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19] 룩소르, 대지에 새긴 문명의 미학⑥ 2부: 세티 1세(Tomb of Seti I): 어둠 속 피어난 우주와 입체 예술의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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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19] 룩소르, 대지에 새긴 문명의 미학⑥ 2부: 세티 1세(Tomb of Seti I): 어둠 속 피어난 우주와 입체 예술의 경이

문화매거진 2026-02-23 14:34:37 신고

[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18] 룩소르, 대지에 새긴 문명의 미학⑤ 1부: 세티 1세(Tomb of Seti I): 영원의 세계로 향하는 믿음의 발걸음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사후 세계로 장엄한 항해를 시작한 파라오를 따라 더 깊은 공간으로 들어선다. 1부에서 파라오가 신들의 환대 속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믿음의 과정을 보았다면, 2부에서는 3,5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도달했던 미술적 정점과 그들이 꿈꿨던 완벽한 우주의 조화를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은 죽음이 예술로 승화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감동적인 현장이다.

▲ 별빛이 깔린 천장을 담은 모습. 지하의 어둠을 찬란한 우주로 바꾸어 놓은 이 장면에 이르면 누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별빛이 깔린 천장을 담은 모습. 지하의 어둠을 찬란한 우주로 바꾸어 놓은 이 장면에 이르면 누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지하 깊은 곳인데도 전혀 답답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찬란한 별빛 덕분이다. 수천 개의 별이 정교한 간격으로 배열된 모습은 완벽한 기하학적 미를 보여주며,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현대의 그 어떤 예술가보다도 대담했음을 증명한다.

이 별들은 수천 년 동안 파라오의 머리 위에서 변함없이 빛나며 그를 지켜왔고, 이제는 우리에게 고대의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사방이 막힌 지하 동굴이지만, 이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한복판으로 던져진 듯한 해방감을 경험하게 된다. 짙은 감청색 안료는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깊은 심연의 빛깔을 잃지 않았으며, 그 위를 수놓은 노란 별들은 마치 오늘 밤에 그려 넣은 듯 선명하게 반짝인다. 이 천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지상의 밤하늘을 지하로 옮겨와 왕의 영혼이 영원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안식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표현이다.

▲ 입체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뱀의 형상. 3,500년도 훨씬 전 이토록 현대적인 미술 기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류 예술사의 기적과도 같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입체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뱀의 형상. 3,500년도 훨씬 전 이토록 현대적인 미술 기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류 예술사의 기적과도 같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그런데 이 무덤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아주 특별한 기술이 숨겨져 있다. 바로 ‘입체적인 미술 기법’이다. 사진 속 뱀의 몸통이나 상형문자의 윤곽선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벽에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돌을 정교하게 깎아서 톡 튀어나오게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미술 부조 기법과 다를 바 없는 이 세련된 조각 기술이 3,500년도 훨씬 전인 당시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인류 예술사의 경이로운 미스터리다. 이 입체감 덕분에 관람객이 움직일 때마다 빛의 각도가 변하며 그림자가 생기고, 벽화는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을 얻는다. 뱀의 비늘 하나하나가 손끝에 잡힐 듯 생생한 것은 장인들이 정과 망치로 일궈낸 끈기 있는 기적이다. 3D 입체 영상이 일상이 된 오늘날에도, 이 돌벽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입체감은 그 어떤 가상 현실보다도 생생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 벽에 새겨진 강렬한 장면. 뱀 앞에 무릎을 꿇은 포로들의 모습은 섬뜩하리만치 생생하며 질서 회복을 선언하는 파라오의 단호함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벽에 새겨진 강렬한 장면. 뱀 앞에 무릎을 꿇은 포로들의 모습은 섬뜩하리만치 생생하며 질서 회복을 선언하는 파라오의 단호함을 보여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길을 걷다 보면 섬뜩하리만치 생생한 장면 앞에서 발길이 멈춘다. 거대한 뱀 앞에 무릎을 꿇은 포로들의 모습이다. 어떤 이는 목이 잘린 채로도 무릎을 꿇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기이하게도 이 그림에는 붉은 피가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은데, 그 무미건조함이 오히려 더 냉정하고 엄숙하게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사형 집행의 기록이라기보다 무질서를 잠재우고 우주의 정의를 되찾겠다는 파라오의 단호한 선언이다. 피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것이 사적인 폭력이 아닌, 신성한 법도에 따른 질서 회복임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차가운 선과 냉정한 구도는 관람객에게 파라오의 위엄과 정의에 대한 경외심을 동시에 심어준다. 무질서한 세상을 정리하고 다시 바른길로 가겠다는 의지가 미술적으로 투영된 결과물이다.

▲ 세티 1세의 후손들과 신하들로 추정되는 벽화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반복되는 배치는 공간에 장엄한 통일감을 부여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세티 1세의 후손들과 신하들로 추정되는 벽화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반복되는 배치는 공간에 장엄한 통일감을 부여한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벽면 하단부에는 왕의 후손들이나 신하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반복되어 배치되어 있다. 마치 현대 영화의 필름 조각처럼 이어지는 이 배치 방식은 공간 전체에 정적인 긴장감과 규칙성을 부여한다. 한 명 한 명의 표정과 자세가 정교하게 살아 있어 당시 이집트 사회가 추구했던 집단적 질서와 미적 통일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들은 파라오의 영원한 여정을 곁에서 지키는 영적인 동반자들처럼 보이며, 무덤이라는 공간에 인간적인 온기와 연속성을 더해준다. 반복되는 형태 속에서도 각기 미묘하게 다른 표정들을 찾아보는 것은 이 무덤 관람의 또 다른 재미다. 이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고리처럼 무덤 벽면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 무덤의 가장 깊숙한 방. 파라오의 안식이 시작되는 이곳은 무덤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들로 가득 차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무덤의 가장 깊숙한 방. 파라오의 안식이 시작되는 이곳은 무덤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들로 가득 차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마침내 우리는 이 장엄한 여행의 종착지인 무덤의 가장 깊숙한 곳, 파라오의 안식이 시작되는 심장부에 도달한다. 이곳은 무덤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들로 가득 차 있으며, 파라오가 사후 세계의 관문을 모두 통과하여 마침내 신과 합일하는 장소다.

사방의 벽은 황금빛 채색과 푸른 우주의 색으로 뒤덮여 있어, 마치 다른 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곳에 서면 인간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한계를 예술과 신앙으로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그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노력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선과 색채가 파라오의 부활을 축복하는 거대한 교향곡처럼 어우러져 있다. 이곳은 더 이상 무덤이 아니라, 한 영혼이 완성되는 영광스러운 성전이다. 이 방 안 가득 채워진 황금색은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뚫고 나온 영혼이 맞이하는 찬란한 아침 햇살을 의미한다.

▲ 세 마리의 뱀이 고개를 치켜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들은 세티 1세의 잠을 깨우는 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최후의 감시자처럼 느껴진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세 마리의 뱀이 고개를 치켜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들은 세티 1세의 잠을 깨우는 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최후의 감시자처럼 느껴진다 / 사진: 한민광 제공


그 깊은 방 입구에는 세 마리의 거대한 뱀이 고개를 치켜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들은 세티 1세의 잠을 깨우는 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최후의 감시자들이다. 뱀의 몸통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와 매서운 눈매는 이 공간이 여전히 세티 1세의 신성한 영토임을 선언하는 듯하다. 이들은 파수꾼으로서 무덤의 성스러움을 지키며, 관람객에게까지 묘한 경외감을 심어준다.

3,500년 전의 예술가들은 뱀이라는 소재를 통해 권위와 보호, 그리고 영원한 수호의 의미를 이토록 강렬하게 형상화해 냈다. 뱀의 머리 모양과 똬리를 튼 모습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 뱀들은 마치 지금도 누군가 무덤의 비밀을 훔치려 하면 벽을 뚫고 나올 것처럼 생생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 하토르의 소가 그려진 벽면의 모습.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된 소의 형상은 무덤 내부에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하토르의 소가 그려진 벽면의 모습.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된 소의 형상은 무덤 내부에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무덤 내부에는 강렬한 투쟁의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 벽면에는 사랑과 미, 그리고 풍요를 상징하는 하토르 여신의 화신인 소가 그려져 있다. 부드러운 갈색 톤과 완만한 곡선으로 표현된 소의 형상은 지하 세계의 서늘함을 녹여주는 포근함을 준다.

이 장면은 파라오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기 위한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안온함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 이후에도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사랑이 함께하기를 바랐던 그들의 인간적인 소망이 이 벽화 한 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친 바위산 속에서 이런 다정한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속에도 왠지 모를 위안이 찾아온다. 강하고 엄격한 왕의 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 세티 1세가 갈구했던 마지막 평안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예술은 이토록 차가운 돌벽 위에 온기를 불어넣는 마법을 부린다.

▲ 관람을 마치고 무덤을 빠져나가는 길. 지하의 찬란했던 예술 세계를 뒤로 하고 다시 현실의 빛을 향해 올라가는 발걸음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관람을 마치고 무덤을 빠져나가는 길. 지하의 찬란했던 예술 세계를 뒤로 하고 다시 현실의 빛을 향해 올라가는 발걸음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이제 환상 같은 지하 궁전을 뒤로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올 시간이다. 지하에서 보았던 찬란한 별들과 입체적인 신들의 미소를 뒤로하고 한 계단씩 올라간다. 들어올 때 느꼈던 긴장감은 어느새 깊은 감동과 여운으로 바뀌어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예술적 정화를 겪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준다.

3,500년 전 이름 모를 거장들이 남긴 그 놀라운 필치와 입체감은 내 몸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무늬를 새긴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지상의 빛이 이토록 눈부신 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하의 그 깊고 찬란한 어둠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저 별빛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현실의 소음들이 다시금 삶의 활기를 불어넣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 무덤 밖으로 나와 다시 한번 마주한 왕가의 계곡 전경. 척박하고 거친 바위산 아래 저토록 찬란한 유토피아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무덤 밖으로 나와 다시 한번 마주한 왕가의 계곡 전경. 척박하고 거친 바위산 아래 저토록 찬란한 유토피아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다시 무덤 밖으로 나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왕가의 계곡을 바라본다. 저 척박하고 거친 바위산들 아래 저토록 화려하고 찬란한 우주가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세티 1세의 무덤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인간이 가진 예술에 대한 열정은 죽음의 그림자조차 지워버릴 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진정한 가치는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비로소 가장 밝게 빛난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세티 1세 무덤의 탐방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하지만 이 황금빛 골짜기에는 아직 우리가 만나야 할 수많은 파라오와 그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다음 여정에서는 또 어떤 파라오가 우리를 신비로운 고대의 미적 세계로 안내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기대해 본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이 위대한 유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떻게 살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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