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칼럼] Mimeme : 무의 자유 (Gwenchana)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말해야 할지보다는 어떻게 듣고 느껴야 할지를 다시 연습해야 할 때다. 의미 없는 듯 보이는 움직임에서 어떤 사유가 솟아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살아 있는 몸의 경험이 다시 말의 자리를 대체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예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런 관점에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예술가는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이다. 포스트모던 댄스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녀는 일상의 움직임을 해체하고, 그 속에서 퍼포먼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Walking on the Wall(1971)’에서는 무용수들이 중력을 거슬러 벽을 ‘걷는다’.
줄에 매달린 채 비스듬히 이동하는 그 장면은 보기엔 조용하지만, 말 없는 도전과 비틀린 균형의 연속이다. 그녀에게 ‘춤’은 더 이상 훈련되고 서사화된 몸짓이 아니라 주변 공간과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발생하는 감각의 결정이다.
이런 작업과 괜찮아 밈은 퍼포먼스라는 관점에서 공통의 언어를 공유한다. 예상 불가능한 몸의 흐름, 서사를 거부한 채 즉흥적인 동선으로 공간을 채우는 움직임, 반복되는 리듬 속에 내재된 ‘쓸모 없음의 힘’. 그것은 계획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날것의 진실을 갖는다. 그렇게 미술은 춤과 만나고, 밈과 나란히 서며, 철학의 빈자리를 몸으로 메운다.
우리는 흔히 “말할 수 없는 것을 예술이 대신 말해준다”고 한다. 때로는 예술마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자유를 꿈꿔야 하지 않을까. 그저 몸이 살아있다는 사실, 그 몸이 어떤 이유도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 거기에서 예술의 시작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을 잃은 감각들을 다시 세우는 가장 물리적이고도 간단한 방법일지 모른다. 퍼포먼스는 그 방법을, 밈은 그 도입부를 보여준다.
이제 중요한 건 어쩌면 ‘의미’가 아니라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춤이기보다는 ‘춤처럼 보이는 무언가’ 말이다. 삶에서의 작은 움직임(퍼포먼스들), 그것이야말로 지금 시대가 허용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퍼포먼스 아트’가 아닐까 싶다. 이유 없는 춤, 그만큼 솔직한 몸짓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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