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이번 글은 바로 전 글인 ‘작업의 골조, 세계관을 찾는 이야기’를 참조하면 더 재밌겠다 추천하며 운을 뗀다.
(1) 익숙함 그 다음 스텝, 불편함
어쩌면 ‘불편하고 이상하게 여기던 것’에서 ‘진짜 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감대를 끌어내고자 위안, 위로 따위의 공통의 관심사를 건들였던 것은 포괄적인 주제를 낳았고, 나와 관객 모두에게 재미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보편적인’이라는 말을 기피하며 지내면서 누구보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적거려 왔던 것 같아 답답했다.
물론 위안과 위로 또한 나약한 나를 보듬기 위해 시작한 주제이니만큼 마냥 남들 이야기로 치부할 꺼리도 아니다. 다만, 작업을 지속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며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시야/관찰/공부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모티브가 있어야 한다. 모티브가 있으려면 주제가 있어야 한다. 주제가 있으려면 세계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세계관이 있으려면 관찰해야 한다. 보다 다른 시야로, 타인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한참 바라보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바라볼 것에 대해 그간은 지나치게 평범한 것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신기한 것에서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는 습관이 들어 어줍잖은 방향으로 흐른 감이 없잖아 있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섣불리 주제를 바꿀 수는 없어- 라며 의기소침하게 지내는 시간동안 ‘의기소침한 덕분에’ 예민해졌고 그냥 지나치던 것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이 잦아졌다. 그 ‘불편함’이 점점 두드러지고 생생해짐을 느끼며 물었다. 나는 왜 그것을 불편해 하는 것일까? 내가 나에게 답했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편함과 이상함을 되뇌며 다시 처음부터 주제를 빌드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찰의 대상을 ‘이상하게 보이는 것’으로 ‘부분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2) 이상함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마주친다
어렸을 때부터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이상했다.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기리는 것에도 감흥을 얻지 못했다. 그 중 대표적인 상황이 결혼식이다. 많은 이들이 축하하며 특별한 날이라 소개하는 날. 사회자는 이 특별한 날의 날짜를 반복하여 말하며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날을 ‘기록’시킨다. 사람들은 기꺼이 타인의 기록행위에 동참한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귀가하는 한 시간 반동안 왜 그럴까를 생각하다 갑자기 ‘예술을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으로 연결되었다. 늘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만 했는데 이 날은 혼잣말을 떼었다.
예술은 의식의 잔치 행위가 아닐까?
나와 같이 타인들이 부르는 보편적인 기념일과 축제를 특별히 여기지 못하는 몇몇이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속에 있는 것을 외부로 표현하는 행위가 일상화되어 있는 이들에겐 ‘그러한 예술 행위가 기념과 잔치를 대체하는 행위인 것이 아닐까?’
잔치가 기리다, 기념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면- 그렇다면. 작업의 주제를 이전보다 구체적인 범위로 좁힐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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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주제의 변형 경로 : 위로 - 위안(정원) - 기념과 잔치(이상함)
이상하다 = 이해되지 않는다 = 납득되지 않는다 = 낯설다 = 왜?
내게는 그것이 기념일을 챙기는 행위 = 인간은 왜 기념과 잔치를 만드는가?
엉뚱하게도 이렇게 결혼식에 다녀온 기념품을 얻었다. 그리고 위에 써놓은 문장들을 읽고 읽어도 아직 이보다 머릿속을 정리할 수 없어 급히 마무리한다.
그래서, 인간은 왜 기념과 잔치를 만드는가? 이 물음은 나의 새로운 세계관이 될 수 있을까. 작업의 구체적인 주제로써 이전보다 단단한 방향성을 제시하게 될까. 일단 이것저것 그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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