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처음에 보잘것없던 나무는 혼자 무럭무럭 자라 우듬지에서 반드르한 연둣빛 가죽 같은 새잎이 올라오고 줄기도 굵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내가 거실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을 때 갑자기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물.
나는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뭐야 이러면 살아 있을 때랑 똑같잖아, 하고 투덜거리며 컵에 찬물을 반만 떠다가 화분에 갖다 부었고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듯 잎을 천천히 끄덕이며 물을 마셨다. (— 이유리, 「빨간 열매」 중에서)
이유리의 신춘문예 당선작 「빨간 열매」는 일상에 스며든 환상적 발단으로 전개된다. 극 중 화자 유진은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화분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유골가루에 흙을 섞어 무심히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 뒤 이 나무는 아버지의 환생이 되어 유진에게 물을 달라거나 뿌리를 살펴봐 달라고 말하며, 생전과 비슷한 관계를 이어 간다. 어느 날 유진은 아버지 화분을 수레에 실어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처럼 어머니 화분을 돌보는 P를 만나고, 이후 아버지와 P의 어머니는 사랑을 나누며 빨간 열매를 맺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된다.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에서도 이유리는 특유의 블랙코미디 같은 감성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복싱 선수인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어느 날 브로콜리로 변해 버리거나(「브로콜리 펀치」), 죽은 전 남자친구가 바닥에 버려진 손톱을 통해 부부의 침실에 나타나 말을 거는 설정(「손톱 그림자」), 몸이 반투명해지며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된 주인공이 비슷한 상태가 된 새엄마와 상처를 공감하며 유대하는 과정(「평평한 세계」)이 그렇다. 이들 에피소드는 분명 기이하지만, 작중 인물들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변화를 놀라워하면서도 삶의 연장선으로 흘려보내며 그 전제 안에서 이야기는 천연스럽게 진행된다.
아무튼 요 목소리를 들어보면 스스로 병원에 갈 생각은 없는 듯했고 아무래도 내가 밀고 끌며 데려가야 할 것 같으니, 보자 그러면 가까운 병원이 어디, 그런데 손이 브로콜리가 되었을 때는 내과일까 외과일까. (—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중에서)
공상과학의 배경이나 초현실적 신화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일상의 일부로 환상을 태연자약하게 결합하는 마술. 평범한 개인의 하루에 개입하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리듬의 정경 묘사. 대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능청스레 수행되는 이러한 서사는 낯선 세계의 이질감을 현실로 매끄럽게 녹여내며 이유리식 작법을 조직한다. 미술로 장르를 바꿔 빗대자면, 채온과 왕선정이 그린 기묘하고도 유쾌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채온의 그림은 ‘정교한 채움’보다는 ‘철퍼덕 칠함’으로써 닿으려는 몸부림 같다. 몇 번 왔다 갔다 한 붓질과 그 행위의 궤적이 그대로 남은 표면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존재의 어귀에 접근했다가 그친 회화적 잔상에 가깝다. 형태적으로는 일상에서 본 소소한 것들이 연상되면서도 부피와 질감의 차이 때문에 무엇인지는 쉽게 확정되지 않는다. 이 이미지들은 살아 있는 생물인 듯 아닌 듯 경계를 오가며, 어디로 속해지기보다 자유롭게 해석되기를 지향한다. 그래서 경계에 머무는 유령 같기도 하고, 언뜻 스쳐 가는 착시 같기도 한 것이 캔버스에 나뒹구는 느낌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채온을 인터뷰하며, 그가 병환 중의 모친을 간호하고 또 떠나보내야 했던 시간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닥쳤던 막막한 현실이자, 쉽사리 납득되지 않던 환상 같은 상태를 그와 주고받은 몇 마디를 통해 공감하였다. 삶의 토대였던 질서와 인식 대신, 뜻밖으로 피어나 주변을 생경하게 하던 어떤 존재감에 대해서도. 불확실한 경계 위에 서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감각들은 지금도 채온의 회화 어딘가에 어슴푸레 자리 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왕선정의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은 일그러진 괴물 같기도, 풀어지고 어그러진 내면이 포착된 이의 민낯 같기도 하다. 왜곡된 신체 묘사에서 비롯되는 멜랑콜리한 표현과 불온한 정서는, 이를 상쇄하는 회화적 기지와 유머에 균형을 이루며 작품 세계를 일관되게 이어 오고 있다. 왕선정의 그림 속 주제는 단일한 대상이라기보다, 도처에서 목격되는 여느 인물들의 취약한 내면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그들 초상은 관람객의 숨은 심리적 축을 건드리며, 밀어냈던 감정적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왕선정은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자란 유년 시절을 고백하며, 특별한 사건 없이도 긴장과 억압 속에 놓여야 했던 기억을 꺼내놓은 바 있다. 작가의 작업은 그 시간과 거리를 두고 다시 불러오는 감각의 편성이자, 스스로를 다독이고 가족을 이해하려는 상상의 제스처처럼 보인다. 현실은 환상과 차이를 두고 지나가 버리지만, 어떤 이들은 어긋남을 수용하며 그 안에서 부드럽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 같다. 이유리의 소설, 그리고 채온과 왕선정의 회화로부터, 삶의 굴곡을 ‘능청스럽게 대처하는’ 태도를 발견한다.
나는 어둠 속에서 원준의 브로콜리를 더듬어 잡았다. 두텁고 미지근한 줄기 밑에서 두근두근, 물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 물은 브로콜리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원준의 어디로 갈까, 미움이나 분노를 만들어내는 그런 곳으로 흘러가서 고일까, 거기에 맑게 섞여들면 조금 묽어질 수 있을까. 나는 오래오래 브로콜리를 쓰다듬고 매만졌다. (—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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