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손끝에서 퍼진 재즈 선율…첫선 보인 라벨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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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 손끝에서 퍼진 재즈 선율…첫선 보인 라벨 협주곡

연합뉴스 2025-12-05 08:08:10 신고

예술의전당서 伊 산타 체칠리아와 협연…속주로 표현한 '재즈 축제'

이례적 두 번 앙코르에 객석 환호…직접 편곡한 '고엽' 등 선보여

연주를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임윤찬 연주를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는 임윤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12.04 hyun@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지난 7월 스승인 손민수와 함께 피아노 듀엣 공연을 한 뒤 5개월 만에 다시 국내 팬들 앞에 선 임윤찬(21)은 거침이 없었다.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무대로 걸어 나온 임윤찬은 객석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해 짧게 인사한 뒤 곧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렸다. 채 마음의 준비를 못 한 관객들은 흠칫 놀라며 자세를 바로잡고 무대에 귀를 기울였다. 관객들이 임윤찬의 손끝에서 퍼져 나오는 재즈풍 피아노 선율에 흠뻑 빠져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수초에 불과했다.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지난 4일 밤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탈리아 명문 교향악단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공연은 말 그대로 협연자로 나선 임윤찬의 독무대였다. 산타 체칠리아 연주에 맞춰 임윤찬이 선보인 곡은 모리스 라벨의 불후의 명곡 '피아노 협주곡 G장조'였다. 재즈의 활력과 경쾌함을 피아노 선율에 담은 이 곡을 임윤찬이 국내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피아니스트 임윤찬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Shin-Joong Kim_MOC. 재판매 및 DB 금지]

라벨이 1928년 미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접한 재즈가 모티브가 돼 탄생한 이 곡은 각기 다른 분위기와 매력을 보여주는 3개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임윤찬은 악장마다 연주법에 다소 변화를 보여주며 '즐겁게 관객을 기쁘게 할 것'이라는 라벨의 작곡 의도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재즈 특유의 활력 있는 리듬과 스페인 북서부 바스크 지방의 즉흥적인 선율이 절묘하게 맞닿은 1악장에선 임윤찬의 장기인 현란한 타건이 공연장 분위기를 순식간에 들뜨게 했다. 임윤찬의 피아노는 타악기의 날카로운 소리와 목관의 경쾌한 선율을 완벽하게 리드하며 우위를 차지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균형과 대화가 이 악장의 본래 취지였을 테지만, 무대 위에선 오로지 임윤찬만이 빛을 뿜어냈다. 당연히 오케스트라의 배려와 절제가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한 무대였다.

모차르트의 서정적 선율을 닮은 2악장에서 임윤찬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연주법을 선보였다. 한음 한음 건반을 꾹꾹 눌러 라벨이 추구했던 피아노의 섬세한 음형을 표현했다. 임윤찬의 이런 모습은 마치 러시아의 거장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나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연주를 보는 듯했다. 은은한 재즈 선율에 맞춰 한땀 한땀 정성스레 바느질하듯이 건반을 치는 모습에 객석에선 탄성이 절로 나왔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피아니스트 임윤찬

[연합뉴스 자료사진]

피아노 독주와도 같았던 2악장이 끝나자 무대는 화려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클라리넷의 날 선 고음과 트롬본의 익살스러운 리듬,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심벌의 연주에 맞춰 임윤찬은 마치 단거리 달리기를 하듯 속주 기법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응축했던 에너지를 폭발하듯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임윤찬의 속주는 재즈 축제의 활력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였다. 축제가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갑자기 연주가 멈추고, 임윤찬이 두 손을 털고 피아노를 응시하자 관객들의 환호가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약 23분 만에 끝난 임윤찬의 연주가 못내 아쉬웠던 관객들의 박수는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 분간 박수가 이어지자 임윤찬은 멋쩍은 듯 퇴장과 재입장을 반복했고, 결국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아 앙코르곡을 연주했다. 바로 임윤찬이 직접 편곡한 것으로 알려진 '고엽'이었다.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내한공연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5.12.04 hyun@yna.co.kr

늦가을 잎이 떨어지는 풍경이 그려지는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드디어 임윤찬과의 작별을 실감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임윤찬이 악장에게 한 곡 더 연주하겠다는 제스처를 하고 의자에 다시 앉자 객석에선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앙코르곡은 임윤찬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연주 영상을 올렸던 코른골트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이례적인 임윤찬의 두 차례 앙코르 연주에 관객들은 마치 성탄 선물을 받은 듯 기뻐했다. 임윤찬도 달아오른 관객들의 반응에 덩달아 기분이 상기됐는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화답했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임윤찬의 들뜬 모습에 관객들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비로소 그를 배웅했다.

이날 공연에선 다니엘 하딩이 지휘하는 110년 역사의 산타 체칠리아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7년 만에 내한한 이 악단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이 1997~2005년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바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 서곡으로 무대를 연 산타 체칠리아는 주 무대인 2부 공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선보였다.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몰입감과 표현력으로 라흐마니노프 대표 교향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는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대니얼 하딩 지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임윤찬과 협연 대니얼 하딩 지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임윤찬과 협연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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