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주배경아동, 함께 키워요’ 연속 기고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연재는 언어·문화 장벽과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해 여전히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배경아동들의 실태를 조명하고 제도적 개선 방향을 모색합니다. 모든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말
이진혜 이주민센터 친구, 법률인권센터장. ⓒ초록우산
“I want to find his father(아이의 아버지를 찾고 싶어요)”
필자가 이주인권 옹호 단체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상냥한 눈빛을 가진 중년 여성이 센터를 찾아왔다. 이제 15세가 된 아이가 아버지를 궁금해하며 한국에 왔고, 친부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 아버지는 함께 아이를 함께 키우자고 약속해 놓고, 아이가 돌이 될 무렵 홀연히 사라졌다.
홀로 아이를 키워 온 어머니는 경제적 지원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좋은 말 몇 마디만이라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결국 법원을 통해 인지 청구를 제기했고, 유전자 검사를 위해 아이가 어렵게 입국해 아버지를 만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미안하지만 한국에 가족이 있어 내 손으로 호적에 올리지는 못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이후 재판상 인지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원하는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흔히들 말하는 ‘코피노’ 사례이다.
외국에서 그 나라 여성을 만나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갖고, 그 모자를 버리고 사라진 친부들은 자녀의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책임은 물론, 자신의 자녀로 인정하길 거부함으로써 아이의 자존감과 정체성 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건은 외국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 입주해 한국인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주여성들, 이른바 ‘국민의 양육자’ 역시 같은 구조적 장벽에 마주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아동과 비혼모에 대해 여전히 냉랭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법무부가 외국인 비혼모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했지만, 과거 미등록 체류를 했다면 그 기간 발생하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범칙금을 납부해야 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다.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한부모에게 이 비용을 마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체류자격이 있다고 생계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취업활동을 위해 사전허가를 신청하면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어렵게 얻은 일자리에서도 일을 시작할 수 없다. 허가가 제때 나오지 않아 채용이 취소되기도 한다. 업종도 제한적이라 단순노무가 아니라면 4년제 대학 이상 졸업, 4,000만 원 이상 연봉 등 요건을 충족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출입국사무소 지침에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체류자격이어서 업무 처리 역시 더디다.
사회보장제도는 더 문제다. 아동이 재판상 인지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되더라도, 양육자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구 단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결국 2인 가구에 상당한 생계급여·주거지원 등을 받지 못해 아동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위협받게 된다. 반면,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를 키우는 결혼이민자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이 된다. 아동의 관점에서 보면 ‘혼인 중 자녀’인지 ‘혼인 외 자녀’인지에 따라 생존권 영역에서 차별이 있는 셈이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를 이용해 한국에 정착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러나 이주민이 한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은 많지 않고, 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은 일반 가정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아이를 잘 부양하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정부나 제도만의 몫이 아니다. 이 땅에서 먼저 살아온 선주민들의 이해와 연대, 지역사회의 포용적 시선이 더해질 때 비로소 아동의 삶은 안정된다. 중요한 것은 아이는 국적·출생경로·체류자격을 떠나 이 땅에서 자라는 ‘어린이’라는 사실이다. 태어난 아동이 잘 자랄 수 있게 돕는 일은 정부와 지역사회, 그리고 선주민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역할이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