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며, 수십 년 간 이어진 디플레이션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인플레이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지 만 1년이 지난 현재, 물가와 임금의 동반 상승이 본격화되며 일본 경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2024년 2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해, 미국(2.8%), 독일(2.3%), 프랑스(0.8%)를 제치고 G7 국가 중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다. G7 회원국의 1월 CPI와 함께 비교하면, 일본은 4개월 연속 인플레이션율 1위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일본은 더 이상 디플레이션 상태가 아니며, 인플레이션 궤도에 진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을 체감하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은 귀국 후 편의점에서 간단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 2000엔(약 13달러)이 들었다며 놀라움을 전했다. 과거와 비교해 일본 내 식품 및 생활용품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0년을 기준(지수 100)으로 했을 때, 일본의 물가 수준은 현재 110.8에 머무르고 있지만, 미국은 185에 달해 여전히 차이가 크다. 그러나 상승률 자체는 일본이 더 가파르다는 점에서, '물가 상승'이 단기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기·가스 요금 보조금 종료와 같은 정책 변화 역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 생명기초연구소 사이토 다로 부장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더 적극적이며, 올해 하반기까지 인플레이션율이 약 3%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OECD 또한 일본의 2025년 인플레이션율을 3.2%로 전망하며 G7 중 최고치를 예측했다. 2026년에는 2.1%로 하락하겠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임금 상승도 두드러진다. SMBC 닛코증권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2024년 4분기 1인당 명목 임금은 전년 대비 4.8% 증가해 G7 중 미국(5.1%), 영국(5.5%)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장기간 디플레이션 속에서 저조했던 일본의 임금 상승률이 최근 들어 다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발표한 2025년 제2차 노사 협상 결과에 따르면, 평균 임금 인상률은 5.4%로, 작년보다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실질임금은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다. 인플레이션에 따라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면서 소득 증가 효과가 가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특히 쌀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이 급등해 서민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도 한몫했다. 다만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성이 다소 완화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은 개선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임금 인상 여력도 확보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제 일본은 물가가 오르고 임금도 따라 오르는 ‘정상적인’ 경제 구조로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잃어버린 30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디플레이션을 극복한 일본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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