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 제대로 했다. 구교환과 고윤정이 주연을 맡은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안방극장을 넘어 넷플릭스 차트 정상까지 찍으며 심상치 않은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묵직한 감정 서사와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보듬는 두 인물의 관계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4회 장면 중 일부. / 유튜브 'JTBC Drama'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Tudum)’의 발표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집계된 ‘대한민국 TOP 10 시리즈’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했다. 시청자들은 극 중 인물들이 지닌 내면의 결핍과 이를 서로 채워가는 서사에 깊이 몰입하고 있다.
침묵이 무서워 쉼 없이 떠드는 남자, 동만의 속사정
극 중 황동만(구교환 분)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내면의 목소리와 사투를 벌이는 인물이다. 그는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엄습하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내뱉으며 타인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감정 워치를 통해 ‘불안’과 ‘지겨움’을 확인하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낸다.
특히 최필름의 최동현(최원영 분) 대표에게 독설을 들은 뒤 나타난 비정상적인 허기는 20년 동안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거대한 결핍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는 것과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완벽한 ‘안온함’이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4회 장면 중 일부. / 유튜브 'JTBC Drama'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4회 장면 중 일부. / 유튜브 'JTBC Drama'
변은아(고윤정 분)는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느낄 때마다 코피를 쏟는 증상을 보인다. 감정 워치에는 ‘알 수 없음’으로 표기되지만 그 이면에는 분노와 절망, 좌절 등 복합적인 감정 수치가 얽혀 있다. 이는 9살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차례로 방치됐던 과거의 상처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녀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따스한 보호막이 아닌 생존을 위해 견뎌야 했던 막막한 기억의 상징이다.
코피 쏟던 그녀가 그를 만나 '안심'을 찾기까지
이처럼 각자의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비로소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터지던 변은아의 코피는 황동만과 함께하는 순간 마법처럼 멈추며 그 빈자리는 ‘안심’이라는 감정으로 채워진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전력 질주하며 고통을 기록 경신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거나 가위눌림에 대처하는 독특한 위로법을 전하는 황동만의 모습은 두 사람이 서로의 ‘초록불’이자 ‘안온함’이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4회 장면 중 일부. / 유튜브 'JTBC Drama'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4회 장면 중 일부. / 유튜브 'JTBC Drama'
서로의 결핍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구원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두 인물의 행보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 들린 연기" 4회 방송 후 쏟아진 열광적 찬사
4회가 공개된 후 온라인에서는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열연을 향한 누리꾼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동만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구교환과 고윤정의 연기에 신이 들린 것 같다. 마치 눈앞에서 한 편의 모노드라마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했다"며 두 주연 배우의 압도적인 화면 장악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꿰뚫어 본 시청자들의 분석도 눈에 띈다. 한 누리꾼은 "동만이가 형에게 결제를 떠넘기려 자는 척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혼자서 치열하게 내면의 괴물과 싸우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이어 "가위눌린 것처럼 힘겨운 삶을 살아온 은아의 고통이 안쓰러우면서도, 결코 약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져서 좋다"며 인물들의 강인한 생존 본능에 박수를 보냈다.
박해영 작가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박해영 작가의 대사는 버릴 게 하나도 없이 주옥같다",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 깊은 곳에 와 닿아 여운이 남는다", "설정이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이어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는 반응과 함께 "고윤정의 연기 인생에서 진정한 인생작이 될 것 같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넷플릭스 1위 vs 시청률 2.4%… ‘모자무싸’가 보여준 OTT 시대의 기묘한 흥행 공식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제작 발표회 현장. / JTBC 제공
이는 고정된 방송 시간대에 TV 앞에 앉는 전통적인 시청 방식보다, 원하는 시간에 몰입해 감상하는 OTT 시청 층의 선호도가 이 작품에 집중됐음을 보여준다. 박해영 작가 특유의 밀도 높은 대사와 인물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사 구조가 ‘정주행’에 적합한 OTT 플랫폼의 특성과 맞물려 이뤄낸 결과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4회 장면 중 일부. / JTBC 제공
작품을 지탱하는 두 주연 배우의 필모그래피 역시 기대를 더하는 요소다. 구교환은 ‘꿈의 제인’, ‘반도’, ‘모가디슈’를 거쳐 ‘D.P.’와 ‘탈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보적인 연기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리드미컬한 대사 처리와 공허한 눈빛으로 불안에 잠식된 황동만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고윤정 또한 ‘스위트홈’, ‘환혼: 빛과 그림자’, ‘무빙’ 등을 통해 차세대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트라우마를 코피라는 신체적 징후로 드러내는 변은아를 맡아, 정적인 연기 속에서도 폭발적인 감정의 진폭을 보여주며 연기적 성취를 이뤘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는 극의 무게감을 적절히 조율한다. 서로의 결핍을 투명하게 응시하며 건네는 ‘가위 대처법’이나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질주는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인간적인 온기로 채운다. 시청자들이 2.4%라는 시청률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찬사를 보내는 배경에는 구교환의 유연함과 고윤정의 단단함이 만나 형성된 독특한 연기 시너지가 존재한다.
현시점에서 2.4%라는 시청률은 분명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나 넷플릭스 1위라는 화제성과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갖춘 배우들의 시너지는 향후 반등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있다. 문학적인 대사가 주는 여운과 인물들의 구원 서사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만큼 중반부 이후 TV 시청률 역시 OTT의 열기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모자무싸’가 보여준 현대인의 무가치함에 대한 고찰은 이제 막 시청자들의 가슴에 안착해 더 큰 울림을 준비하고 있다.
스튜디오 피닉스와 SLL, 스튜디오 플로우가 공동 제작하는 ‘모자무싸’는 매주 토요일 밤 10시 40분과 일요일 밤 10시 30분에 JTBC를 통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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