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대통령실을 마주 보는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추운 날씨 탓에 벌겋게 익은 손에는 ‘강제이전 결사반대’가 쓰인 피켓이 들려 있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HMM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임직원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HMM지부(육상노조)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본사 이전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30여 명의 육상노조 소속 근로자들은 “노조의 동의 없이 정부가 (HMM 본사) 이전을 강행한다면 총파업 태세에 돌입하겠다”며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북극항로 개척 필요” vs “수익성·안전성 담보 안돼”
HMM은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둔 선복량 기준 세계 8위의 글로벌 해운사다. 육상과 해상 직원을 합치면 1900여 명(육상 1057명, 해상 893명)이 근무한다.
정부는 해양수산부·유관 기관을 비롯해 HMM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어 지역 불평등을 해소하고, 세계 2위 컨테이너 환적항인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산이다.
정부의 뜻은 강경하다. HMM 경영진에 이달까지 ‘부산 이전 로드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해수부 전재수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년 1월 로드맵 발표를 예고했다.
부산 이전 추진에 속도가 붙게 되자 노조 측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육상노조 측은 사업적 타당성이 없을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과 근로자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글로벌 선사인 HMM은 국내 고객 대부분이 수도권에 위치하고, 해외 고객은 인천을 통해 수도권으로 유입된다. 고객 접근 편의성에 행정, 금융, 법률, 회계 네트워크를 감안하면 부산 이전이 도리어 비효율을 낳는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지역 불평등 해소 효과가 나타날지도 미지수다. HMM의 국내 매출이 크지 않고, 업종 특성상 선박이나 해외에 주로 투자해 지역사회 파급력이 미미할 수 있어서다.
1년에 3~4개월만 운항할 수 있는 북극항로의 수익성과 열악한 인프라도 변수로 꼽힌다. 육상노조 정성철 지부장은 “컨테이너선은 매주 정기적으로 운항해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지만, 북극항로는 소규모·단기 운항에 고가의 선박을 투입해야 한다”면서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아 선박이나 선원이 해빙에 갇히는 등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컨테이너선이 주력인 HMM의 사업 구조가 북극항로에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HMM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매출 가운데 85.25%가 컨테이너선에서 나왔다. 북극항로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전략 없이는 정부가 제시한 ‘북극항로 개척’이 미완인 상태로 끝날 수 있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한 노조원은 “벌크선으로 단기운항하는 석탄, 석유, 가스 등은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면서도 “북극항로 개척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선단 대부분이 컨테이너선인 HMM이 적합한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산업은행과 무엇이 다른가…교섭 결렬 시 총파업”
현재 본사 육상노조는 부산 이전에 반대하고, 부산의 해상노조는 중립을 지키고 있다. 다만 경제적 효력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전을 강제할 경우 해상노조도 연대의 뜻을 밝혔다.
앞서 노조는 정부와 협의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11월 단독 면담을 가졌던 해수부 전재수 장관과 입장차만 확인했다. 정 지부장은 “면담 당시 전 장관에게 반대 입장을 밝혔으나 중단이 어렵다는 답변만 받았다”면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아무 협의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노조원은 “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민노총 등이 이재명 대통령과 연계해 막았다”면서 “당시엔 ‘지역경제를 살린다고 기업을 보내는 게 말이 되냐’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HMM에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노조 측은 이번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강제 이전이 추진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할 방침이다. 정 지부장은 “교섭 상황에 따라 향후 조합원 총결의대회, 결렬 시 노동쟁의신청 후 총파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본사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자 HMM 임직원들의 마음도 무거워졌다. 특히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된다는 불안감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두 명의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노조원 조모 씨는 “본사 이전이 현실화되면 주말부부로 지내거나 경력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면서 “HMM 구성원들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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