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별 고려대 언론학박사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여행 애호가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지, 아프리카. 아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인 아프리카는 미국, 인도, 중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고 그린란드까지 모두 품고도 여유 있을 만큼 광활한 면적에 54개국이 자리한 곳이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국가들도 꽤 있지만, 2016년 방영된 tvN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에서 보여준 나미비아의 사막과 국립공원의 사파리,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로 시청자들의 여행 버킷리스트에 남아프리카 국가들이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EBS '세계테마기행' 같은 전통적인 여행 프로그램과 달리, 리얼리티 쇼 형식의 여행 예능이 성행하며 2023년 11월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3―마다가스카르'로 다시 한번 인도양의 섬나라가 주목받게 되었다. 이처럼 아프리카가 '나도 한번' 가볼 용기를 낼 수 있는 여행지로 떠오른 데 반해, 여전히 장시간 비행 탓에 선뜻 짐을 꾸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2012년 6월부터 약 2년간 대한항공이 주 3회 인천∼나이로비 직항 노선을 운영한 적이 있다. 국적기로 동아프리카 케냐까지 단번에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지만, 기대만큼 관광객과 화물 운송은 많지 않았고 주 탑승객이 기업 주재원과 정부·국제기구 관계자로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경유 시간이 추가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항공료와 호텔 제공, 반나절 시티 투어와 같은 환승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동 항공사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한항공은 수익성이 낮은 나이로비 노선을 폐지했다.
그 빈자리를 채운 항공사가 바로 에티오피아 항공이다. 2013년 6월 인천∼아디스아바바 노선을 처음 취항한 국영기업인 에티오피아 항공은 2025년 3월 현재까지 한국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최단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하늘길을 제공한다. 또한 에티오피아 항공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아프리카 곳곳의 한국 교민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전세기를 띄웠다. 팬데믹 이후에는 한·아프리카 관계가 강화되며 주 6회 운항으로 증편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나 역시 아프리카로 오갈 때는 주저 없이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한다. 자정을 넘겨 인천에서 출발하는 약 11시간의 야간 비행 일정과 비교적 짧은 환승 대기시간 덕분에 아프리카 내 도착지까지 연결편에 대한 최적의 선택은 단연 에티오피아 항공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코노미 클래스의 경우 23㎏ 수화물 2개를 제공하고, 스타얼라이언스 회원으로 마일리지 적립까지 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도쿄∼인천∼아디스아바바 여정이라 인천에서 탑승하면 이미 세 시간 전에 도쿄에서 출발한 승객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향하는 설레는 마음이 더욱 부풀어 오른다. 바로 승무원들이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전통 의복인 하베샤 케미스 스타일의 녹색 치마와 흰색 블라우스, 그리고 샴마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이렇게 국제선이 다양해지면서 아디스아바바 볼레(Bole) 국제공항은 아프리카의 주요 허브 공항이 되었고, 급증한 환승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공항 확장이 불가피했다. 지금도 아디스아바바 공항 국제선 환승 구역에 가보면 번잡스러운 보안 검색과 협소한 휴게 공간으로 인해 마음마저 분주해진다. 이에 2019년 1월, 에티오피아 정부는 중국수출입은행에서 3억4천500만 달러를 유상원조 받아 국제선 터미널을 확장하고 탑승 게이트를 증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맞물려 공항 확장 공사를 중국 국영기업이 담당하는 등 양국 간 강화된 협력 관계의 실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자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인지한 에티오피아 정부는 올 3월,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동쪽으로 약 40㎞ 떨어진 비쇼프투(Bishoftu) 지역에 새로운 국제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78억달러(약 11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 협정을 체결하였다. 아프리카 역내에서도 에티오피아의 눈에 띄는 경제 성장률을 인정하며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허브 공항 구축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2040년까지 계획대로 현재 연간 승객 수인 1천700만명을 6천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항이 완공된다면,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는 긴 여정도 한결 수월해지고 또 다채로워질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짐바브웨 하라레로 환승을 기다리며 기웃거린 볼레 공항 내 한 카페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환영. 한국 국수, 커피를 들고, 샌드위치, 아이스크림…. 우리는 한국을 사랑해요' 아마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라면을 좋아하는 에티오피아인 점주가 자신이 판매하는 에티오피아산 아라비카 커피 원두를 포함한 메뉴들을 홍보하며 한국인을 모객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색한 한국어 표현은 그가 사용한 번역기의 문제일 테고, 근래 늘어가는 한국인 환승객들을 눈치챈 점주의 통찰력과 정성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바삐 연결편에 탑승하느라 미처 수정하지 못했지만, 혹시라도 에티오피아에서 환승하는 어느 한국인이 너스레를 떨며 손 글씨로 점주에게 '환영합니다.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즐겨보세요. 샌드위치와 아이스크림도 있어요. 우리는 한국을 사랑해요. 그리고 우리도 에티오피아, 아프리카를 사랑해요'라고 써주는 상상을 해보았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어도 좋겠다. 아프리카, 알고 보면 멀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가볼 수 없는 곳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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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별 박사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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