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저/정영목 역 | 다산북스
이 책의 원제는 ‘Depature(S)’다. ‘출발, 이탈, 떠남, 죽음, 현재의 삶을 떠나는 것.’ 줄리언 반스는 제목 뒷부분 ‘S’를 괄호에 넣어두었다. 나는 그 작은 문자를 한없이 들여다본다. 한 사람의 긴 삶에는 얼마나 많은 떠남과 이별들이, 죽음과 같은 예감이 겹겹이 반복되어왔는가. ‘나는 이제 일흔여덟이고 이것이 분명히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선언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작가가 직접 쓴 부고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고에 대해서라면 나는 할 말이 적지 않다. 아주 오랫동안 신문에 실린 부고란을 꼼꼼히 읽어왔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대체로 죽은 이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속의 질서였다. 오랜 시간 관찰한바,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스스로 부고장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부고는 언제나 ‘조금 늦게’ 당도한다. 그 간발의 시차로 말미암아, 망자는 영원한 부재 뒤에야 자신의 마지막 메시지를 세상에 남기는 위치에 처한다.
이런 방식은 작가들에게 일종의 딜레마이자 공포이다.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글, 쓰다 만 글이 유고작이라는 이름으로 사방에 울려 퍼질지 모른다니. 상상만으로 서늘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는 결정권이 없다. 프란츠 카프카는 생전에 미발표 원고와 일기, 편지까지 다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으나 친구 막스 브로트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미완성작 『8월에 만나요』는 사후 10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마르케스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노인성 치매를 앓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줄리언 반스가 왜 기어이 ‘마지막 책’이라고 못 박아 두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는 아직 살아 있으며, 산 자의 특권을 행사하는 중인 것이다. 자기 결정권 말이다. 작가로서 염결성의 문제이자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동안 나는 한국어로 출간된 줄리언 반스의 거의 모든 저작을 따라 읽어왔다. 마지막이라고 명명된 책을 펼치며 가슴이 시큰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독서를 후회하기 시작했다. 작가가 마련해놓은 결말을 미리 승인하는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한 줄 한 줄 읽는 일이 마치 작별의식에 동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252쪽)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식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수용할 만한 마음의 준비, 애도를 준비할 준비 말이다. 그가 여전히 냉소적이고 통렬한 동시에 우아하다는 것을, 어쩐지 쓸쓸하고 무언가를 겁내 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의연하고 위트와 농담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기쁘면서도 슬프게 받아들여야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을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 시작해도 무방하다.
"나는 이제 이런 현혹적인 낭만적 환상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 행성을 날려버리면서 그와 더불어 모든 예술도 날려버릴 것이다. 아니면 생존은 하겠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것-현재의 우리, 신과 사랑과 행복과 예술을 소소하게 갈망하는 우리와는 전혀 닮지 않은 것-으로 진화할 것이다." (211쪽)
"하지만 나는 스티븐과 진을 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취급하여 그들을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살살 이끌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삶과 픽션을 혼동하고 있었다." (184쪽)
"우리 삶은, 다시 말해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이야기로 축소될 것이다." (219쪽)
드디어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그 먹먹하던 순간에 대해서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오직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의식이었다. ‘당신이 있어서 즐거웠다’는 그 인사에 나도 한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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