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곽호준 기자 | 현대차그룹이 로보틱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제조 기업에서 '피지컬 AI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과 협업을 통해 소프트웨어 역량을 끌어올리며 'AI 내재화' 전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자본이 빠르게 유입되며 기업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피규어AI는 390억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앱트로닉은 50억달러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았다.
이렇게 관련 기업들의 기술이 상용화 되기 전부터 대규모 자금이 선제적으로 유입되는 배경에는 휴머노이드가 제조·물류·서비스 전반의 생산성 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피규어AI는 지난 2022년 설립된 미국 휴머노이드 스타트업이다. 설립 초기 1억달러 자본금에서 출발해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390배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범용 휴머노이드를 앞세워 산업 현장 투입과 대량 생산을 목표로 글로벌 빅테크와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앱트로닉은 미국 텍사스대 연구소에서 분사한 기업이다. 물류·제조 현장에 최적화된 휴머노이드 '아폴로'를 개발했다. 아폴로는 키 177cm, 최대 25kg 적재가 가능한 산업용 모델로 모듈식 설계와 교체형 배터리를 적용해 현장 활용성을 높였다. 두 기업 모두 초기 양산 단계 진입을 앞두고 있어 휴머노이드 상용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실전 데이터'로 휴머노이드 차별화
현대차그룹은 범용 로봇 확산을 목표로 하는 테슬라를 포함한 다른 AI 경쟁사와 차별된다. 테슬라가 가정 및 서비스 영역까지 염두에 둔 범용 휴머노이드 전략을 택한 반면 현대차그룹은 산업 특화형 로봇부터 현장에 투입하는 단계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룹의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를 제조 공정에 투입해 조립·물류 효율을 높이고 실제 작업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식이다.
전략의 핵심은 '엔드투엔드(E2E) 밸류체인' 구축이다. 차량 개발부터 생산·물류·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해온 체계를 로보틱스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로봇의 설계·생산·운영·데이터 축적까지 내부에서 연결해 AI 학습 역량을 쌓는 '내재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소프트웨어 경쟁력 확보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 구글 딥마인드와 협력 체계를 확대해왔고 미국 로보틱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필드AI'에도 수백만달러 규모로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하드웨어와 AI 제어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로봇 운영 체계 전반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구상은 데이터 선점으로 귀결된다. 해외경제연구소가 발행한 보고서 '자동차 업계의 AI 로보틱스 산업 진출 현황과 위험 요인'에 따르면 현대차가 공장에서 자체 실전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체계화할 경우 AI 로보틱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로봇을 상용화하기에 앞서 그룹 내부 공장에서 먼저 학습·고도화를 병행하는 구조가 경쟁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 로보틱스 상용화 위해 '데이터·안전·책임 기준' 과제
다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보고서는 현재 현대차가 오픈 API 전략으로 언어적 추론 능력을 내재한 VLA(시각-언어-행동) 모델을 이식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했으나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데이터의 절대량이 부족해 AI의 자가 학습 속도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돌발 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치 않을 경우 예외 환경 대응 능력 고도화에 한계가 발생할 수 있고 개방형 플랫폼 특성상 외부 소프트웨어와 연동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병목이나 시스템 충돌 리스크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안전성과 책임 문제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사전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비정형 환경에서 AI의 추론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인간과 협업하는 로봇의 사고 발생 시 제조사·운용사 간 책임 소재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아 법적 분쟁과 보상 체계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업계는 현대차그룹의 로보틱스 행보를 신사업이 아닌 제조 혁신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능 고도화의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경우 자동차 제조에서 쌓아온 운영 역량이 로봇으로 확장되면서 피지컬 AI 플랫폼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달 신년사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유일한 길은 AI를 외부에서 빌려온 기술이 아닌 조직 내부의 생명력으로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뿐"이라며 AI 기술 내재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