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번으로 7개월 대장정 마무리…끊김 없는 7악장 연주에 인생 담아
'고전미' 5번과 '러시아풍' 7번도…베토벤 현악4중주 입체적 해석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2013년 개봉한 영화 '마지막 4중주'에는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곡이 흘러나온다. 바로 '인류가 창작한 가장 위대한 현악4중주'라는 찬사를 받는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이다.
현악4중주단 '푸가'의 최연장자인 주인공은 단원들에게 자신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마지막 연주곡으로 이 작품을 제안한다. 크고 작은 갈등으로 불화를 겪는 단원들은 무려 7개 악장을 끊김이 없이 연주해야 하는 이 곡을 '불협화음 속에서 완벽한 화음'으로 선보이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올해로 결성 14년 차를 맞이한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이 지난 7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 연주를 끝으로 지난해 7월 시작한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연주의 대장정을 마쳤다.
영화와는 다른 이유였을 테지만, 마지막 곡을 14번으로 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벨 콰르텟은 기존 현악4중주의 틀을 깬 이 작품에 깊은 사색과 서정을 담아내며 청중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특히 서로 다른 색채와 감정을 품은 7개 악장을 약 37분간 중단 없이 연주하는 모습이 불확실성 속 인생의 흐름과 닮아 깊은 울림을 안겼다.
느리고 자유로운 푸가(독립된 멜로디가 반복되고 교차하는 음악) 형식으로 1악장을 시작한 아벨 콰르텟은 경쾌한 춤곡 형식의 2악장으로 능숙하게 분위기를 전환했다. 명랑하고 환희에 찬 주제부와 6개의 변주로 구성된 4악장에서는 아벨 콰르텟만의 개성 넘치는 해석이 돋보였다. 유머와 에너지를 동시에 전달한 5악장과 풍부한 선율의 6악장을 지나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소나타(제시부, 전개부, 재현부로 구성된 음악) 형식의 7악장을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14번 외에도 베토벤의 초기 작품인 5번과 중기 작품인 7번도 함께 연주됐다. 5번은 고전적 형식미와 밝은 정서가, 7번은 베토벤의 실험정신과 러시아풍 색채가 돋보였다. 아벨 콰르텟은 각 곡의 시대적, 음악적 특성을 살려 균형 잡힌 해석을 선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나란히 선 네 명의 단원들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7개월간 이어진 고난의 시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성취감 이면에 그토록 몰입했던 베토벤과 작별하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아벨 콰르텟은 이번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연주는 한국 실내악계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이들은 베토벤 후기 곡의 복잡함과 난도, 체력적·정신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매 공연 초기·중기·후기 곡을 고루 배치한 프로그램으로 베토벤 음악의 변화무쌍함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마지막 14번의 연주는 귀가 들리지 않던 시기 베토벤의 심연을 아벨 콰르텟만의 다채로운 음색과 해석으로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남겼다.
7개월간 동고동락했던 아벨 콰르텟 단원들은 당분간 개인 정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창단 멤버인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과 첼리스트 조형준은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다. 또 조형준의 아내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은 민간 악단인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객원 악장으로, 막내 비올리스트 박하문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비올라 부수석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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