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7세기 서커스의 이미지와 망명자의 서재가 한 무대 위에서 교차한다. 창작 초연 뮤지컬 ‘조커’가 오는 3월 1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극장 온(구 CJ아지트)에서 관객과 만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18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이 작품은 지난해 3월 리딩 쇼케이스 이후 약 1년간의 재정비를 거쳐 정식 초연으로 완성됐다.
작품은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망명 시기를 서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제2제국 시기 쿠데타에 저항하다 영국령 건지섬으로 향했던 그는 그곳에서 소설 웃는 남자를 집필했다. 뮤지컬 ‘조커’는 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다. 파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옛 극단 동료들이 망명지의 서재를 찾고, 소설 속 인물 ‘그윈플렌’의 운명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논쟁의 핵심은 찢어진 미소를 지닌 인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귀족 사회의 조롱 속에서 그가 택해야 할 대응은 복수인가, 다른 방식의 저항인가. 정의를 위해 흘린 피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작품은 복수와 정의, 연민과 분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창작자의 책임을 정면으로 호출한다. 문학이 현실을 바꾸는 힘을 지녔다면, 그 힘의 방향 또한 숙고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조커’라는 이름은 특정 악인을 지칭하기보다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그윈플렌은 타고난 괴물이 아니라 권력, 욕망, 소비의 시선이 합작해 빚어낸 존재로 읽힌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상처 입은 개인이 어떻게 전시되고 이용되는지를 환기하는 은유로 확장된다. 작품은 불평등이 방치되고 정의가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 또 다른 ‘조커’가 탄생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연출을 맡은 추정화는 극중극 구조를 통해 망명지의 서재와 소설 속 서커스 공간을 교차시킨다. 대형 천을 활용한 무대 장치는 17세기 서커스 극장의 분위기를 환기하며, 적막과 격정이 교차하는 시각적 대비를 형성한다. 인물들이 한 편의 소설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곧 무대 위 사건으로 전환되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흐려진다.
허수현 작곡가는 19세기 프랑스풍 현악의 결을 토대로 현대적 재즈 스윙을 가미한다. ‘위고’, ‘서커스’, ‘다시 쓰는 엔딩’ 등 주요 넘버는 인물의 내면에서 시작된 감정이 점차 집단적 열기로 번져가는 흐름을 음악적으로 설계한다. 고전적 선율과 리듬감 있는 전개가 맞물리며 작품의 긴장도를 끌어올린다.
빅토르 역에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와 파리넬리 등에서 활약해온 이한밀, 그리고 JTBC 팬텀싱어 준우승 출신 백인태가 더블 캐스팅됐다. 두 배우는 창작의 고뇌와 시대적 책무 사이에서 흔들리는 위고의 내면을 각기 다른 해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줄리엣 역은 지킬 앤 하이드, 미드나잇:액터뮤지션 등에서 밀도 있는 연기를 선보인 신의정과, 마리 퀴리, 그레이트 코멧에 출연한 효은이 맡는다.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관계 속에서도 사상적 동반자로 존재하는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구현할 전망이다.
우르수스 역에는 김주호와 조영근이 캐스팅돼 극단의 축을 담당한다. 조나스 역은 조성민과 한희도, 줄리앙 역은 김우성과 정서안이 나눠 맡으며, 가브리엘 역에는 황인욱이 합류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품은 이상과 좌절, 낭만과 분노가 앙상블 속에서 교차한다.
뮤지컬 ‘조커’는 고전 문학을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웃음이 조롱으로 변질되는 순간과 정의가 또 다른 폭력으로 뒤틀리는 장면을 무대 위에 소환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묵직한 성찰의 지점을 남긴다. 작품은 결국 또 다른 ‘조커’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을 직시하라고 말하며, 그 책임이 우리 모두의 몫임을 조용히 환기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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