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전 <담아 이르다>가 열리는 전시장 입구.
타국을 여행하다 보면 느낄 것이다. 그곳의 전통문화를 접하고 싶은 열망을. 그럴 때면 정작 우리 전통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동양과 서양, 국가와 국가 사이 경계가 모호해진 현대 사회, 전통을 복원하고 지키는 일은 점점 힘에 부친다. 이처럼 문화적 동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한국적인 것의 쓰임을 고민하는 브랜드가 등장했다. 바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화 브랜드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다. 서울 명동의 옛 제일은행 건물을 복원한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관에 자리한 공간은 5층 전시장과 디저트 살롱, 지하 1층의 기프트숍까지 아우른다. 한눈에 보아도 한국적이면서 멋스러운 공간이지만, 곳곳을 채운 디테일을 알아챈다면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국가무형유산 조대용 장인이 엮은 발이 걸린 입구를 지나면 왼쪽에는 전통 소재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워크숍 공간이, 그 옆에는 단차를 달리한 마루 공간이 있다. 가운데 전시 공간에서는 개관전 <담아 이르다>가 한창이다. ‘보자기’를 테마로 배냇저고리부터 가락지보, 버선, 복주머니 등 한국인의 생애에 함께하는 보자기와 침선 작품을 전시한다. 현대 공예가 및 아티스트의 작품과 조선시대 유물을 나란히 선보임으로써 과거와 현대의 삶을 섬유라는 소재로 엮은 것이다. 이곳에서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를 총괄한 김경은 신세계 아트&스페이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났다.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우리네 전통이 한결 가깝게 다가왔다.
1 최희주 작가의 코르사주 조각보와 화병을 감싼 목련 보자기. 2 베틀과 이어지는 실로 좌대를 완성했다. 3 비닐로 만든 실을 엮어 원단을 직조하는 김태연 작가의 밥멍덕.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전통의 어떤 측면에 주목했는지 궁금합니다. 신세계백화점이 한국 전통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했습니다. 백화점은 역사적으로 귀한 것을 소개하고, 그것을 여러 세대가 함께 방문해 경험하는 장소였어요. 이 점에 착안하여 한국의 것을 직접 경험하고 응접실처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동시에 저희의 임무는 고객과 장인을 잇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외국 것을 소개해왔다면, 이제 우리 것을 들여다보며 한국적인 것이 왜 귀한지 생각하는 동시에 각자 삶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선물하기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언제 출발했나요? 2023년 5월 신세계 아트앤스페이스팀 4명으로 시작해 큐레이터, 디자이너, MD 등이 합류하며 인원이 늘었어요. 초반에는 전국의 페어와 전시를 다니며 한국인이 전통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조사했어요. 저희의 방향은 기프트숍이 전시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한국 소재를 발굴하고 전시를 통해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전시 공간의 디스플레이는 나무 소재가 주를 이루는 듯합니다. 조선시대 선비의 방을 참고했는데 심플한 구성이 인상적이었어요. 선비의 책상인 서안에서 출발해 사방탁자와 평상으로 집기를 구성했죠. 공간의 중심은 공예 작품이지 건축이나 인테리어가 아니에요. 그래서 전시장과 기프트숍에 활용할 단순한 형태의 모듈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세 가지 높이로 달리 구성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요. 벽지는 안동 장인의 한지를 사용했는데, 마루 공간 천장에만 흰색이 아닌 옥색 한지를 발랐어요. 전통적으로 천장에 작은 하늘을 조성한 데서 착안한 거예요.
1 전시 공간 전경. 모듈형 가구를 가운데 배치했다. 2 한산모시짜기를 계승하는 김나연 작가의 모시 밥멍덕. 3 서신정 작가의 채상 트렁크.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브랜드 컬러와 패턴을 적용했다. 4 김태연 작가의 비닐 원단을 전시한 워크숍 공간.
베틀에서 자아낸 실이 이어져 받침대가 되는 구성이 인상적이에요. 전시 작품이 작고 가벼운 물건들이라 작은 것을 담을 큰 프레임을 고민했어요. 보자기는 원단이고 원단의 원천은 실이라는 데 생각이 닿았죠. 힌지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객원 큐레이터 김순영 대표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며 전시를 담는 프레임으로 베틀과 실로 만든 좌대를 제안했어요. 섬유라는 소재의 가벼움을 보여주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미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전통 재질 가운데 섬유, 짚풀, 금속, 도자기, 나무, 한지, 나아가 유리와 가죽 등 실생활과 밀접한 재료를 다루고자 해요. 우선 섬유는 인류가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사용한 소재로, 문명의 기본 요소예요. 그중 왕골, 모시 등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작물과 고려시대 원단인 라를 재생한 사례에 주목했어요. 동시에 비닐을 실처럼 엮어 직물을 제작하는 김태연 작가의 작업처럼 새로운 소재도 소개하고요. 방짜유기, 금, 은, 동 같은 금속과 옹기, 분청사기, 청자 등의 도자기도 그 종류가 다양해요. 나무의 경우 목공예와 옻칠을 재해석한 한결 작가, 본래 한지공예가이며 버려진 나무에 새 쓰임을 불어넣는 이종국 작가님 작품이 대표적이에요. 유리와 가죽은 현대적인 재질이지만 전통을 재해석하는 공예가들과 떼놓을 수 없어 함께 조명하고 있어요.
1 우리 일생의 장면에 함께 하는 사물을 소개한다. 2 전시 공간의 김경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첫 전시의 주제로 보자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자기가 우리의 생활, 나아가 삶을 담는 물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일상에서 무겁거나 비정형적인 물건을 급히 담을 때 보자기를 사용하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이 사각형이 저희 프로젝트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보았어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weaving(직조)’이라는 테마와도 연결되고요. 단순한 사각형이 입체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이는 한복과도 유사한 특징이에요. 한복은 접힌 형태가 단순하고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사람이 착용하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형태가 겹겹이 드러나죠. 거기에 한국적인 창의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생활에서 쓰이는 스토리를, 보자기를 통해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일관되게 물건의 쓰임새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짚풀을 짜는 이수자들이 이제 거의 80~90대라고 해요. 한두 세대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다음 세대가 짚풀에 대해 알지 못하니 일상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어요. 물건은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전통 그대로 둔다고 사람들이 흔쾌히 사용하지 않아요. 갖고 싶고,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한복 착용 시 궁 입장료가 무료라 요즘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이 화려하고 독특한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아요. 이 현상에 대해 어머님(재단법인 아름지기 정민자 고문)에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어요. 단번에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주 입을수록 좋은 일이라고요. 전통 한복과 달리 변형된 형태일지라도 많이 접할수록 차츰 원본을 찾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이야기에 공감해요. 우선 매력이 있어야 사서 쓰게 돼요. 사용하다 보면 전통에 궁금증을 느끼고 점차 알아가지 않을까요.
1 기프트숍 전경. 2 다양한 소재의 공예품이 준비되어 있다. 3 HOS 몽당 시리즈 초. 4 보자기, 함, 가방 등 다양한 포장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한식 디저트 전문점이 흔하지 않아 디저트 살롱의 호응이 클 듯한데요. 이곳의 구성 요소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디저트 살롱은 응접실처럼 고객들이 전시를 본 뒤 머물고,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했어요. 최근 젊은 세대에 차가 유행인데 아직은 중국이나 일본 차가 대다수더군요. 다과도 대개 서양식 케이크나 페이스트리고요. 마침, 우리 쌀로 전통 떡을 빚는 서명환 셰프님이 신세계 한식 연구소와 몇 년째 협업 중인데, 이 공간이 생기면서 고객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더불어 김동현 티 마스터가 조선시대 다서(茶書) <부풍향차보>에 기초한 한국 차를 개발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메뉴가 탄생했습니다. 이런 메뉴를 선보일 수 있다니 저희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에요.
기프트숍에는 탐나는 제품이 가득한데요. 어떤 고객을 상상하며 기획했나요? 신세계백화점 고객이라고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에서 손주까지 모두 고려해야 해요. 그래서 할머니가 손주에게 줄 배냇저고리부터 집들이 선물, 귀한 손님을 위한 답례품, 친구 생일 선물 등을 모두 해결하는 게 저희의 숙제예요. 한국 사람은 집에 방문할 때 빈손으로 안 간다는 말이 있듯이 정을 나누는 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잖아요. 그 선물을 해결하는 곳이 기프트숍이에요. 선물을 정성스럽게 담는 포장까지 준비해 전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기프트숍의 작가 제품은 예약이 이어질 정도라고요. 판매 제품의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전시를 통해 사라져가는 재료를 다루는 장인, 작가,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개하고, 나아가 작가와 함께 제품까지 개발하고 있어요. 하우스오브신세계 PB 제품은 작가 제품과 겹치지 않는 품목 중 전통문화에서 상징적인 합, 굽접시, 주병 등을 준비했습니다. 저희의 주된 목표는 전통 소재에 집중하는 작가를 소개하는 일이에요. 작품을 주문받아 작가에게 연결하고, 소규모 공방이나 가족 회사와 협업해 PB 상품을 제작하는데요. 작은 전통 공방이 힘든 상황이기에 지속적으로 제작을 의뢰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뜻깊어요. 백화점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 디저트 살롱 입구. 2 선물로도 인기 있는 한식 다과. 3 다식을 만드는 도구가 함께 전시 중이다. 4 김동현 티 마스터가 개발한 오리지널 블렌드 차.
개인적으로 선물 아이템을 추천한다면요? PB 제품 중 대나무로 감싼 유리 주병과 쌓을 수 있는 방짜 굽접시가 떠오르네요. 귀한 손님을 위한 선물로는 서신정 선생님의 채상 예단함을 추천해요. 5층 전시장에 서신정 선생님이 함에 손잡이를 달아 제작한 슈트케이스가 전시되어 있어요. 1930년대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시기의 가방으로, 서양에 루이 비통의 역사적 슈트케이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 같은 가방이 있었어요. 특별히 하우스오브신세계의 아이덴티티 컬러로 작업해주셨죠. 기프트숍에서 그보다 작은 함을 판매하는데, 보석이나 귀금속 등 소중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아이템이에요.
첫 전시 <담아 이르다>는 6월 24일 막을 내립니다. 다음 전시의 주제가 궁금해지는데요. 전시는 3개월마다 새롭게 공개할 예정인데 여름 테마는 대나무와 바람이에요. 예부터 여름철에 대나무가 많은 역할을 해왔어요. 대나무 발부터 부채, 토시, 돗자리 등 나들이 용품, 시원하게 마시는 차까지 다양한 쓰임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가을에는 짚풀이나 모시 등으로 꼬임에 대한 얘기를 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문에 꼰 짚풀을 걸어 탄생과 죽음을 알렸잖아요. 소통의 한 방식인 거죠. 이러한 정보를 고객들이 알면 재미도 느끼고,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강해질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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