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열렬한 사랑을 내보이는 빨간 장미, 케이크 위를 환하게 밝히는 촛불, 사랑스러움을 더해주는 불그스름한 볼까지 따스한 인생의 순간엔 어쩐지 늘 빨간색이 함께한다. 달콤하고 따뜻하며 때로는 강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빨간 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익숙하고 정돈된 방과는 달리 온통 붉은색으로 채워진 공간은 상상만으로도 부담스럽다.
앙리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는 그런 선입견을 정면으로 뒤엎는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색은 벽과 탁자, 바닥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원근법은 적당히 생략되었고 어둠과 빛도 사라진 채 화면은 평평한 구도로 구성된다. 초록 화분이 놓인 작은 원탁, 튤립과 장미가 담긴 꽃병, 중앙의 빈 의자와 벽에 걸린 그림, 그 곁의 노란 개들까지 입체감을 내려놓은 채 평면 위에 조용히 놓여 있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마치 인생의 따뜻한 순간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말년의 앙리 마티스는 병약한 몸을 이끌고 남프랑스 벵스의 별장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몸은 쇠약했지만 멈추지 않는 붓과 색채는 오히려 더욱 강렬해졌고, 그렇게 완성된 붉은 화면은 삶에 대한 단단한 응답처럼 다가온다.
1905년 파리의 ‘가을 살롱’에서 마티스를 비롯한 신진작가들은 과감한 색채로 기존 미술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들의 표현은 마치 야수가 붓을 휘두른 듯 거칠고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이를 본 한 평론가는 ‘야수 같다’고 평했다. 이 말에서 유래한 ‘야수주의(Fauvism)’는 감정과 색채의 자유를 앞세워 새로운 예술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마티스는 언제나 색부터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고, 그중에서도 이 강렬한 색채는 그의 화면에 유독 자주, 그리고 오래 머물렀다. 마티스에게 색은 감정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언어였다. 그중에서도 빨간색은 자유롭고 강렬한 내면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붉은 작업실’의 대담함과 ‘루마니아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의 정제된 색감은 마티스가 붉은색을 어떻게 감정의 언어로 다듬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장식성을 넘어 구도를 이끌 만큼 화면을 지배하던 붉은색은 점차 더 깊어졌고, 그 탐색의 끝에서 ‘붉은색 실내’를 완성했다.
그래서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는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느꼈는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야수주의는 감정과 표현의 해방을 꿈꿨고, 마티스는 그 정신을 누구보다 순수하게 강렬한 색으로 구현해 냈다. 언뜻 보면 복잡하고 어지러워 보이지만, 화면을 가득 채운 생기 어린 경쾌함과 마음에 슬며시 스며드는 위로는 그의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마티스의 그림을 처음 마주한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강렬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새빨간 색으로 가득한 실내, 그리고 초록, 파랑, 노란색으로 무심히 칠해진 사물들은 현실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어색함도 잠시 이 낯설고도 강렬한 맛은 어느새 우리의 마음을 붉게 물들인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