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권수빈 기자] 최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홍보차 내한한 할리우드 배우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한국 전통 문양이 적용된 '꽃신 하이힐'을 선물 받아 화제가 됐다. 서양식 하이힐 디자인에 한국 고유의 색채와 꽃신 특유의 앞코 형태를 접목한 구두를 두고 두 배우는 감격 어린 반응을 보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하이엔드 패션의 상징인 하이힐과 한국 전통 공예의 만남은 현대 패션 시장에서 우리 전통미가 지닌 경쟁력과 문화 외교적 활용도를 보여준다.
꽃신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주로 신었던 가죽신인 화혜(靴鞋) 중 당혜와 운혜를 가리킨다. 비단이나 가죽 바탕에 모란, 나비 등을 자수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과거에는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궁중 여성이나 양반가 부녀자들이 주로 착용했으며, 평민의 경우 신분에 따라 재료와 장식 수준에 차이가 있었다. 한옥의 처마나 버선코를 연상케 하는 날렵한 앞코의 곡선은 한국 전통 복식의 구조적 미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형태는 조선왕실 마지막 화혜장인 고(故) 황한갑 선생 등 장인들을 통해 전승됐다. 황한갑 선생은 고종 황제의 의례용 신발인 적석을 제작한 인물이다. 서양식 구두와 고무신이 대중화되면서 전통 화혜 수요가 급감했으나 1970년대부터 손자인 황해봉 장인이 기술을 이어받아 명맥을 유지했다. 전통 방식의 다단계 수작업을 보존해 온 황해봉 장인은 지난 2004년 국가무형유산 화혜장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역사적 맥을 이었다.
근현대에 이르러 꽃신은 문학 작품과 대중문화 속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활용됐다. 문학 속에서 꽃신은 주로 닿을 수 없는 신분 격차로 인해 좌절된 애절한 사랑이나 짙은 그리움을 은유하는 장치로 묘사되곤 했다. 이와 더불어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가는 전통 장인의 비애와 시대적 소외감을 대변하는 매개체로도 쓰였다. 대중 정서 속에서는 주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나 '순탄한 앞날'을 기원하는 의미로 통한다. 과거 군 복무를 마친 남성이 연인에게 꽃신을 선물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꽃길만 걷자'는 의미를 담아 안부를 전하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남아있다.
꽃신의 상징성은 국가 간 교류 현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월 국빈 방한한 호잔젤라 다시우바 브라질 영부인에게 김혜경 여사가 맞춤 전통 한복과 함께 정교한 꽃신을 선물하며 우애를 다졌다. 이는 방문객의 평안을 기원하고 양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 지속을 바라는 외교적 상징이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전통 꽃신 유물들은 현재 국내 주요 박물관에서 보존, 전시 중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은 황한갑 장인이 제작한 자수 꽃무늬 운혜를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대구박물관 등은 특별전을 통해 고대 삼국시대 신발 유물부터 망자의 무덤에 함께 묻었던 부장품인 습신에 이르기까지 화혜의 변천사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꽃신은 전통 방식에 멈춰있지 않고 현대인의 체형과 취향을 고려한 펌프스 힐, 일상에서 편하게 신는 스니커즈, 화려한 웨딩 슈즈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유물로서의 역사적 보존과 현대적 실용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꽃신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뉴스컬처 권수빈 ppbn0101@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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