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문자가 있는 작품엔 자연히 눈이 간다. 내 작업과는 어떻게 다른지 따져보고 공부하며 분류하는 게 습관이 됐다.
권인경 작가의 작품엔 고서가 사용된다. 문자가 쓰인 옛날 종이를 콜라주하여 공간을 그려내는데 참 촘촘하다. 한 구석 한 구석 치밀하게 짜여진 것 같기도, 동시에 이 장면, 저 장면 손에 잡히는 대로 떼어다 바느질하듯 이어놓은 것 같기도 해서 인상 깊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의 골조는 고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게 재밌다.
그의 작품은 아트페어에서 보고 재빨리 지나친 적이 있다. 그때는 너무 내 취향이라 나도 모르게 그와 비슷한 구상과 기법을 흉내 내버릴까 사진도 찍지 않고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을 그러다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의 작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작가의 생애와 그것이 작업으로 옮겨진 이야기였다.
관객이 유정에게 갖는 환상처럼 나 또한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환상을 가지곤 한다. ‘저 사람은 일상부터 작업까지 빈틈이 없어 보여.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하고. 그러다 보면 내 부족함만 보여 또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그 영상에서 권인경 작가는 마치 어느 날의 고단함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던 어느날임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여서 무언가, 안심이 됐다. 그와는 많이 다를 테지만, 아마도 내가 가진 고단함이 그에 투영된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인상 깊었던 그의 말(도로시 살롱의 작가 소개글에서 발췌)과 그 옆에 유정이 떠올린 말을 옮겨본다. 작가의 이야기와 그다지 연관성 없이 러프하게 연상된 상념이다.
“(중략) 다른 사람들의 방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보려고 했던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의 이야기와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 유정: 외부의 것들을 혹은 술자리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습관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잔뜩 구경하고 즐겁게 다음 만남을 나누며 귀가하면서도 배고팠던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중략) 그의 작업에서 생기와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넘어진 자리, 2021, 도로시 살롱’에서부터였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늘 ‘타인’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내가 원하는 것’을 앞에 세우기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밖에 있었지만, 나는 나의 방에 갇혀 있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터져 나오고,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 유정: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 친절하거나 공감대를 연결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껄끄러움, 부스럼 하나 만들기 싫어하는 탓에 ‘좋은 사람’으로 모든 모서리, 외부와 마주 닿는 면들 따위를 둥글게 만들려 노력했다. 요즘 나는 그런 나를 ‘위선자’라 부르며, 그것을 새롭게 받아들여 인정하고, 그런 나를 드러내고자 연습하고 있다.
-> 유정: 위선자라는 성향에 흥미로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양면성을 더 이상 숨기기 힘들어졌거나 그저 무언가를 ‘척’하는 데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작업에 드러내어 지극히 유정의 취향인 작품들로 내년 개인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의 초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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