home’을 통해 스트리밍 시대 새로운 클래식 공연 형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그는 1715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마르식(Marsick)’으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의 마지막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장식한다.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이 작품은 고전적 형식미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걸작으로 손꼽힌다. 유기적으로 전개되는 네 개의 악장은 내면의 긴장과 침잠, 그리고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교차시키며 장대한 서사 구조를 완성한다. 특히 마지막 악장의 파사칼리아는 운명적 긴장감과 압도적인 울림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브람스 후기 음악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이번 무대는 단순한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을 넘어, 독일 정통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본질과 유럽 낭만주의 음악의 깊이를 국내 무대에서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도널드 러니클스 경의 중후한 해석,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유려한 앙상블, 그리고 제임스 에네스의 품격 있는 협연이 어우러지며, 초여름 밤 한국 클래식 무대에 깊고 장엄한 울림을 남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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