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어떻게 운을 떼면 좋을까. 느슨해졌다? 즉흥적으로 했다? 아니 그보다는 작업과정에 ‘숨’을 들이는 연습중이었다고 하는게 더 가까운 말일까.
점 하나까지 계획한 대로 작업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진도를 나가지 못했었다. 어느 날 그런 고집이 그냥 아집은 아닌지, 그래서 화면이 딱딱하고 발전이 없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상한 계획에서 벗어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숨 가쁘지 않으려 의식해 왔다. 그게 영 진전이 없었는데 이번 전시 준비의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잠깐 스톱. 이 부분 다시 봐야 해.’라며 붓질을 멈추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의 균형을 재정비하며 시작하고 멈추기를 반복, 시간이 여의치 않은데 ‘처리해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전과 비슷한 기간이더라도 급박하게 마무리하기 보다는, 잠시 멈추고 전체화면을 둘러보며 다시 짚고 넘어가는게 가능해진 것이다. 덕분에 요소요소의 연결성이 좀 부드러워진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하나, 하나 똑, 똑 떼어 놓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하나에서 하나가, 그 하나에서 다른 하나가 파생된 느낌이 들었다.
그에 늘 가까이 두고 읊던 소산 박대성 선생님의 말씀- ‘만물은 동일체이며,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냥 흔들리는 것이 아니고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이해된 것 같았다. 조용히 긴 숨이 쉬어졌다.
문장이 잎사귀에 이어졌다. 잎사귀가 나뭇가지에 이어졌다. 나뭇가지가 바위에 이어졌다. 바위는 다시 문장으로 이어졌다. 마치 세상 만물이 하나로 이어짐을 체험한 것 같았고, 그 모양새가 붓을 쥔 심호흡과 더불어 심박수를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이번 작업에 쓰인 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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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마비된 마음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뚜껑이 사라진 구멍까진 반 발자국 정도 남은 것 같다. 이때 해야하는게 뭔지 아는가?
심호흡이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의식해서 봐야 한다.
숨쉬는 방법을 찾고 숨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천천히. 숨을 쉬기 위해- 연습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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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이번 글들은 조금 우울하다. 작업 템포를 늦추면서 스스로의 호홉에 집중하다보니, 보다 ‘척’하지 않은 글들이 쓰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타인을 위로하려 했던 ‘친절한 척’ 문장 대신 최대한 끄적인 글들 그대로, 평소의 우울감을 감추지 않은 그대로 작품에 실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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