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트렌드를 움직이는 ‘K-헤리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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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트렌드를 움직이는 ‘K-헤리티지’

경기일보 2026-02-23 20:29: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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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에게 전통문화는 보존과 계승이라는 무거운 단어 안에 박제된 유물이었다.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의 문화재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그 가치를 배우는 것은 일종의 엄숙한 과업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통은 박물관의 적막을 깨고 거리로, 시장으로 나와 우리의 일상을 주도하는 ‘힙한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압도하는 이른바 K-헤리티지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전통의 화려한 귀환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그 중심에 선 국립중앙박물관의 행보는 가히 독보적이다. 문화상품 브랜드 ‘뮷즈(MU:DS)’의 2025년 매출액 약 413억원, 연간 관람객 650만명 돌파라는 기록은 전통이 더 이상 박물관 속 유물로만 머물러 있지 않음을 시사한다. 세대를 아울러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책상 위에 두고 민화 속 호랑이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요즘 전통은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는 세련된 방식이 됐다. 이제 전통은 소유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특별한 일상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선다. K-헤리티지는 정적인 보존 정책의 영역에서 동적인 문화 전략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공연을 열고 블랙핑크는 앨범 발매 기념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해 문화유산 오디오 도슨트와 음원 리스닝 세션을 진행한다. 전통 공간이 동시대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유물은 현대 대중문화의 감각으로 재해석되는 현재형 콘텐츠가 된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예술계에서도 선명하게 포착된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가 세계 현대무용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뉴욕 댄스 앤드 퍼포먼스 어워드(베시상)를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의 의식무 형식을 현대적 무대 언어로 재구성한 한국 무용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컨템포러리 예술로 인정받았다. 전통이 오늘날의 감각으로 충분히 재해석될 수 있음을 국제 무대에서 입증한 기념비적인 사례다.

 

그러나 전통을 억지로 글로벌 콘텐츠라는 틀에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해외시장의 취향에 맞춘 과도한 변형은 오히려 전통이 지닌 맥락과 깊이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 고유의 형식과 미학, 서사 구조를 충분히 이해한 뒤 그것을 동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전통의 리듬과 호흡을 오늘의 관객이 향유할 수 있도록 참여와 경험의 구조로 설계할 때 비로소 과거의 유산은 생명력을 얻은 현재의 콘텐츠가 된다.

 

물론 급격한 변화 앞에는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상업화에 대한 경계나 본질 훼손에 대한 논쟁은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변화를 거부하고 멈춰 선 전통은 생명력을 잃고 결국 잊힌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전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기 위한 ‘창작의 진통’에 가깝다.

 

결국 K-헤리티지의 미래는 과거를 얼마나 완벽하게 보존하느냐가 아니라 그 유산을 오늘날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유물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그 속에 잠든 고유한 미학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전략적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문화 본연의 멋을 현재의 감각으로 드러낼 때 K-헤리티지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트렌드를 이끌 것이다.

 

박물관의 유리벽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숨 쉬는 전통이 결국 시대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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